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대구지부가 노동조합의 불모지인 성서공단에 신규 분회를 설립하고 금속노조의 푸른 깃발을 꽂았다. 대구지부 대구지역금속지회 한국OSG분회다.

“노조 가입하고 한 달이 지났어요. 지난 2월12일 100명이 모여 총회를 하는데 설레고 가슴이 많이 뛰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벅차요.” 김한식 분회장의 얼굴이 환하다.

절삭공구를 생산하는 한국OSG는 매년 1천억원 매출에 2백억원 순이익을 내는 알짜회사다. 지난 5년 동안 9백억원 정도 순이익이 났고 주주배당을 매년 90억원에서 많게 180억원까지 했다. 대부분 이익이 주주들 주머니로 들어가고 있다.

노동자들은 12시간 주야 맞교대 장시간 노동을 해야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 있다.

“입사 24년차 입니다. 현장 직책은 반장입니다. 이 공장에 10년 다니면 연봉이 3천만원정도입니다. 12시간 주야 맞교대 뛰고 상여금 600%를 다 포함한 금액이니 한 달 평균 160만원입니다. 잔업수당을 제외한 기본급은 최저시급에 가깝습니다.” 김한식 분회장이 창립 이래 나날이 성장하는 회사에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 받는 한국OSG 노동자들의 실태를 토로했다.

▲ “지금껏 저들이 말하는 개, 돼지처럼 살았지 노동자로서 당당하게 살지 못했어요. 이제 노동자로 인정받고 노동의 대가를 받는 투쟁을 할 겁니다. 지금껏 노동자들은 평지와 내리막만 걸었습니다. 회사를 성장시킨 만큼 같이 올라가자는 겁니다.” 근속 24년차 내공의 김한식 분회장이 각오를 밝혔다. 사진=신동준

“공장 밖 사람들은 ‘OSG 같은 공장에서 노조를 왜 만드느냐’는 말을 해요. 주변 공장들보다 상대적으로 환경이 깨끗하고 다닐 만 하다는 거죠.” 한국OSG 대표가 지역사회에 봉사와 기부를 많이 한다는 소문도 나있다.

김한식 분회장이 공장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허구인지 말한다. “노동 강도가 세지고 있습니다. 기계는 계속 늘어나는데 일할 사람을 뽑지 않아요. 두 세 명이 기계 20대를 보는 경우가 있으니 휴가도 마음대로 내지 못합니다.”

사측은 임금을 교묘히 깎았다. “사무직 기본급에 상여금을 묶어 포괄임금제로 바꿨어요. 상여금을 빼면 기본급은 최저시급에 미치지 못합니다. 상여금을 더한 포괄임금으로 최저임금에 걸리지 않게 맞춘 거죠. 사무직 직원들도 분회에 가입했습니다.” 사무직은 월급제 쟁취를 주요 요구로 걸었다.

 

기득권 놓고 지역 조직화 목표로 ‘대구지역금속지회’ 설립

노의학 대구지부 조직부장은 “성서공단은 50여명에서 300명이 일하고 있는 중소규모 영세업체들이 밀집해 있다. 민주노조를 만들면 공단 사용자들이 합심해 민주노조를 깬다. 노동조합을 쉽사리 만들기 어렵다”고 말한다.

사용자들은 민주노조가 성서공단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대구지부는 ‘지역 파급력’에 도전했다. 지부는 복수노조 제도 악용과 창구단일화 등 노조를 조직하기 어려운 조건과 대부분 사업장이 중소영세 규모인 성서공단의 특성에 맞춰 산별노조 조직 확대 승부수를 던졌다.

대구지부는 대구지역금속지회를 설립하고 논공공단과 성서공단에 공장이 있는 삼성공업지회 규칙을 변경해 분회로 편제했다. 삼성공업지회는 지난해 1월 120명이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임단협을 체결한 상태였다.

삼성공업지회 조합원들은 자기 권리를 내려놓고 산별노조답게 지역조직화와 노동자 단결을 선택했다. 이렇게 태어난 대구지역금속지회에 한국OSG 노동자들을 가입시키고 한국OSG분회로 편제했다. 두 사업장을 단일조직으로 묶어 현재 320여명의 조합원을 둔 조직을 만들었다.

지역금속지회는 사업장 단위를 넘어 정규직, 비정규직 구분 없이 지역 노동자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노조 재정과 운영, 의결도 지회로 묶어서 결정한다. 지역지회 전환 과정에서 삼성공업지회는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지회 재정 전액을 지역지회 재정으로 전환하고 전임자 한 명을 지역지회로 파견했다.

“삼성공업분회 조합원들은 지회를 분회로 규칙변경을 하면서 조직화 사업에 동의는 하지만 우려도 했습니다. 지역에 파견자를 내야하고 재정도 합쳐야 하고……. 지역에 조합원이 늘어야 우리 분회가 깨지지 않고 서로 지켜주며 함께 갈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조합원들이 지도부를 믿고 따라줬습니다.” 대구지역금속지회장으로 선출돼 한국OSG분회 설립을 추진했고 교섭과 투쟁을 이끌고 있는 차차원 지회장의 말이다. 차 지회장은 삼성공업분회 조합원이다.

대구지부는 성급하게 조직해 소수노조로 전락하거나 깨지기보다 준비를 철저하게 하기로 결정하고 분회 설립을 미룬 채 8개월 동안 조직화사업에 매진했다. 지부는 지역금속지회를 설립하고 공세적으로 한국OSG 조직사업을 벌였다. 결국 207명을 조직해 다수노조를 차지하는 성과를 내며 분회 설립에 성공했다.

 

통상임금 소송과 불법파견 차별시정 등 요구 모아 조직

“임금은 노사협의회에서 정해왔어요. 노사협의회 위원들은 현장의 간부급인 기감들이고 거수기 역할을 할 뿐이었습니다. 10년을 일해도 최저시급 오른 만큼만 올랐습니다.” 김한식 분회장이 분회 설립 전 상황을 설명했다. “정규직은 상여금을 600% 줬는데 얼마 전부터 매달 50%씩 나눠서 급여에 포함해 지급해요. 저임금을 감추기 위한 조삼모사죠. 비정규직은 300% 상여금이 나오는데 마찬가지입니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이 그렇듯 임금과 노동조건은 회사가 일방으로 정할 뿐 노동자들은 불만이 있어도 달리 해결할 통로가 없었다. “현장에서 일하는 전체 노동자수가 220명인데 이중에 60여명이 비정규직입니다. 비정규직은 당연히 최저시급을 받고요. 비정규직은 2015년 말까지 용역업체 통해서 들어온 불법파견이 대부분이었는데 노동부에서 근로감독을 나와 불법파견 소지가 있으니 시정하라고 했고 2016년 1월1일부터 몇 명씩 파견업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비정규직으로 채용했습니다.

김한식 분회장은 통상임금 소송을 하다 노조를 결성한 계기를 설명했다. “현장 노동자 몇몇이 의견을 모아 통상임금 소송을 해보자 했고 재직 중에 있는 노동자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기 부담스러워 퇴직자 중심으로 소송을 준비했어요. 생각지 않게 통상임금 소송에 함께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늘었고 이참에 노조를 만들자 결심하고 대구지부에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통상임금 소송을 하니 사측이 “‘내가 너희들 다 먹여 살리는 데 아버지 등에 칼을 꽂는 거냐’는 말을 했다고 해요. 뻔히 회장 입에서 나온 말이겠죠. 이 말을 듣고 우리 조합원들은 ‘그럼 아버지는 자식 돈 떼어먹어도 되는거냐’고 하더라고요.”

 

‘내가 너희들 다 먹여 살린다’는 전근대 노사관

이 말은 한국OSG(주) 창업주인 정태일 회장과 현재 사장을 맡고 있는 아들이 노동자들과 노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회장 자신을 ‘아버지’, 노동자를 ‘자식’ 에 비유하고 ‘다 먹어 살리는데’라는 권위의식과 복종, 시혜적 관점으로 가득 찬 사람이 정상 노사관계 개념을 갖기 어렵다.

정태일 회장에 대한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1943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해방 후 귀국해 전란 속에서 힘겨운 생활을 했으며 중학교 졸업 후 철공소에서 일했다. 철공소 노동자로 배고픈 시절을 보낼 때 ‘배고파 죽겠으니 부디 먹을 양식을 좀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하고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가난한 10대 노동자로 시작해 자수성가로 키워놓은 회사니 회사에 대한 애정이나 자신에 대한 자긍심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노사관계를 희생과 봉사, 명령과 복종의 가족관계로 비유하고 강요하는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은 사회법에 따른 당연 일반 권리인 ‘노동 기본권’과 ‘노동조합’을 쉽게 용납하지 못한다. 이런 배경을 깔고 있는 한국OSG 정태일 회장과 아들 사장이 앞으로 노조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사측 주도 복수노조 설립, 금속노조 사업장 출신 노무관리자 영입

한국 자본가들은 노조를 극도로 기피하며 온갖 방법으로 단결권을 가로막는다. 박근혜의 정치 고향인 대구에서 민주노조를 만드는 과정은 피 말리는 전쟁 같은 일이다. 사업주들은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복수노조법 조항을 훔쳐와 어용노조를 만들고 탄압한다.

2월초 한국OSG 노동자들의 지회 가입 분위기를 알아챈 사측은 지방노동청 출신 노무사를 자문 노무사로 영입하고 금속노조 사업장 출신 노무담당자를 채용했다. 현장 관리자들을 사주해 어용노조를 만들었다.

사전 조직화로 다수노조 지위를 확보한 대구지부와 지역금속지회는 창구단일화 절차를 진행 중이다. 지회는 한국OSG 사측 대표 면담을 요구하고 분회 조합원수를 근거로 타임오프를 적용한 전임자와 조합사무실 보장을 요구했다. 사측은 말을 바꾸며 ‘창구단일화 절차가 끝나면 다시 교섭하자’며 협의를 피하고 있다. 지회는 9일부터 한국OSG 공장 앞에 천막을 치고 임시사무실로 쓰며 농성에 들어갔다.

 

공장 키운 만큼 노동자가 대접 받아야

“지금껏 저들이 말하는 개, 돼지처럼 살았지 노동자로서 당당하게 살지 못했어요. 이제 노동자로 인정받고 노동의 대가를 받는 투쟁을 할 겁니다. 지금껏 노동자들은 평지와 내리막만 걸었습니다. 회사를 성장시킨 만큼 같이 올라가자는 겁니다.” 근속 24년차 내공의 김한식 분회장이 각오를 밝혔다.

▲ 사전 조직화로 다수노조 지위를 확보한 대구지부와 지역금속지회는 창구단일화 절차를 진행 중이다. 지회는 한국OSG 사측 대표 면담을 요구하고 분회 조합원수를 근거로 타임오프를 적용한 전임자와 조합사무실 보장을 요구했다. 사측은 말을 바꾸며 ‘창구단일화 절차가 끝나면 다시 교섭하자’며 협의를 피하고 있다. 한국OSG분회 간부들과 차차원 대구지역금속지회장(오른쪽 두 번째)이 천막농성 투쟁을 앞두고 힘을 모으고 있다. 사진=신동준

“몇 년 전 내부고발을 했는데 회사가 강제 배치전환을 했어요. 지회에 가입했더니 그동안 탄압하던 사측 임원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어요. 노조 생기기 전에 회사 눈치를 많이 봤는데 이제 내 자신이 당당해지고 부당한 현실을 바꾸겠다는 신념이 생겨요.” 류성균 부분회장의 포부다.

“근속 14년인데 지금껏 노조를 몰랐어요. ‘우리가 몰라서 할 말도 못하고 살았구나’라고 느낍니다. 현장에 가면 잘 모르는 조합원이 수고한다고 말해요. 부담이 되지만 우리 분회가 잘 돼서 성서공단에 노조가 많이 생기고 할 말 하고 살았으면 합니다.” 강경우 분회 사무장도 금속노조를 접한 소감을 말한다.

노의학 대구지부 조직부장은 지역금속지회 사업을 계기로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지역지회가 옥상옥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기존 지회를 형식적으로 묶어 지회 사업만 하면 옥상옥이 될 수 있습니다. 지역지회가 조직 확대 사업에 역점을 둔다면 얘기가 다르죠.”

대구 성서공단에 금속노조의 씨앗을 또 하나 뿌렸다. 한국OSG분회 조합원들의 꿈과 소망이 활짝 피어 알찬 열매를 맺고 우렁찬 큰 나무로 성장해 성서공단에 민주노조라는 큰 그늘이 되길 기대한다. 노동조합은 만들기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 어렵다. 성서공단에 내민 대구지부의 도전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노조가 힘을 기울여야 한다.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