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공영성을 말하면서 야당이 내놓은 방송법 개정안은 기존의 방송계를 흔들어 야당과 노조의 방송장악으로 이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2월3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정우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내놓은 이 주장에 대해 언론노조는 같은 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적반하장”이라고 응수했다. 적반하장, 도둑이 되레 매를 든다는 얘기다. 왜 언론인들은 정 원내대표의 주장을 반박하며 이 사자성어를 선택했을까.

정우택 원내대표가 “기존의 방송계를 흔들” 것이라고 우려하는 방송법 개정안은 2016년 7월 160명의 야당과 무소속 의원들이 공동 발의한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으로 흔히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으로 부른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의 주요 내용은 ▲공영방송 이사 추천 몫을 여야 7대 6으로 개선하고 ▲사장 선임 시 이사회의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는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며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를 설립하자는 내용이다. 즉, 사장 선임 등의 주요 의사결정을 맡는 공영방송 이사회의 절대 다수를 대통령과 여당이 꽂아 넣은 인물들로 구성하는 구조에서 탈피해, 어느 정파에서 권력을 쥐더라도 언론을 제 입맛에 맞게 세팅하려는 시도를 원천 차단하자는 주장이다.

대통령과 여당의 뜻을 대리하는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사장 선임 권한이 있는 공영방송 이사회를 장악하고, 사장을 통해 해당 방송사의 인사와 보도에 개입한 사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차고 넘친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KBS 보도를 책임진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지난해 세월호 청문회 등을 통해 공개한 길환영 당시 KBS 사장과의 대화를 보면 이런 정황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길 사장은 평소 박 대통령 관련 뉴스를 무조건 주목도가 높은 20분 이내에 전진 배치하라는 요구를 하는 것도 모자라 큐시트까지 일일이 챙겼다.

▲ 대통령과 여당의 뜻을 대리하는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사장 선임 권한이 있는 공영방송 이사회를 장악하고, 사장을 통해 해당 방송사의 인사와 보도에 개입한 사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차고 넘친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KBS 보도를 책임진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지난해 세월호 청문회 등을 통해 공개한 길환영 당시 KBS 사장과의 대화를 보면 이런 정황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길 사장은 평소 박 대통령 관련 뉴스를 무조건 주목도가 높은 20분 이내에 전진 배치하라는 요구를 하는 것도 모자라 큐시트까지 일일이 챙겼다. 언론노조 KBS본부가 2월9일 발행한 노보 특보다. 국민의 방송을 지키고 박근혜 정권 공범을 청산하기 위해 KBS 양대노조가 총파업을 벌인다.

즉, 언론의 자유와 보도·제작·편성의 독립 등을 적고 있는 헌법과 방송법 등이 대통령과 여당의 ‘인사권’보다 힘이 없는 게 바로 정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흔들릴까 우려한 “기존의 방송계”의 모습인 것이다. 언론인들 입장에선 언론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언론이 언론으로 기능할 수 있게 하는 1의 원칙을 선출된 권력이라는 이름 아래 강탈해온 9년의 집권세력이 야당과 노조의 방송장악 운운하며 그들이 보기에 좋았던 기존의 방송 질서가 흔들릴까 우려하는 모습에서 도둑이 되레 매를 든다는, 적반하장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촛불 민심은 현재의 무능하고 부패한 집권세력을 집권세력으로 기능하게 한 원인 중 하나로 언론을 꼽고 있다. 광화문광장에 울려 퍼진 “언론도 공범”이라는 외침은 이런 문제의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하지만 대통령을 탄핵한 민심 앞에서도 ‘사전 기획 세력’을 의심하며 주어와 술어가 모호한 말들을 여전히 뱉고 있는 대통령과 여당은 여전히 권력에 기생해 권력에서 제공하는 향응의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며 사실을 감추고 진실을 왜곡하기 위해 펜을 흔드는 언론의 설 자리가 줄어들까 우려하고 있다.

언론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례로 <동아일보>의 경우 지난 2월3일 신문 사설에서 “민주당의 언론 개혁이 방송법 개정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집권할 경우 노무현 정권의 언론 탄압을 방불케 하는 ‘노무현 시즌2’가 될까 걱정스럽다”며 방송법 개정안을 내놓은 야당의 ‘의도’를 문제 삼는 모습을 보였다. 이 사설에서 <동아일보>는 참여정부 시절 노조위원장 출신의 최문순 씨가 MBC 사장에 임명된 사례를 언급하며 야당의 방송법 개정의 의도가 과연 순수한지 질문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에 불려가 방송사 내부의 인사 문제를 이유로 ‘조인트’를 맞은 공영방송 사장이나, 대통령 특보 출신의 사장을 반대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된 언론인들, 이사회를 통해 공영방송 사장 선임 문제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정권의 문제 등은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영방송 사장이 노조위원장 출신의 기자라는 사실이 과연 방송사 내부의 ‘좌파’를 청소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청와대에 불려가 ‘조인트’를 맞는 공영방송 사장보다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해하는 일로 꼽힐 수 있는 걸까.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송법 개정을 불순한 의도로 몰아가는 현재의 집권세력과 언론들의 “기존의 질서가 흔들린다”는 주장이 “기레기 포에버”로 들리는 이유다.

김세옥 미디어 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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