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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정신 계승하여 현대중공업 원하청 단일노조 건설하자[금속열사열전 16] 박일수 열사(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하창민  |  edit@ilabo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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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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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2004년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유서를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간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박일수 열사 13주기입니다. 박일수 열사는 1954년 9월3일 경주에서 태어나 2000년경부터 현대미포조선 하청노동자로 일했습니다. 2002년 3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인 인터기업에 입사한 뒤 열사는 사내하청노동자 모임 ‘한마음회’를 만들어 임금체불 문제 해결을 도우며 하청노동자를 조직했습니다. 열사가 하청노동자를 조직하며 활동하자 현대중공업은 2003년 12월 박일수 열사의 모든 전산 자료를 말소해 열사를 부당해고 했습니다. 울분에 찬 박일수 열사는 2004년 2월14일 새벽 현대중공업 공장에서 자기 몸에 불을 붙여 자결하셨습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즉시 ‘박일수 열사 분신 투쟁 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를 구성하고 열사 투쟁을 조직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노동조합(아래 현중노조)는 2004년 2월15일 기자회견을 열어 “박일수는 열사가 아니다. 개인사를 비관해 자살한 것”이라고 열사를 음해하며 대책위 불참을 통보했습니다.

   
▲ 2004년 4월9일 치른 박일수 열사 전국노동자장.

박일수 열사가 일했던 인터기업 노동자들이 2월16일 작업거부를 시작했고,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당시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조합, 아래 지회) 조합원 세 명이 다음날 지브크레인 점거농성에 돌입했습니다. 그러자 현대중공업은 경비대를 동원해 농성자들의 바지를 벗기고, 손발을 묶고, 입에 재갈을 물리는 등 비인간적 폭력진압을 자행했습니다.

대책위 참여를 거부한 현중노조는 2월25일 어용 대의원을 동원해 열사 빈소에서 난동을 부린 것을 시작으로 열사투쟁 54일 중 빈소를 여섯 차례나 폭력 침탈하고, “현중노조를 배제한 채 사측이 대책위와 협상하려 할 경우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교섭을 방해했습니다.

대책위는 3월8일 현중노조가 참여하는 교섭을 진행하되 금속산업연맹에 현중노조 제명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지회는 “열사가 현중노조를 어용노조로 규정하고 있으며, 열사투쟁 이후 현중노조가 반노동자 행위를 해서 협상참여는 불가능하다. 결정을 재고하고, 투쟁 주체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하는 형태로 결정”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대책위는 3월12일 현중노조와 사전협의를 진행하고, 3월17일 현대중공업과 협의를 시작했습니다. 결국 대책위는 4월6일 잠정합의안을 도출하고, 4월7일 합의했습니다.

대책위와 현대중공업 합의사항에 “지회 간부 및 조합원의 회사 출입을 보장하고 업무방해를 하지 않는 범위에서 사업장 내 조합활동을 허용하고, 하청노조 가입이나 활동을 이유로 어떠한 불이익도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현대중공업은 합의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후 하청노조에 가입한 사실이 드러나면 해고하거나, 업체를 폐업하고, 블랙리스트에 올려 현대중공업과 미포조선, 삼호중공업 등 현대중공업계열 조선소는 물론 대우조선, 삼성중공업까지 취업을 막았습니다. 이 때문에 하청노동자들이 지회 가입을 꺼리면서 지회는 힘든 시기를 겪어왔습니다.

지회는 2011년 다시 현장 중심으로 임원과 상집간부를 인선하고 현장조직화에 매진했습니다. 지회는 2013년 조합 가입 대상을 현대중공업뿐 아니라 현대미포조선까지 확대했습니다. 이 시기 현중노조는 12년 만에 민주파가 당선됐습니다. 현중노조의 민주파 집행부 당선으로 활동공간이 열리면서 원·하청노조는 2014년 공동사업을 처음으로 실현했습니다.

첫 공동사업으로 박일수 열사 10주기 추모사업을 벌인 점은 상징성이 매우 큽니다. 정병모 현중노조 위원장은 노조 소식지를 통해 박일수 열사와 하청노동자에게 10년 전 일을 공식 사과했습니다. 현중노조와 지회가 공동으로 2월14일 박일수 열사 10주기 현장 추모집회를 열고, 현대중공업이 출입을 막은 지회장은 유선으로 추모발언을 했습니다. 박일수 열사 추모주간을 맞아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이 10년 만에 중식시간에 식당에서 직접 유인물을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하청지회는 2014년 12개 사내하청업체와 교섭을 진행했지만, 하청업체의 교섭해태와 원청 방해로 합의에 이른 곳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결국 해고자 세 명이 발생했습니다. 2016년 25개 업체와 교섭을 했지만 13개 업체는 단체교섭 중 노조탈퇴 회유·협박과 폐업, 조합원 퇴사 등으로 임단협에 실패했습니다. 특히 단체교섭 중임에도 핵심 조합원이 속한 업체를 폐업해 무려 해고자 아홉 명이 발생했습니다.

2016년 12월22일 현대중공업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이날은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이운남 열사의 4주기 기일이었습니다. 이운남 열사는 박일수 열사 분신 사흘 뒤 크레인 점거농성을 벌이다 폭력진압과 구속을 당했고 이후 오랫동안 외상 후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고생하다가 2012년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자결하셨습니다.

박근혜 퇴진 투쟁의 역사적인 해에, 열사 기일에 열린 추모집회가 끝나갈 즈음 놀랍고도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현중노조가 조합원 총회에서 76%가 넘는 압도적 찬성으로 금속노조 전환을 가결했습니다. 2016년 9월말 현중노조의 산별전환 추진 소식을 접한 지회는 환영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지회는 산별전환은 구조조정 저지‧분사 철회를 위한 강고한 투쟁 속에서 이뤄져야 하고, 이 과정에서 대대적인 하청조직화와 이에 따른 조직개편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현중노조의 금속노조 산별전환은 박일수 열사 앞에서 오욕의 역사를 완전히 청산하겠다고 다짐하는 일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열사 영정을 짓밟았던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는 일이 산별전환과 원․하청 단일노조 건설의 전제입니다.

하창민 울산지부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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