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금호타이어 노사가 2010년 임단협 조인식을 진행했다. 작년 12월 30일 금호타이어 워크아웃 신청 후 구조조정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일단락 된 것. 하지만 상처가 너무 컸다. 아니 상처는 지금 아직도 더 크게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노사는 이번 합의에서 ‘취업규칙 등 준수 확약서 제출을 조건으로 정리해고를 철회’하기로 했다. 확약서에는 성실 근무, 취업규칙 준수, 생산성 향상 등에 대한 약속과 함께, 이를 위반 시 해고 철회가 무효로 될 수 있음이 명시돼 있다. 더불어 확약서 내용과 이행에 대해 회사를 상대로 일체의 법률상 이의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했다.

▲ 3월8일 금호타이어지회 조합원들이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금호타이어지회(지회장 고광석)는 ‘노사평화공동선언문’이라는 것을 통해 “노사는 상호 대립과 소모적인 협상을 지양하고,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평화적 노사관계와 쟁의행위 없는 평화적 사업장 건설에 앞장”서기로 했다. 한마디로 ‘워크아웃 기간 무쟁의 선언’이다.

게다가 각종 임금 반납 및 삭감으로 실질임금은 40%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아무리 워크아웃 상황이라지만 너무 많이 양보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는 성명서를 내고 이번 합의가 ‘민주노조의 혼을 짓밟는 행위’라며 맹비난했다. 해고 대상자 일부는 확약서를 제출하느니 차라리 해고된 상태에서 복직투쟁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현장에서는 지회집행부 탄핵 총회가 추진 중이다.

이처럼 임단협 타결 이후 노동자들이 고통과 혼란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반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은 채권단으로부터 금호타이어 경영권을 보장받았다. 금호타이어 워크아웃 사태가 금호그룹 경영진의 과욕과 부실경영 때문에 비롯된 것임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작년 쌍용차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상처와 고통은 고스란히 노동자의 몫이 됐다.

모든 상처와 고통은 결국 노동자에게

지회가 안팎의 비난을 무릅쓰고 큰 양보안에 합의한 것은 물론 워크아웃에 대한 부담감이 컸기 때문이다. 지회 이명윤 기획실장은 “교섭결과에 대해 결코 잘했다거나 만족스럽게 생각지 않는다”면서도 “평상시 임단협과는 차원이 다른 상황이었다”고 고백했다. 워크아웃이라는 악조건에서 해고자 발생만은 어떻게든 막기 위함이었다는 것.

하지만 워크아웃 상황에 대해서는 인식의 차이가 있다. 금호타이어 교섭에도 참여했던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이충헌 수석부지부장은 “쌍용차와는 달리 금호타이어의 경우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해 정상화될 여지가 많다고 본다”고 입장을 달리했다. 이 수석부지부장은 “일정정도의 양보는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 솔직한 평가”라고 입장을 밝혔다. 확약서를 거부하고 복직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허용대 조합원은 “오히려 워크아웃을 계기로 회사와 노동자를 모두 살리되 위기의 주범인 박씨 일가의 경영권을 박탈시키는 방향으로 투쟁을 전개했어야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인식 차이는 투쟁 수위에 대한 이견으로 드러났으며, 현장에서는 임단협 평가를 둘러싸고 지회 집행부 탄핵추진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단순히 정세와 투쟁방향에 대한 인식 차이로 보기에는 사태가 심각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의견을 조율하고 투쟁과 교섭을 이끌어야 할 노조의 지도력이 바닥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 2월19일 금호타이어지회 본사 상경 투쟁에 나선 조합원을 경찰기동대원들이 방패로 밀어내고 있다.

금속노조의 지도력은 어디에

노조는 금호타이어에 구자오 수석부위원장을 긴급 파견했지만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구 수석부위원장은 “지회와 의견을 조율하거나 견인할 수 있는 조건과 내용이 공조직 체계 속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노조의 단일한 지도집행력이 관철될 수 없는 체계적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특히 “교섭권과 체결권은 노조에 있지만 실질적인 쟁의권은 지회에 있다”며 “단일노조다운 체계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조 정책연구원 공계진 원장은 “교섭권과 체결권도 형식적으로만 노조에 집중돼 있을 뿐, 대공장의 경우 사실상 사업장 단위에 있는 측면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산별노조라고는 하지만 아직 기업단위노조 연합체 수준을 못 벋어나고 있다는 것.

하지만 단순히 체계만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이충헌 수석부지부장은 “산별노조로 전환해 뭐가 좋은지 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중소사업장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고 강조되어야 하지만 조직력과 자생력이 있는 대공장들에게는 왜 산별노조여야 하는지 명확한 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본과 보수언론들은 이런 약점을 파고들어 산별노조가 정치투쟁에 매몰돼 조합원 권익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논리는 끊임없이 유포시키고 있다. 마치 정치투쟁이 조합원의 권익문제와 무관한 것처럼, 나아가 산별노조가 조합원들의 고용을 포기하면서까지 정치투쟁만 강조하는 조직처럼 호도한다. 이는 물론 현실과 맞지 않는 주장이다. 아니 그런 이야기들이 자본과 보수언론의 입에서 나오는 것 자체가 역설적으로 산별노조의 위력을 반증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격이 실제로 ‘먹히고’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15만이 함께 승리하는 경험 절실

공계진 원장은 “노조의 지도력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대공장들이 함께할 수 있는 의제 개발과 공동투쟁 경험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산별노조다운 형식도 중요하지만 내용이 담보돼야 한다는 얘기다.

이번 금호타이어 임단협과 관련해 지회 이명윤 기획실장은 워크아웃 상황에서 양보가 불가피했음을 얘기하며 “일반적인 임단협이었다면 절대 밀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확약서를 거부하고 복직투쟁을 준비하는 이들도 “금호타이어에는 아직 탄탄한 투쟁 기풍이 남아 있다”며 투쟁 승리를 의심치 않고 있다. 양자는 이번 임단협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지만 금호타이어지회의 조직력과 투쟁력이 아직 건재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3월 지회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했을 때 워크아웃 상황임에 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의 72.34%가 파업을 결의한 바 있다. 이 같은 조직력은 금호타이어의 노동조합 투쟁역사 속에서 힘을 모아 승리해 온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금속노조도 다르지 않다. 15만의 단일노조라면 그에 걸맞게 15만이 함께 힘을 모아 승리하는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그 경험이 쌓이지 않으면 설사 형식과 체계를 갖춘다 하더라도 현장지도력은 생길 리 없다.

▲ 금호타이어지회 한 조합원이 작업준비를 하고 있다. 신동준

평상시에 잘하자

다만 그런 경험들이 단기간에 충분히 쌓일 수는 없다. 그래서 평상시에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거 때만 오지 마시오”
4월 총파업을 준비하며 일제히 진행됐던 임원 현장순회에서 한 대공장 조합원이 싸늘한 말투로 던진 말이다. 아마 그 조합원은 임원과 집행간부들이 같은 몸벽보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또 선거운동 하나보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구조조정, 정리해고 등 ‘사건’이 터져야 부랴부랴 현장을 찾아나서는 간부들. 금속노조가 ‘관료화’됐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특히 이번 금호타이어 임단협을 통해 많은 것을 빼앗겨야 했던 조합원들이 금속노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어쩌면 금호타이어 임단협이 마무리된 지금부터의 노조 역할과 책임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금호타이어 주요 일지

2009.12.30         금호타이어 워크아웃 신청
2010.01.22         지회 임시대의원대회. 조기 교섭 결정
2010.02.01         노사 상견례. 1,377명 구조조정 계획 제시
2010.02.19         본사 항의방문
2010.03.03         193명 정리해고 예고 통보 및 구조조정 계획 노동청 신고
2010.03.08~09    지회 파업찬반투표. 72.34% 가결
2010.04.01         노사 정리해고유보, 임금삭감 잠정 합의
2010.04.07~08    잠정합의안 찬반투표. 부결
2010.04.18         노사 일부 내용 수정하며 다시 잠정 합의
2010.04.21         잠정합의안 64% 가결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