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말: ‘꿈나무’, ‘나라의 미래’, ‘무서운 10대’……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일컫는 말이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구분하는 사회에서 많은 청소년들은 최저시급이 최고임금인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일한다. 생계를 위한 노동이지만 ‘사회경험’과 ‘용돈벌이’로 불리며 보호받지 못 하고 있다. 청소년 노동자 목소리를 통해 금속노조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역할과 과제를 살펴본다.

 

한국 고등학생은 대략 178만여 명이다. 이중 17%인 30만명 정도가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이들은 3학년 2학기부터 현장으로 실습을 나간다. 고교생 현장실습 실태는 교육도 실습도 아닌 ‘값싼 노동인력 파견’이다.

 

현장실습 빙자한 값싸고 말 잘 듣는 인력 파견

“말이 실습이지 현장학습을 빙자한 채용입니다.” <청소년노동인권 네트워크>에서 활동 중인 하인호 선생이 특성화고 실습생의 처지를 두고 한 말이다. 하 선생은 <인천비즈니스고>에 재직하다가 지난 8월 정년퇴임했다. 전교조 조합원으로 활동했고 특성화고 현장실습 학생들의 처우개선과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을 10여년 넘게 해오고 있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3학년 2학기에 현장실습을 나갑니다. 주로 노조가 없고 열악한 중소영세업체로 나갑니다. 교육도 실습도 아닌 중소영세업체 인력난 해소 차원에 값싸고 말 잘 듣는 인력을 졸업할 때까지 활용하는 제도입니다.” 하인호 선생은 학교에서 공부해야 할 제자들이 취업이라는 굴레에서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내몰리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2013년 정의당 정진후 의원실에서 조사한 고교 현장학습 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실습학생의 43.6%가 50인 미만의 사업체에서 실습 받고 있었다. 300명 이상 대공장에서 실습 받는 학생은 전체 실습학생의 18.8%에 불과했다. 주로 대기업 노동자가 가입한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 사업장에 특성화고 실습생들이 많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삼성반도체는 라인의 절반을 현장 실습생으로 채웁니다. 3학년 2학기에 한 달 공부하고 3월말 쯤 실습 나가 졸업할 때까지 일합니다. 전자회사는 기술도 필요 없고 한 두 시간 교육으로 라인투입이 가능해요. 주로 지방 여상 학생들을 버스로 싣고 와 수원역 분수대 주변에 내려놓고‘너는 냉장고 라인, 너는 TV라인’이런 식으로.”

▲ “특성화고 학생들은 3학년 2학기에 현장실습을 나갑니다. 주로 노조가 없고 열악한 중소영세업체로 나갑니다. 교육도 실습도 아닌 중소영세업체 인력난 해소 차원에 값싸고 말 잘 듣는 인력을 졸업할 때까지 활용하는 제도입니다.” 하인호 선생은 학교에서 공부해야 할 제자들이 취업이라는 굴레에서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내몰리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사진=신동준

하인호 선생이 말한다. “삼성반도체에서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 씨도 이런 경우입니다. 속초여상, 강경여상 등 전국의 큰 여상에서 실습생을 주로 데려가는데 여학생들은 섬세하고 고분고분 말도 잘 듣고 일도 빨리 습득한다며 기업체에서 선호합니다. 황유미 씨는 고 3때 삼성반도체에 실습생으로 와서 유해한 환경에 오래 일하다보니 병에 걸린 겁니다.”

1970~80년대 고등학교나 대학진학을 못하는 시골의 여학생들에게 공부 시켜주고 돈도 벌게 해주겠다며 버스로 수십, 수백 명 씩 실어다 신발공장, 가발공장, 봉제공장등에 투입하던 풍경과 겹친다.

 

현장실습, 교육받을 권리 뺏는 제도

“학기 초인 3월 현장실습은 법 위반입니다. 한 학년 교육과정을 인정받으려면 3분의 2를 이수해야 하는데 11월말이나 12월 초까지 수업해야 합니다. 교육과정은 전공교과와 국영수 등 보통교과가 있는데 실업계는 전공교과를 실습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상당수 학교가 3학년 2학기에 보통교과를 배정하지 않는 편법을 씁니다. 학교는 취업률이 높아야 그 다음해 예산을 배정받을 수 있고, 업체는 싼 값으로 노동력을 보충 할 수 있으니 서로 이해가 맞아 떨어집니다.”

정진후 의원실 고교 현장실습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장실습기간 동안 학생들은 학교에 거의 등교하지 않았다. 시험 때만 등교한 실습생이 46%로 가장 많았고, 현장실습기간 동안 한 번도 학교에 등교하지 않은 학생은 28.4% 였다.

 

학습권, 노동권,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실습생

“아웃소싱업체가 현장실습생의 50% 정도를 모집하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아웃소싱 업체가 ‘삼성에 가서 일 한다’고 학교에 공고하고 모집합니다. 학생들이다 보니 간접고용이 뭔지 잘 모르고, 누구를 통해 가는지 모른 채 ‘삼성에 간다’고 알고 가요. 교육 목적의 현장실습이면 전공에 맞는 업체에 가서 기술을 배워야하는데 아웃소싱 업체가 모집해 데려간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하인호 선생은 이것이 바로 현장실습을 빙자한 채용의 근거라고 말한다.

하인호 선생은 법 제도의 한계를 지적했다. “학교, 교육부는 학생들이 노동현장 실습의 명분으로 일하러 간다는 사실을 알면서 제도와 현실을 탓하며 뒷짐만 지고 있습니다. 노동부는 근로자가 아니라며 발뺌 합니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현장실습은‘직업훈련 촉진법’에 의해 시행합니다. ‘직업훈련 촉진법’은 현장실습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하지 않았고 현장실습의 내용과 가이드라인도 불명확합니다. 현장실습생을 받는 산업체에 어떠한 의무도 부과하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비판한다. 하 선생은“현장실습생의 교육권과 노동권, 인권 등 권리를 침해하는 산업체와 학교를 감독하고 제제할 법 제도 장치가 없다보니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라고 말한다.

하인호 선생은 유럽의 현장실습에 대해“정부가 현장 실습제도를 유럽 모델을 표본으로 들여왔는데 형식만 차용했습니다. 스웨덴이나 독일은 마이스터에게 기능을 배우고 교육을 받는 시스템이고 이를 법으로 철저하게 강제합니다”라고 설명한다.

하인호 선생은 현장실습 표준계약서가 실습생에게 노동법, 근로기준법, 성희롱 예방 교육 등을 의무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업체들이 표준협약서를 꺼린다고 말한다. “실습을 나가면 업체와 학교, 학생 등 당사자가 표준협약서를 체결해야 하는데 강제력 없는 고시여서 안 지키면 그만입니다. 업체는 근로계약서만 쓰고 싶어 해요. 산재 등 문제가 생기면 근로계약서를 쓴 경우 학생하고만 해결하면 되는데 표준협약서를 쓰면 학교가 개입하거든요.”

하 서생은“현실이 이렇다보니 허다하게 일어나는 산재사고나 인권침해 등 부당한 처우는 학교도 교육부도 노동부도 그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학생들도 어디에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모릅니다”라고 안타까워한다.

 

실습생 노동자 산재 사망… 알려지지 않는 죽음

“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 받다 죽거나 다친다는 일은 있을 수 없잖아요. 당장 뉴스에 나오고 엄청난 사회문제 됩니다. 실습도 교육이잖아요. 그런데 실습 받다 죽거나 다쳐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작업 투입할 때 최소의 안전교육이나 보호 장비 없이 일을 시키다 떨어져 죽고 다치게 만듭니다.”하인호 선생은 현장실습 나갔다가 사고를 당한 여러 학생을 회고했다.

“2005년 엘리베이터 정비업체에 실습 나간 학생이 보호 장비 없이 일하다 떨어져 죽었습니다. 2012년 울산 항만공사현장 작업선 전복사고로 실습생이 실종됐습니다. 같은 해 건설현장에 실습을 나갔다가 폭설로 지붕이 내려 앉아 사망했고, 마이스터고 학생이 회사 내 집단따돌림으로 자살한 사건 등 끊이지 않고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학교는 업체 탓, 교육부는 법 제도 탓하며 수수방관하고 노동부는 근로자가 아니라서 소관이 아니라고 발뺌합니다.”

▲ “아웃소싱업체가 현장실습생의 50% 정도를 모집하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아웃소싱 업체가 ‘삼성에 가서 일 한다’고 학교에 공고하고 모집합니다. 학생들이다 보니 간접고용이 뭔지 잘 모르고, 누구를 통해 가는지 모른 채 ‘삼성에 간다’고 알고 가요. 교육 목적의 현장실습이면 전공에 맞는 업체에 가서 기술을 배워야하는데 아웃소싱 업체가 모집해 데려간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하인호 선생은 이것이 바로 현장실습을 빙자한 채용의 근거라고 말한다. 사진=신동준

하인호 선생은 기아자동차에서 일어난 실습생 산재사고에 대해 말했다. “2011년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현장실습 중이던 학생이 주당 58-70시간 이상 노동을 했고 10시간 맞교대라는 살인적인 노동 강도로 일하다 뇌출혈로 쓰러져 아직도 의식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상 미성년자 노동시간은 주당 최대 46시간으로 제한하고 심야노동은 금지하고 있어요. 실습이라면 도장파트만 아니라 여러 공정을 순환해서 실습하고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도장 파트에서 하루 10시간씩 일했습니다. 이건 18세 전후 청소년들이 버티기 힘든 살인적인 노동입니다. 추석 때 정규직들은 모두 휴가를 떠났고 이 물량을 실습생들에게 시켰습니다. 17살에 나가 18살까지 일했는데 그해 12월 일마치고 나오다가 기숙사 앞에서 쓰러졌습니다. 이게 노동착취이지 어떻게 교육 실습입니까?”

이 사건 이후 2012년 4월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 개선 대책」을 세워 현장실습생은 1일 7시간 이내 실습, 주 2회 이상 휴일보장과 야간, 휴일 실습을 금지되었다.

그러나 2013년 정진후 의원실 조사에 따르면 실습생들의 주당 평균 실습시간은 48.6시간 이었으며 최대 98시간까지 일하는 사례가 있었다. 1일 실습시간은 평균 8.9시간, 최대 15시간이었다. 실습생들은 연장실습 월 평균 2.6회, 야간실습 월 평균 1.2회, 휴일실습 월 평균 3.7회 등 상습 연장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 달 내내 연장, 야간, 휴일노동을 하는 사례도 있었다. 실습생들“70.4%가 야간노동이 많아 힘들었다”고 답했고 “72.3%가 작업했던 곳이 위험해서 다칠 가능성이 컸다”고 답했다. “13.6%가 근무시간 중에 정기적으로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고 답해 실습생들이 휴식시간 상당히 부족했다.

 

노동조합과 청소년 노동자 어떻게 만날까

하인호 선생은 기아자동차 실습생 사고 문제 대응하는 과정에서 느낀 금속노조에 대한 아쉬움을 언급했다. “기아자동차에 노동조합이 있으니 노조 덕분에 세상에 알려졌고 대책위를 함께 꾸려 대응한 점은 인정합니다. 우리가 정말 바란 것은 노동조합이 실습생들을 똑같은 노동자의 관점으로 보지 못한 점에 대해 반성과 각성을 담은 양심선언을 이었습니다.”

하인호 선생은 성인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같은 노동을 하고 있어도 학생 또는 실습생 정도로 볼 뿐 노동자로 보지 않는다고 현실을 꼬집었다. “조합원들은 명절휴가를 보내고 그 일을 실습생들에게 시켰어요. 물량을 감당하느라 잔업과 특근, 하루 10시간 이상 야간노동을 했습니다. 이 학생들도 명절에 집에 가고 싶고 친구도 만나고 싶고 쉬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매년 30만명 가까운 학생들이 노동현장에 투입되어 값싼 노동력으로 이용되고 있다. 노동부, 교육부, 산업체는 학생을 이용 할뿐 노동자로서, 권리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노동조합마저 이들에 대한 관심이 아직 미흡하다.

 

여성 실습 학생의 문제는 더 크다

2013년 정의당 정진후 의원실에서 조사한 고교 현장학습 실태조사 결과 여성 실습생 중 생리휴가를 실습기간 동안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는 응답자가 64.7%에 달했다. 41.5%의 학생이‘일이 바빠서 신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답했고‘생리휴가 신청을 했으나 실습업체에서 거부한 경우’도 6.4%나 됐다.

하인호 선생은 실습학생의 노동권, 인권을 부정하는 사회 현실에서 노동조합이 먼저 해야 할 일은‘노동조합의 관점 전환’을 꼽았다. “기아자동차 사건 이후 실습생들에 대한 노동조합의 관심과 인식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실습생들을 연대의 관점이 아닌‘조직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 선생은 노동조합이 이들을 ‘보호해야 할 어린 사람’, ‘도와줘야 할 사람’ 등 관점으로 보면 안 된다고 말한다.

어리다는 시선은 만만하게 여겨 인권침해가 뒤따를 수 있고 ‘도와줘야 할 사람’ 시선은 이들을 주체로서 권리를 보장하기보다 성인노동자 권리의 하부구조로 치부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습생들이 주체적인 요구를 들고 스스로 나설 때 연대하면 ‘조직’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인호 선생은 금속노조가 실습생 노동자들을 지역과 현장에서 만나려면 노동인권교육은 같은 작은 계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청소년 노동인권 단체와 전교조 등이 나서 특성화고 실습생들의 문제를 수없이 제기해온 결과 노동인권과 노동법, 근로기준법 등에 대해 교육시간을 확보했고 이 교육을 각 지역 민주노총과 전교조가 연계해 진행하고 있다.

하인호 선생은 “현장실습생들의 교육권, 노동권, 인권을 지키기 위해 교육부와 노동부 차원에서 법 제도를 개선하고, 노동조합은 청소년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자신의 요구를 조직하고 권리를 지키는 활동을 지원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성화고 실습생 노동자, 이들은 지금 우리 곁에 함께 일하는 동료 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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