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반 설렘 반이예요. 똘똘 뭉친 우리 조합원 동지애를 믿고 목표를 이룰 때까지 직진으로 강하게 밀고 나갈 겁니다.” 배태민 지회장은 차분하지만 자신감 있는 어조로 각오를 밝혔다.

2월12일 설립한 노조 인천지부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비정규직지회(아래 지회) 배태민 지회장은 입사 6년차다.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는 2009년 설립해 2010년 라인가동을 시작했으니 근속으로는 고참이다.

배태민 지회장은 2월20일부터 이대우 인천지부 수석부지부장 도움을 받아 조합원 간담회를 시작했다. 주야 맞교대하는 3백여 조합원들을 아침과 저녁 교대시간에 30명씩 나눠 닷새 동안 진행한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체계와 운영에 대해 알리고 불법파견 소송절차와 회사가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를 경우 대처방법 등을 교육하고 있다. 힘든 교대근무를 마쳤는데도 눈을 빛내며 간담회에 참석 하고 있는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조합원들을 만났다.

 

▲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비정규직지회가 2월20일부터 민주노총 남동 노동상담소에서 부서별 조합원 간담회를 열고 있다. 이대우 인천지부 수석부지부장이 전국금속노동조합 체계와 운영에 대해 알리고 불법파견 소송절차와 회사가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를 경우 대처방법 등을 교육하고 있다. 인천=신동준

 

“편법으로 입사 당했어요”

“업체는 입사할 때 만도헬라 직원이라는 인식을 심어줬어요. 일하다보니 정직원이 아니었어요. 한마디로 편법으로 입사 당했습니다.” ㄱ 조합원은 사기당한 기분이라고 말한다.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에서 일한다고 알고 입사했는데 막상 들어와 일하다보니 정직원이 아니었다. 생산현장은 ‘편법으로 입사당한’ 비정규직으로 100% 구성돼있다.

지회 조합원들은 서울커뮤니케이션이나 에이치알티씨와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실제 채용부터 작업 배치와 변경, 업무 지시와 감독, 근태 관리, 징계, 업무수행 평가, 연장 휴일, 근로시간 결정 등 사용자로서 모든 권한은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가 행사한다는 제보와 증거들이 넘치고 있다.

한마디로 인력파견업체와 도급계약이라는 허울을 쓴 불법파견이다. 인천지부와 지회는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불법파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생리휴가가 있다는 사실 노조 가입하고 알았어요”

“생리휴가가 있다는 사실을 노조 만들고 나서 처음 들었어요. 다른 여성 노동자들이 생리휴가 쓰는 거 한 번도 못 봤어요.” ㄴ 조합원은 입사한지 6년이 넘었다.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생리휴가를 써 본 적이 없다.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고 회사에서 생리휴가를 쓸 권리가 있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ㄴ 조합원만이 아니다.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여성 노동자 비율은 생산현장 기준 30% 정도 되지만 다른 여성노동자들도 처지는 똑같다. “생리휴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도 아마 못썼을 거예요. 지금도 라인에 인원 여유가 없어서 휴가쓰기 힘들고 특근도 빠지기 어려운걸요.”

ㄴ 조합원은 자녀가 있는 기혼여성이다. 12시간 주야 맞교대에 주말 특근도 빠지지 못하고 있다. “회사, 집, 회사, 집… 그렇게 살아요.” ㄴ 조합원은 엄마이자 아내이고 며느리이며 딸이지만 12시간 주야 맞교대 쳇바퀴 속에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평범한 일상은 포기하고 산다.

휴가도 못쓰고 주말 특근도 못 빼는 조건이라면 집안사정이 생기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그래도 출근해야 해요”라고 답한다. 그동안 집안사정 같은 걸 한 번도 감안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 “3백여 명 조합원 뜻과 요구를 모으고 지회 집행위원 부서장님들과 라인을 챙겨주시는 대표님들을 믿고 갈 겁니다. 부족한 내용은 금속노조가 함께 해 주실 테고요. 처음 해보는 일이니 두려움도 없지 않지만 하나씩 철저하게 해나갈 거예요.” 배태민 지회장 말에 사뭇 여유가 있다. 인천=신동준

 

“일요일 쉬고 밥교대와 비상근무를 안 하면 좋겠어요”

“12시간 맞교대가 너무 힘들어요. 잔업과 특근을 의무로 해야 하니 더 힘들고요. 일해야 하는 인원수가 정해져 있어서 그 인원은 무조건 출근을 해야 하거든요. 노동조합이 주말 특근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바꿔주면 좋겠어요. 정직원과 차별대우도 없어졌으면 좋겠고요.” ㄷ 조합원이 노동조합에 바라는 소망이다.

“특근을 해야 하는 인원이 정해져 있어요. 특근 명단 올리고 안 나오면 불이익을 줘요. 저도 한 번 특근 올리고 불가피해서 못나갔는데 회사가 경위서를 쓰라고 하더라고요.” 근속 5년차인 ㄹ 조합원은 결근도 아니고 특근을 빠졌다고 경위서를 썼다. 이 회사에서 특근은 자유의사에 따른 선택이 아니다.

조합원 대다수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다. 젊은 청년들이 1년 내내 주말도 없이 12시간 주야 맞교대를 돌아야 하니 이들의 젊음도 감당하기 힘든 노동 강도다. 임금도 열악하지만 이 젊은 청년들은 가족과 친구, 연인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더 중요하다.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는 1년 365일, 24시간 라인을 풀가동하기 위해 ‘비상근무’ 제도와 ‘밥 교대’라는 이상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비상근무’는 계속 라인을 돌리기 위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순번대로 쉬는 날을 정하고 쉬는 날 외에 의무로 근무를 하는 형태를 말한다. 쉬는 날 이외에 집안일을 볼 수 없고, 아파도 쉴 수 없다. 남들 다 쉬는 주말에 평일처럼 근무해야 한다.

‘밥 교대’는 기계를 24시간 가동시키기 위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밥을 먹는 근무형태다. 여느 회사들처럼 점심시간에 라인을 세우고 모두가 같이 식사하지 못한다.

 

“노조 만들고 유대감이 생겼어요”

“이제 지회를 설립해서 특별히 달라진 현상은 없지만 현장 분위기가 좋아요. 뭔지 모를 유대감이 생겼어요. 기대감에 들떠있기도 하고요. 선임급 대표님들이 앞장서 이끌어 주시니 모두가 잘 따라줍니다.”

지회는 설립총회 때 가입대상 345명 가운데 수습기간인 사람과 퇴직예정자 등을 빼고 3백여 현장 노동자 대부분이 가입했다. 조합원들은 지회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있다. 결성 시점부터 공세를 취하다 보니 회사보다 지회가 현장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근속이 오래돼 파트장, 라인장을 맡고 있는 선임급들이 지회설립을 주도했다. 라인장, 파트장은 현장 노동자 15~20명을 단위로 관리하고 있다. 이들이 먼저 나서서 노동조합 필요성을 얘기하고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조합원 조직화에 탄력이 붙은 비결이다.

회사의 방해도 문제없었다. 지회 설립 직전 노동조합 결성을 준비한다는 말이 새 나갔다. 회사는 갑자기 노사협의회를 구성하겠다며 노사협의회 위원 선출 공고를 붙였지만 아무도 응하지 않았고 무산됐다.

지금 업체들은 탈퇴를 종용하는 등 노골적인 부당노동행위를 하지 않지만 ‘기본 지키기 1.0’을 시행하겠다며 작업 중 휴대폰 사용금지, 작업장 이탈 금지 등을 강요한다. 조합원 일거수일투족을 옭아매고 감시를 하면서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 여차하면 기본질서 지키기를 빌미로 조합원들을 압박하고 불이익을 주겠다는 심사다.

▲ 노동조합에 가입했으니 이제 임금과 노동조건을 회사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조합원들은 설렌다. 업체가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는 근로자가 아닌 노동조합을 통해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휴일에 쉴 수 있고, 휴가를 당당하게 쓸 수 있는 노동자가 된다는 기대감으로 조합원들은 설렌다.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부서별 간담회에서 교육내용을 집중해서 듣고 있다. 인천=신동준

“3백여 명 조합원 뜻과 요구를 모으고 지회 집행위원 부서장님들과 라인을 챙겨주시는 대표님들을 믿고 갈 겁니다. 부족한 내용은 금속노조가 함께 해 주실 테고요. 처음 해보는 일이니 두려움도 없지 않지만 하나씩 철저하게 해나갈 거예요.” 배태민 지회장 말에 사뭇 여유가 있다. 인천지부와 지회는 회사에 교섭대표지위확인 절차를 밟자고 요구했다. 2017년 임단협 교섭 요구도 할 예정이다.

조합원들은 자기 임금이 얼마인지 그 액수는 어떤 근거로 책정했는지 알 수 없었다. 임금 테이블이나 호봉표 같은 것은 애초 없었다. 회사가 주면 그것이 내 임금인 줄 알고 있었다. 입사한 지 1년 된 사람이건 5, 6년이 된 사람이건 시급은 같다. 근속수당 1~2만원 차이가 날 뿐이다. 임금이 왜 이것밖에 안 올랐느냐고 물으면 주변 회사들 임금을 참고해 정했다고만 했다. 회사에 이익이 얼마가 났는지, 임금인상 근거가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지난해 회사가 성과급을 기본급에 포함했다. 받는 총액은 같은데 시급이 오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임금 체계 변경도 회사로부터 직접 들은 게 아니고 카톡과 메일로 통보받았다. ㅁ 조합원은 근속 4년차인데 월급이 예전보다 줄었다. 특근을 많이 시키려고 특근 누진제를 시행했는데 그것도 어느 날부터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설레요. 임금, 노동조건 업체 마음대로 못한다는 사실에”

노동조합에 가입했으니 이제 임금과 노동조건을 회사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조합원들은 설렌다. 업체가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는 근로자가 아닌 노동조합을 통해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휴일에 쉴 수 있고, 휴가를 당당하게 쓸 수 있는 노동자가 된다는 기대감으로 조합원들은 설렌다.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을 보는 순간 “와, 젊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조합원 평균연령이 45세인 금속노조에서 보기 드물게 전체 조합원이 30대 초반이기 때문이다. 그냥 모여서 앉아있을 뿐인데도 밝은 에너지로 가득 차 그야말로 ‘자체발광’이다.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은 경제자유구역이라는 허울뿐, 허허벌판인 한반도 서쪽 끝 송도 산업단지에 당당하게 금속노조 깃발을 꼽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은 이미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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