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 때 분명히 열심히 하신다고 하셨는데… 열심히 하시네요.”

“어째 말 속에 가시가 있다?”

경상도 사람들은 ‘세다’는 이미지가 있다. 무뚝뚝한 말투와 강한 억양 때문에 경상도 사람들끼리 대화하고 있으면 다른 지역 사람들은 ‘싸우는 거 아닌가’ 하고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1월25일 노조 경주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경주지부 노래패 ‘해오름’ 패원들이 나눈 대화는 얼핏 듣기에 무뚝뚝하다 못해 시비를 거는 듯했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 오랫동안 같이 노래패를 하면서 쌓은 두터운 유대감이 있었다. 패원들은 인터뷰 내내 “왜 이상한 이야기를 하냐”, “그걸 아직도 섭섭해 하고 있었냐”며 서로를 놀리면서도 오랜 시간 함께 한 사람들 특유의 끈끈한 관계를 보였다.

‘해오름’은 경주지부 조직담당자들 제안에서 시작했다. “2012년 4월 조합원 총회를 할 때 지부 조직담당자들이 율동을 할 기회가 있었어요. 당시 지부 조직1부장이던 최익선 현 부지부장과 조직2부장이던 제가 ‘조직담당자들끼리 의기투합해 문화패를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세진지회, 에코플라스틱지회, 디에스시지회 조직담당자들이 모이고 현대아이에이치엘지회 조합원들까지 합류해 ‘해오름’이란 이름으로 경주지부 노래패를 만들었습니다.” ‘해오름’ 창단부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세진지회 조직부장 황재원 패원의 말이다.

▲ 노조 경주지부 노래패 ‘해오름’ 패원들이 지부 강당에서 노래연습을 하고 있다. 경주=김경훈

지부 조직담당자 중심으로 시작한 문화패답게 조직부장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해오름’을 유지하고 있다. 8기 지부 조직부장이던 이용대 패장(디에스시지회), 7기 지부 조직부장이던 황재원 패원이 ‘해오름’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김달성 지부 조직부장이 ‘해오름’을 담당하고 있다. 김달성 조직부장에게 “9기 끝나면 ‘해오름’ 활동하시는 거냐”고 물으니 “당연하죠”라며 웃어 보였다.

‘해오름’ 패원들은 문화패를 하면서 가장 좋은 점으로 하나같이 “다른 지회 동지들을 만났다”를 꼽았다. 곽규태 패원(현대아이에이치엘지회)은 “잘 모르던 다른 지회 동지들을 알고, 친해질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김진찬 패원(디에스시지회)도 “‘해오름’ 활동을 통해 형님, 동생들과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지부 조합원들이 생겨서 좋다”고 대답했다.

 

지역에서 문화패 활동하기

황재원 패원은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로 ‘해오름’을 만든 지 3개월 만에 서울역에서 했던 금속노조 결의대회 문화선동을 꼽았다. “실력은 부족한데 어떻게 밀어붙여서 큰 무대에 섰습니다. ‘되겠나’ 하는 불안감도 컸지만, 최선을 다하고, 열정을 다해서 불렀습니다. 동지들 앞에서 ‘가자 노동해방’을 불렀는데 한마디로 짜릿한 기분이었습니다.”

아쉽게도 그 무대가 ‘해오름’의 처음이자 마지막 서울 공연이었다. ‘해오름’은 그 이후 주로 경주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역에서 활동하면 어려운 점이 많다. 일단 지역에 노동문화 단체들이 별로 없어 노동문화 자체를 접하기 힘들다. 강사가 없어 서울이나 대구 등 다른 지역에서 모실 수밖에 없다.

▲ 황재원 패원은 “어디를 가도 ‘해오름’이란 이름을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2013년 7월10일 노조 임단협 1차 총파업 경주지부 결의대회에서 ‘해오름’이 공연하고 있다. 앞 줄 맨 왼쪽에 있는 이가 황재원 조합원이다. <아이레이버> 자료사진

예산도 문제다. 이용대 패장은 “지역 예산이 부족해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공연할 때가 있다”며 “장비를 갖추면 더 좋은 공연을 할 수 있는데 아쉽다”고 설명했다. 최은진 패원(현대아이에이치엘지회)은 경주역에서 했던 2014년 노동절 집회를 떠올렸다. “그때 경주역 본 무대를 빌리지 못해 음향 설비를 갖춘 버스 앞에서 공연했어요. 5월이라 땡볕이 내리쬐는데 무대도 없고, 길바닥에서 노래하니까 덥기도 하고… 그래도 돌아보면 그때가 기억에 남네요.”

 

“쉰 넘어도 지금처럼 즐겁게 노래하고 싶다”

‘해오름’ 패원들은 “앞으로 문화패 활동을 하면서 해보고 싶은 일이 뭐냐”는 질문에 저마다의 답변을 내놨다. 곽규태 패원은 “금속노조 하면 시민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아무래도 ‘세다, 부정적이다”라며 “사람들이 평소 잘 찾지 않은 사회복지시설에서 공연을 하는 등 시민들이 갖고 있는 금속노조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황재원 패원은 “어디를 가도 ‘해오름’이란 이름을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이용대 패장은 “율동패, 풍물패가 공연할 때 노래패가 같이 공연하면 문화패들끼리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앞으로 지금처럼 함께 노래하고 싶다”는 대답이었다. 김진찬 패원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계속 같이 활동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상요 패원은 “크게 바라는 건 없고 계속 ‘해오름’의 이름 아래 노래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제 나이가 내일모레면 쉰인데 이 나이에 사람들과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어요. 조합활동 하며 계속 즐겁게 같이 노래하고, 조합원들이 우리 공연을 보고 웃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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