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말: “몸을 훑어보는 시선이 느껴지면 기분 나빠요.” “반말은 일도 아니죠.” 음식점, 판매 등 서비스업종에서 일하는 여성 청소년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일상으로 겪는 일이다. 알바생에게 업주는 고용주라 갑이고 손님은 왕이라서 갑이다. 알바생들은 힘없는 을에 속하고 여성 알바생들은 을 중 가장 만만한 을 위치에 있다. 여성 청소년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노동실태와 인권실태를 살펴본다.

 

딸 키우기 무서운 세상이라고 한다. 이런 세상에 나가 최저시급을 받으며 노동해야 하는 ‘청소녀’들이 있다. 그녀들은 같은 알바생인 남성 청소년이 겪지 않는 부당한 상황을 감내하며 일한다.

“새해 첫날 화장실가서 운적도 있어요. 손님이 잘못 한 건데 너무 억울했어요. 진상손님이 오시면 감당하기 힘들어요. 제가 여자고 어려서 더 함부로 하는 것 같아요.”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1년째 하는 남보나 씨를 만났다.

“손님이 다짜고짜 반말을 해요. 알바비 몇 푼 벌려고 이런 취급을 당하나 눈물이 나요. 일한지 1년 됐지만 임금은 첫날이나 지금이나 똑 같아요.” 매서운 강추위가 찾아왔고 서울에 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보나 씨를 만난 카페 창밖에 눈 내리는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런 날 친구들과 재잘거리면 즐거울 22살 보나 씨지만 감상은 사치고 알바하러 일터로 가야한다. 보나 씨는 대학 1학년을 마치고 휴학 중인데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은 생활비로 쓰고 등록금에도 조금 보탤 계획이라고 한다.

 

낮은 임금, 불안하고 위험한 노동환경

청소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부모님 용돈에 기대기 미안해서, 받는 용돈이 충분하지 못해서, 가정 형편 상 자신의 생활비는 스스로 책임져야 해서, 비싼 등록금을 부모님에게만 의존할 수 없어서…….

알바노동을 해서 번 돈은 주로 교통비와 통신비, 친구들과 만나면 써야 하는 식비, 문화생활비 등 살아가는데 드는 필수 비용, 말 그대로 생활비다. 아르바이트 노동시장은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고 업주가 요구하는 만큼 노동 강도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노동이다.

▲ “손님이 다짜고짜 반말을 해요. 알바비 몇 푼 벌려고 이런 취급을 당하나 눈물이 나요. 일한지 1년 됐지만 임금은 첫날이나 지금이나 똑 같아요. 새해 첫날 화장실가서 운적도 있어요. 손님이 잘못 한 건데 너무 억울했어요. 진상손님이 오시면 감당하기 힘들어요. 제가 여자고 어려서 더 함부로 하는 것 같아요.” 사진=신동준

“일하는 중 핸드폰으로 시계를 봤더니 딴 짓을 했다며 그냥 집에 가라고 하셨어요. 모두 13시간 중 9시간 일했는데 가라고 해놓고 시간을 못 채웠다고 돈을 주지 않았어요. 친구랑 노동부에 신고를 했더니 업주는 우리가 몇 만 원짜리 스테이크를 손님들 앞에서 썰어먹었다고 했어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따졌더니 그때서야 개인적으로 연락이 와서 돈을 주셨어요. (신 모 씨, 18세 여성/ 서울시 ‘청소녀’ 아르바이트 실태조사 중 인용)

남성 청소년들은 배달 아르바이트나 택배 상하차 같은 몸은 고되지만 상대적으로 시급이 높은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다. 여성 청소년들은 음식점이나 편의점, 판매, 카운터 등 서비스 업종에서 주로 일한다. 여성 청소년들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가 이런 곳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십대 여성청소년 아르바이트생들은 을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놓인 을이다.

 

“일하는데 아저씨가 엉덩이를 만지고 갔어요”

“제 친구는 같이 일하던 아저씨가 엉덩이를 슬쩍 만지고 지나가 깜짝 놀랐대요. 나중에 알고 보니 친구한테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여자 알바생들에게도 그런 거예요. 성추행이라는 건 아는데 어른이라 무섭기도 하고… 친구도 순간 너무 당황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대요. 어리니까 더 만만히 보는 것 같아요.” 보나 씨 친구가 당한 성추행이다.

“페이스북이나 인터넷에서 알바생 성추행 기사를 읽어보거든요. 왜 대응을 못하고 당했을까 화가 나긴 하는데 본인은 정말 무서웠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랬다고 해요. 막상 저도 성추행을 당하면 당황스러워서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자신 없어요.”

서울시 ‘아르바이트 십대 여성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이들 중 절반 가까운 49.8%가 ‘십대 여성이라서 더 힘들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유는 ‘성폭력이나 폭력, 폭언 위험’ 때문이라고 대답한 경우가 전체의 39.3%를 차지했다.

실태 조사에 따르면, 무려 절반이 넘는 십대 여성들이 손님이나 관리자로부터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당했다. 성희롱을 당했을 때 참고 일하거나 그냥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항의를 하거나 신고를 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제가 1년 가까이 한 업체에서 일하다보니 점장님하고 친해요. 점장님이 가끔 장난을 치는데 하루는 제 어깨를 꽉 잡고 눌러서 너무 아팠어요. 아프다고 하는데 놓지 않고 계속하니까 화가 났어요. 장난이라고 하니 뭐라고 할 수 없잖아요.” 보나 씨는 일하는 중에 신체를 만지거나 특정부위를 훑어보는 시선과 함께 언어폭력도 흔하게 경험한다고 말한다.

“어느 날 사장님이 내 다리를 훑어보며 ‘네 허벅지가 내 허벅지보다 굵다’고 하셨어요. 일하는데 굳이 허벅지 굵기를 얘기할 필요는 없잖아요. 제 친구는 일하는데 남자친구가 와서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는데 점장이 ‘뚱뚱한 애가 달려가니 지진 나는 줄 알았다’고 놀렸대요.”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말에 한창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성인들이 청소년들에게 함부로 말하는 원인은 청소년들을 자신과 동일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고 ‘어리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 가게에서 발행하는 영어학원 할인 쿠폰이 있어요. 한 손님이 행사기간이 지났는데 해달라고 우기는 거예요. 일하는 입장에서 행사기간이 끝났다고 매뉴얼대로 말했는데 우기며 윽박질렀어요. 성인이면 그렇게 했을까 싶어요. 제가 어리고 만만하니까 그랬다고 생각해요.” 보나 씨 그 일이 마음에 사무쳐 어제일인 듯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손님이 계산을 기다리다 그 손님한테 ‘알바생도 사람인데 그만하라’고 말해주셨어요. 마음이 울컥했어요. 식사하던 손님들도 다 쳐다보고… 결국 점장님이 와서 안 된다고 하니 정리됐어요. 점장님은 저한테 손님이니까 네가 참으라고 하더라고요. 손님은 막말 퍼부어도 되고 점장은 나한테 참으라 하고 이유 없이 당한 저는 손님에게도 점장님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거죠.” 보나 씨 얼굴에 억울함과 서러움이 묻어난다.

“같이 일하는 친구가 조금 짧은 치마를 입고 왔어요. 남자 손님이 슬쩍 슬쩍 훑어보는 게 제 눈에 띄었어요. 친구를 불러 조심하라고 얘기해줬어요. 그 손님은 우리 또래 딸이 있을 만큼 나이 드신 분이었는데 딸 같은 사람을 그렇게 훑어보는 건 아니잖아요.”

 

성희롱-성추행 방관, 당하는 사람 용모 단속

불쾌한 시선에 노출되지만 딱 집어 말할 수 없어 고스란히 받아내며 일해야 하는 현실이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는 여성 청소년들의 일상이다. “알바생들중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어요. 여자 알바생들은 머리모양 등 용모를 점검받고 허리 펴고 조신하게 앉으라고 해요. 남자 알바생들은 의자에 다리도 올리고 자유분방해도 뭐라고 하지 않으면서.”

십대 여성 청소년 아르바이트생들은 성희롱-성폭력 등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현장에서 일하지만 되려 여성청소년들은 용모나 행동을 통제받는다.

▲ “중고등학교 수업에서 노동인권이나 최저임금, 노동조합 같은 내용을 배우지 않아요. 어디에서도 이런걸 알려주는 데가 없는데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보나 씨는 청소년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권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당하는 이유는 안 배워서가 배울 수 없어서라고 말한다. 물론 법을 안 지키는 사람은 어른이다. 사진=신동준

“어떤 아저씨가 자기 가게에서 일할 생각이 없냐고 묻더라고요. 횟집인데 돈을 더 준다고 해서 갔어요. 술 마시는 아저씨들 때문에 고생했어요. 술만 마시면 ‘아가씨’라고 불러요. 횟집은 앉아서 술 마시잖아요. 저는 치마 입고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일하는데 다리 만지는 사람들도 있고…” (여성주의 매체 ‘일다’ 기사 중 발췌)

이런 증언은 특별한 게 아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흔한 일’이다. 중년 남성들은 음식점에서 일하는 여성을 부를 때 “어이 아줌마” 라는 반말은 흔히 한다. 서비스업종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에게 막대 하는 행위를 별스럽지 않게 생각한다. 은근히 성희롱 섞인 농담을 건네는 일이 다반사다. 성인 여성노동자들은 심할 경우 항의라도 하지만 10대인 여성청소년 노동자들은 어른들이 하는 말에 대꾸하거나 대응하지 못한다. 무섭기 때문이다.

 

여성 청소년들이 안전하게 일하기, 어떻게 가능할까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생활비를 벌기위해, 혹은 미래를 위해 십대 여성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십대 여성들은 불안정하고 불합리한 노동환경에서 벗어나 좀 더 안전하고 가치 있는 일을 원한다. 청소년은 나라의 미래라고 한다. 아이들은 모두의 아이들이다. 나라의 미래인 이들 중 일하는 청소년들은 있는 법도 지키지 않고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환경 속에 방치되고 있다.

우선 청소년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와 인권을 지킬 수 있도록 노동인권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학교 교육과정에 노동인권교육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청소년들이 노동을 통해 돈과 노동의 가치를 올바르게 경험하고 노동현장에서 존중받아야 사회에 나와 자기 권리를 지켜내고 타인의 권리도 존중 할 수 있다.

법 제도 개선도 시급하다. 노동한 만큼 정당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최저임금을 1만원 수준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지키도록 사업주를 관리, 감독하고 위반하는 업주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보나 씨가 자신의 가방을 보여준다. 가방에 ‘18세 참정권 보장’ 이라고 적힌 배지를 달았다.

“18세부터 선거권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 교육은 단지 시험을 보기 위한 것이지 진정한 공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교육관련 법 제도를 만드는데 교육을 받는 당사자인 청소년들 입장은 하나도 없이 어른들의 생각만으로 법을 만들잖아요.” 청소년들을 미성숙하고 어린 존재가 아닌 독립 인격체로 존중하는 사회문화 인식을 높여야 한다.

“중고등학교 수업에서 노동인권이나 최저임금, 노동조합 같은 내용을 배우지 않아요. 어디에서도 이런걸 알려주는 데가 없는데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보나 씨는 청소년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권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당하는 이유는 안 배워서가 배울 수 없어서라고 말한다. 물론 법을 안 지키는 사람은 어른이다.

 

지금 노동자도 미래 노동자도 중요한 노동인권

금속노조 서울지부 경기북부지회는 <경기북부 노동인권센터>와 함께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진행할 강사단 훈련을 했다. 지회 상근자와 지역 활동가들이 2016년 10월부터 12월까지 열 개 강의를 이수하고 2017년부터 각 학교에서 노동인권교육을 벌일 예정이다.

진보교육감을 배출해 당선된 서울, 인천, 광주, 경기 등 학교가 자율적으로 노동인권교육을 실시하도록 보장하고 교육을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같은 노동조합 위탁해 실시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노동인권 교육은 현재 노동자인 우리 금속노동자들도 반드시 필요하다. 나의 노동기본권을 지키고 투쟁해야 함께 살아가는 모든 노동하는 사람들의 노동기본권과 인권이 존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인권이 보장받아야 내 인권도 보장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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