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았다. 노조는 열사 묘역에 참배하며 한 해 사업을 다듬고 결의를 다질 시기다. 신년 인터뷰에 응하는 김상구 금속노조 위원장에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시작한 촛불항쟁과 정권퇴진 투쟁부터 물었다. 생각하고 고민할 것이 많은 위원장은 마냥 기대할 수만은 없다고 답했다.

 

촛불정국을 거치며 시민들의 요구가 이전에 비해 질적으로 달라졌다. 우리가 그토록 주장했던 내용이 시민 목소리로 터져 나와 희열을 느꼈다. 감격스러웠다. 희망을 보는 한편 위원장으로서 걱정이 늘었다. 노조는 정세를 앞서나가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같이 따라가야 한다. 조합원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조합원 정서를 살펴보면 기대만큼 되지 않은 듯하다. 촛불항쟁에 대한 우리 조직 노동자들의 대응에 고민이 많다.

 

자랑스러운 투쟁, 아쉬운 준비

김상구 위원장은 노조가 그동안 쌓아온 저력을 발휘할 비상한 시국을 맞았지만 역량 발휘가 기대만큼 원활하지 못하다는 눈치다. 진행형인 투쟁에 대한 평가는 잠시 접고 집행 2년차를 맞아 챙겨야할 사안이 더욱 많아진 위원장에게 지난해 교섭과 투쟁에 대한 개인 평가를 물었다.

 

투쟁 면으로 보자면 굉장히 모범적이고 잘했다고 생각한다. 항상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이다. 우리 조합원과 간부들은 보수 정권이 10여 년 동안 벌인 온갖 억압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버텨냈다.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보자는 목표를 지켜왔다. 모범적으로 투쟁을 벌여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자체만으로 높이 평가해야 한다.

다만 전반적으로 애초 설정한 목표에 상당히 다다르지 못했다. 전술 평가에 차이는 있겠지만 지도부가 이 같은 조합원 투쟁에 못지않게 정책 과제를 좀 더 잘 실현하고 결합시키며 준비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침체하고 후퇴하는 산별운동을 반전시키는 시점을 잡자는 목표가 있었지만 부족했다.

▲ “투쟁 면으로 보자면 굉장히 모범적이고 잘했다고 생각한다. 항상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이다. 우리 조합원과 간부들은 보수 정권이 10여 년 동안 벌인 온갖 억압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버텨냈다.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보자는 목표를 지켜왔다. 모범적으로 투쟁을 벌여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자체만으로 높이 평가해야 한다.” 사진=신동준

 

조금 더 빠른, 조금 더 촘촘한 대응 필요

금속노조는 지난해 최초로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을 시도했다. 이른바 중앙교섭과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을 병행하자는 투트랙 전략이다. 1년차 교섭과 투쟁에 대한 평가를 좀 더 물었다.

 

아쉬운 점은 두 가지다. 우선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이지만 자본의 준비와 공세에 대한 우리의 대비와 대응이 부족했다. 사업장 지부, 지회들은 여전히 기업별 대응에 익숙해 극복할 준비가 덜 돼 있었던 것 같다. 노조가 조금 더 일찍, 좀 더 촘촘하게 대응해 기회를 살려야 했다. 교묘하게 기업의식을 부추기는 자본에 대처하지 못한 결과다. 이러다 보니 교섭과 투쟁을 동시에 가져가기보다 투쟁전술에 기울었다.

두 번째 아쉬운 점으로 장기전략에 대한 모색보다 너무 투쟁전술에 방점을 찍어 논의하지 않았나 싶다. 과거를 성찰하며 어떻게 변화, 발전할 것인가 하는 점을 폭넓게 토론하지 못했다.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의 경우 처음 시도하다보니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느 해보다 조직 내부 조건은 좋았다.

 

그렇다. 완성차 지부장 동지들과 그룹사 지회장 동지들이 가진 생각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노조와 현대기아차그룹사 지부-지회가 의기투합하는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사전에 좀 더 꼼꼼히 준비하고 대응했다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보통 1년차를 경과하면 지도부가 많이 지친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진 않다. 쌩쌩하다. (웃음) 부족한 부분은 2년차에 채우겠다.

 

핵심은 두 가지. 정치민주화와 경제민주화

통상 금속노조는 임금협약과 단협 갱신이 있는 1년차에 많은 역량을 쏟아 붓고 임원 선거가 있는 2년차에 상대적으로 짧게 정리한다. 더구나 올해 노조 위원장 임기 안에 대통령 선거까지 치를 전망이다. 2년차 과제와 계획을 물었다.

 

딱 두 가지다. 먼저 다가올 임시대의원대회 통과 여부를 떠나 노조의 10년 전망을 세우는 문제를 폭넓게 토론해봤으면 좋겠다. 거기에 맞춰 우리 계획을 설계해야 한다. 규약이나 규정개정 등 실무 문제뿐 아니라 토론을 통해 새로운 방안을 다양하게 소통해야 한다.

또 한 가지는 대선이다. 탄핵으로 조기대선 정국이 오기 전부터 2년차 사업은 대선으로 집중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대선이 임원 임기 안으로 당겨지는 상황이다.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올해 사업은 의제이든 투쟁이든 대선으로 집중해야한다.

이번 대선 핵심은 우선 보수정권 10년의 적폐를 청산하는 정치민주화다. 보수정권이 벌인 모든 정책 피해자는 노동자다. 1987년 이후 정치 민주화를 이뤘다고 생각했지만 이명박-박근혜를 겪고 보니 삼권 분립조차 무너진 정치 후진국이 됐다. 깨어있는 시민과 조직 노동자가 감시하고 참여하지 않으면 정치민주화는 허상에 불과하다.

두 번째 핵심은 경제민주화다. 재벌개혁 없이 노동조합의 질적 발전은 어렵다. 재벌이 정경유착으로 노동개악을 강행하면서 지난해 교섭과 투쟁에서 얼마나 애를 먹었나. 정치민주화와 경제민주화 두 의제는 박근혜 정권 적폐청산의 핵심이다. 이번 대선투쟁의 핵심이기도 하다.

우리를 지지하거나 우리가 뽑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도 좋지만 노동자가 한 표 행사에서 나아가 후보를 직접 선출하고 정책 반영을 요구하는 등 실질적으로 대선 참여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노동자 참여 속에서 대선투쟁을 치러야한다. 우리 조합원과 시민이 직접 정치과정 전반에 참여하는 폭을 넓혀야한다.

 

노조 10년 전망을 세워야한다고 말했는데 어떤 내용이 있을까.

 

노조가 세를 불리고 투쟁을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전망을 만들 수 없다. 350만 금속노동자, 1천5백만 전체 노동자를 금속노조 연대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미조직 노동자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아직 기업지부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연대의식과 계급의식이 흐려지지 않고 있는지 토론해봐야 한다. 노조 교육만 봐도 지회장 교육 등은 산별노조로 묶어 체계화 했지만 지회 대표자 이외 간부나 조합원 교육은 잘 안 되고 있다고 본다. 결국 노조가 지부, 지회 간부들을 연대정신이나 계급의식으로 세우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지부를 단기에 해소하기로 한 결정은 길게 보지 못한 상층부만의 결정이었다고 본다. 기업지부 해소문제는 조직체계 당위만으로 접근하면 산별발전을 담보할 수 없다. 한계가 나올 수밖에 없다.

기업지부를 원하는 조합원만 설득해서 될 문제도 아니다. 전체 금속노동자에게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 가를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금속노조가 350만 전체 금속노동자를 대변하겠다는 고민 속에서 새로운 희망과 장기 전망을 제시해야 대중들이 믿고 함께 갈 수 있다. 적어도 10년을 바라보고 고민해서 노조를 재설계해야한다. 성과에 급급하면 안 된다.

금속노조가 애초 설계대로 잘 작동해 움직이고 있는지 점검하고 시작했으면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금속노조 20년 백서 제작을 고민해야 한다.

▲ “탄핵으로 조기대선 정국이 오기 전부터 2년차 사업은 대선으로 집중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대선이 임원 임기 안으로 당겨지는 상황이다.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올해 사업은 의제이든 투쟁이든 대선으로 집중해야한다.” 사진=신동준

 

17만 금속 조합원 너머 350만 금속노동자 대표하는 전망 찾아야

이번 금속노조 9기 이후라도 금속노조 발전에 대한 폭넓은 토론을 해야 한다. 금속노조 17만 조합원 너머 350만 금속노동자를 대표하는 전망을 찾고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규직 기득권층으로 치부되고 만다.

노조 간부들이 현실에 지쳐 관성적으로 일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스스로 관성을 볼 수 없다. 열어놓고 다른 이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 간부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조합원이나 조합 바깥에 있는 사람이 볼 수 있다. 노조 밖에서 금속노조가 운동성을 잃었다며 비판을 많이 한다. 우리 시각만 주장하지 말고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진지하게 듣고 20년 산별운동에 대해 냉철하게 평가해야한다.

금속노조 미래전망을 찾는 토론을 여러 해 동안 길게 반복했다. 논쟁에서 자칫 내용은 유실되고 껍데기만 남게 된다. 대중에게 희망과 전망을 줄 수 있도록 쟁점에 대한 현실의 대책을 찾자.

 

공세적인 조직확대 전략 수립은 우리 노조가 기존 취하던 교섭틀을 만드는 전략에서 본다면 일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문제다. 교섭이 따라가지 못하는 조직확대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위원장은 이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물론 투쟁, 교섭, 조직 전략이 서로 별개 문제는 아니다. 분리해서 논의할 수 없다. 중앙-지부-지회 교섭 체계를 놓고 구체적인 상을 잡아 대비를 해야 한다. 산별교섭을 법으로 만들더라도 당장 교섭체계가 생기진 않는다. 중앙에서 할 수 있는 교섭체계는 산별중앙교섭, 업종별 교섭 등이 있을 것이다. 중앙교섭이나 업종교섭은 노조 임기 중 한두 번 진행할 것이다.

반면 사회 교섭은 전체 노동자 이해를 놓고 벌인다. 이 같은 교섭은 정부 임기에 2회 정도 열릴 것이다. 더구나 민간 영역에서 정부를 사회교섭 자리에 앉히기는 어려운 과제다. 이 같은 교섭틀을 완비하는 과정은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위원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올해는 짧게 주어진 시간과 만만치 않은 상황 속에서 해결해야할 어려운 과제가 놓여있다. 마지막으로 조합원들에게 새해 인사를 부탁했다.

 

10년 간 보수, 재벌 정권 탄압 속에서 힘들게 연대하고 투쟁하며 노조를 지켜온 조합원들에게 고맙다는 말씀 드린다. 올해 노조가 질적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지도부를 믿고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저는 노조의 모든 역량을 모아 올해 힘차게 투쟁할 것을 약속드린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지만 12년 동안 떨어져 있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금속노조와 함께하게 돼 기쁘다. 또 중요하게 생각한다. 노동자는 연대투쟁이 필요할 때 나서 일어난다. 탄압받고 고통 받는 노동자를 위해 함께 연대하고 싸우는 한 해를 만들자. 좀 더 나은 해, 승리하는 해를 만들자. 건강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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