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지난 2월17일 ‘세계 공동체 건설’이란 제목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자유와 번영을 확산하고 평화와 이해를 증진하며 테러리즘과 기후변화, 전염병 등에 대응하기 위해 작동하는 글로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기반을 페이스북이 마련하겠다는 선언이다.

선언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건 가짜 뉴스(Fake news)에 대한 대책 마련과 필터 버블(Filter Bubble·인터넷 정보제공자가 맞춤형 정보를 이용자에게 제공해 이용자가 필터링 된 정보만을 접하게 되는 현상)의 문제를 인정한 대목이다.

페이스북은 지난 미국 대선 기간 동안 가짜 뉴스 확산과 관련한 책임 논란에 휩싸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하고 힐러리 클린턴이 이슬람 국가에 무기를 판매했다는 사실을 위키리스크에서 확인했다는 등의 가짜 뉴스가 페이스북을 통해 수십, 수백만 개의 ‘좋아요’와 함께 이용자들에게 유통됐다.

페이스북의 뉴스피드는 선호도가 유사한 내용들만 보이도록 하는데, 이런 알고리즘은 같은 생각을 지닌 이들만을 뭉쳐 놓는 결과를 낳는다. 다른 의견의 사람들이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이해할 여지를 낮추는 쪽으로 유도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페이스북 등의 인터넷 기업들은 자신들이 미디어 기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런 지적을 수용하지 않았다. 마크 저커버그의 이번 선언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 그동안 입장과 달리 가짜 뉴스 확산과 필터 버블로 말미암은 문제들을, 이에 따르는 사회적 책임을 일부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페이스북은 구글과 함께 올해 4월 예정된 프랑스 대선에서 가짜 뉴스 방지를 위해 <르몽드(Le Monde)>, <리베라시옹(Libération)> 등 프랑스의 여덟 개 언론사와 협력해 ‘크로스체크’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 언론에 대한 신뢰가 바닥인 현실에서 우리는 ‘기레기’가 아니라고 자위하고, ‘가짜뉴스’는 ‘그들’의 문제라고 떠넘기며, 포털, SNS 등 인터넷 기업의 사회적 책임만을 따져도 좋은 걸까. 기성 언론이 신뢰를 잃은 그 자리가 바로 무럭무럭 자라나는 가짜뉴스의 옥토(沃土)로 변화하고 있다. Jtbc 뉴스 화면 갈무리

이런 분위기 속에 가짜 뉴스를 둘러싼 논란은 국내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맞물려 가짜 뉴스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포털과 SNS 등 플랫폼 사업자를 중심으로 이를 규제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언론계와 학계 등에서 연이어 나오고 있다. 구체적인 논의도 이뤄지는 분위기다. 3월6일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미래뉴스센터는 언론과 함께 3월 중 팩트체크 서비스를 만들어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를 통해 선보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런 시도들이 과연 얼마만큼의 효과를 거둘지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 가짜 뉴스의 문제를 지적하며 포털, SNS 등의 플랫폼과 함께 가짜 뉴스를 가려낼 주체로 등장하는 기성 언론들이 과연 가짜 뉴스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운가에 대한 질문이다.

소위 ‘주류’라고 불리는 언론들조차 바이라인(글쓴이)을 기자의 실명 대신 ‘온라인 뉴스팀’으로 얼버무린 기사들을 쏟아내고, 사실 관계의 확인도 없이 SNS에 떠도는 얘기를 기사로 만들어 재빨리 포털과 SNS에 유통한다. 일례로 미국 대선이 한창이던 지난해 11월1일 YTN이 뉴스에서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트럼프가 “누가 여성 대통령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한국을 보게 하라”는 말을 했다고 전하고, 이 보도를 인용한 정치인들의 말로 인해 관련 내용이 확산된 일이 있다. 하지만 YTN에서 트럼프의 발언이라고 전한 이 내용은 박근혜 대통령에 비판적인 한 SNS 이용자가 만들어낸 것이다.

또 언론계에서 흔히 “물 먹는다”고 말하는, 낙종을 피하기 위해 타 언론의 보도를 베껴 쓰는 일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 오보는 무책임한 기성 언론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언론이 진실을 전하지 않고 있다고 대중이 인식할 때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게 바로 음모론이다. 그리고 기성 언론에 대한 이런 불신은 가짜 뉴스를 확산한다. 지난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와 함께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언론 신뢰도는 조사 대상 26개국 중 23위로 최하위인 상황이다. 이렇듯 언론에 대한 신뢰가 바닥인 현실에서 우리는 ‘기레기’가 아니라고 자위하고, ‘가짜뉴스’는 ‘그들’의 문제라고 떠넘기며, 포털, SNS 등 인터넷 기업의 사회적 책임만을 따져도 좋은 걸까. 기성 언론이 신뢰를 잃은 그 자리가 바로 무럭무럭 자라나는 가짜뉴스의 옥토(沃土)로 변화하고 있다.

김세옥 미디어 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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