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이 지연되는 경우 우리 경제는 불확실성과 사회 비용이 증가하고 대외충격에 취약해짐으로써 고용과 투자를 중심으로 경기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음.”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됨.”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이 ‘2016 상반기 경제전망’에서 내놓은 진단이다. 실제 박근혜 정부는 이에 근거해 올해 조선산업과 해운산업 구조조정을 강행했다.

 

2018년까지 직영인력 41% 5,500명 감축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월31일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에 명시한 대우조선해양의 인력 감축 목표는 직영노동자 5,500명이다. ‘조선 빅3’인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에 대해 유휴인력 조정, 희망퇴직, 외주화 등 감축 방법만 기술하고 인원 수치를 명시하지 않은 것과 대조된다.

대우조선해양에서 지난해부터 해고당한 노동자는 정규직 1천5백여 명, 비정규직 1만여 명으로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재정상황은 훨씬 나쁘다. 올해 2분기 기준 대우조선해양 부채비율은 7천% 수준으로 현대중공업 182.3%, 삼성중공업 263.5%의 수십 배에 달한다. 단기간 내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내년 4월 회사채 4천4백억원 만기가 돌아오고, 7월과 11월에 각각 3천억원, 2천억원의 만기채가 있다.

이 상황만 보면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것처럼 보인다. 이에 앞서 대우조선해양이 왜 이런 부실기업이 됐는지 살펴보면 정부 책임을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가 구조조정 명목으로 내세운 대규모 적자는 주로 해양플랜트에서 발생했다. 빅 3의 2015년 적자 8조5000억원 가운데 7조원이 여기서 생겼다. 빅3를 해양플랜트 산업으로 끌어들인 당사자는 한국 정부다.

▲ 대우조선해양 대주주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산업은행 고위직들은 너도나도 대우조선해양을 뜯어먹기 바빴다. 지난 6월8일 대우조선노조 조합원 등이 청와대 인근에서 일방 구조조정 중단, 부실경영 책임자 처벌, 총고용 보장 등을 촉구하는 대회를 열고 있다. 아이레이버 자료사진

이명박 정부가 2012년 해양플랜트 발전방안을 내놓고, 박근혜 정부가 2015년 해양플랜트를 13대 미래 성장동력 중 하나로 꼽는 등 정부가 해양플랜트 육성 정책을 펴면서 빅3도 정부 방침에 따라 해양플랜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2014년 하반기부터 국제 유가가 급락하고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해양플랜트 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유가가 배럴당 최저 80달러 선을 유지해야 적자를 면한다. 석유를 시추할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가 됐다.

 

한국은 2점, 중국은 9점…턱없이 부족한 정부 지원

조선산업 발전을 위한 정부 지원은 미비했다. 박종식 노조 노동연구원 객원연구원은 “2015년 빅3가 흔들리기 이전까지 정부는 사실상 조선산업을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수출입은행이 발표한 <중국 조선산업 및 국내 중소조선산업 경쟁력 현황>을 보면 조선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9점 만점으로 평가한 결과 중국은 9점이었지만 한국 정부 지원 수준은 2점에 불과했다.

중국은 2013년 ‘조선산업 구조조정 가속과 전환승급 촉진 실시방안’에서 ‘핵심 조선업체’에 대한 여섯 가지 지원책을 제시했다. 중국 정부는 노후선박 폐선, 신규 선박 중국 조선소 발주 해운회사 20% 보조금 지원 등 ‘노후선박 해체 및 신조선 대체발주 지원 정책’을 통해 노골적으로 조선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주도 구조조정, 누구의 무엇을 위한 구조조정인가

대우조선해양 대주주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산업은행 고위직들은 너도나도 대우조선해양을 뜯어먹기 바빴다.

민유성, 강만수, 홍기택 등 전직 산업은행장들은 대우조선해양 관련 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 대상이 된 상태다. 부당투자, 일감 몰아주기, 배임 등으로 대우조선해양을 부실로 몰았다는 혐의다. 산업은행 부행장 출신인 김열중 전 부사장은 회계 조작 혐의로 구속됐다.

언론도 한몫했다. 최순실 비리를 들추는 <조선일보>를 응징하기 위한 폭로였음이 밝혀지긴 했지만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올해 8월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이 대우조선해양 돈으로 향응성 외유를 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송 주필은 전세 제트기를 타고 이탈리아 나폴리와 그리스 산토리니, 영국 등지를 여행하면서 초호화 요트, 골프 관광에 유럽 왕복 항공권 일등석을 제공받는 등 2억원 상당의 초호화 접대를 받았다. 이 일로 송희영 주필은 물러났다.

대우조선해양 경영진은 산업은행 묵인 아래 부실경영을 저질렀다. 임성일 대우조선노동조합 기획실장은 “남상태 전 사장은 수조원대 분식회계를 하고 자기는 책임 없다고 말한다. 노동자들은 임금 삭감 등 고통을 받고 있는데 경영진들은 배당금 받고, 이익을 누리고 책임은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의 잘못된 조선산업 정책과 지원 부재, 낙하산 인사 투입 등으로 인한 피해를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한 조선소 노동자들이 짊어지고 있다. 임성일 실장은 현 상황에 대해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부터 조선소 노동자 3만여 명이 잘린 상황이라 대규모 정리해고를 당장 멈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국 조선산업의 경쟁력은 고급선종을 만들 수 있는 숙련 노동자다. 박근혜 정부가 구조조정 근거로 삼은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은 ‘한국이 중국 등 경쟁국과 비교해 벌커, 중소형탱커, 중소형컨선, OSV, 특수선 등은 밀리지만, 대형‧고급상선은 경쟁우위에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LNG선, LPG선, 대형컨테이너선, 대형탱커 등 대형‧고급상선 네 종은 “모든 공정에서 경쟁국에 비해 우위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숙련 노동자 해고는 한국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는다. 존립근거가 사라진 박근혜 정부가 외치는 구조조정은 누구의 무엇을 위한 구조조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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