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는 서너 가지 조건이 있어야 참여한 사람이 얻는 정신, 신체의 만족이 높다. 집회 성격, 참여자 수, 배후 시설, 해결 전망 등이다. 쟁취할 수 있고, 참여자가 많고, 편리하고, 조기 종결 희망이 있는 집회는 당연히 만족도가 높다. 하지만 그 반대의 조건이 있는 집회는 가슴이 시리고 무겁지만 참여에 후회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후자에 가까운 집회였다. 11월18일 오후 경북 구미시 끝자락 산동면 아사히글라스화인테크노코리아 앞에서 노조가 주최한 ‘아사히 비정규직 투쟁 승리를 위한 500일 결의대회’는 모든 조건이 아쉽고, 어둡고, 어설펐다.

집회장은 아사히글라스 공장이 짓누르는 듯한 축대 밑 도로였다. 비가 왔다. 바닥은 젖었다. 사위는 어두워 갔다. 몸은 으슬으슬했다. 화장실은 1.4km 떨어져 있었다. 지회가 여섯 명이 모이면 승합차를 이용해 화장실로 날랐다. 집회를 보는 사람들은 원청 노동자, 시민이 아닌 경찰 2백여 명이었다. 6개월 실업급여, 6개월 노조 장기투쟁기금은 바닥났다.

환경은 어두웠지만 결의대회를 채운 의지와 사람은 뜨겁고 푸근했다. 300여명의 함성과 호응이 집회장을 덮치는 어둠의 속도를  늦췄다. 노조 구미지부 아사히비정규직지회를 둘러싼 구미지부, 대구지부, 포항지부, 경주지부 조합원들이 달려왔다. 멀리 한국지엠비정규직 창원지회, 광주자동차부품사비정규직지회, 현대자동차울산비정규직지회 등 비슷한 처지에 있는 조합원들이 한달음에 왔다. 갑을오토텍지회, 하이디스지회 등 오래 싸우는 지회들이 아픔을 나누려고 함께했다. 구미지역 노조들이 제 식구처럼 왔다. 박성환, 류금신 등 문화노동자들과 4.16율동패 동지들이 위로와 힘을 보탰다.

▲ 차헌호 지회장(사진 가운데)이 11월18일 구미 아사히글라스화인테크노코리아 공장 앞에서 연 ‘아사히 비정규직 투쟁 승리를 위한 500일 결의대회’에 참여한 조합원들과 손을 잡고 민중가요 ‘함께 가자 이길을’을 부르고 있다. 구미=신동준

 

▲ 11월18일 구미 아사히글라스화인테크노코리아 공장 앞에서 연 ‘아사히 비정규직 투쟁 승리를 위한 500일 결의대회’에 참여한 조합원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 구미=신동준

 

▲ 11월18일 ‘아사히 비정규직 투쟁 승리를 위한 500일 결의대회’에서 지회에 투쟁기금과 물품을 전달한 각 조직 대표자들이 차헌호 지회장(맨 왼쪽)과 함께 싸우겠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구미=신동준

 

▲ 11월18일 ‘아사히 비정규직 투쟁 승리를 위한 500일 결의대회’에서 지회 조합원이 밝은 노래로 대회에 참여한 조합원들을 맞이하고 있다. 구미=신동준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이날 결의대회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힘차고 밝은 노래로 이길 때까지 버틸 수 있다는 의지를 밝혔다. 지회는 법률소송에서도 원청사와 공안당국을 앞서고 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3월25일 ▲아사히글라스가 정당한 노조 활동에 대해 재발 방지 교육을 요청하는 등 노조 활동을 통제하려 한 점 ▲지회가 아사히글라스의 사용자성을 주장한 사실이 계약해지에 영향을 미친 점 등을 들어 ‘아사히글라스의 계약해지는 노조 활동을 위축‧침해하려는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다. 대구지방법원은 10월7일 구미경찰서가 지회에게 보낸 집회금지 통고는 위법하다고 했다.

이날 결의대회에서 차헌호 노조 구미지부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은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제가 아사히에서 6년 동안 일하면서 동시에 4년 대리운전을 했습니다. 연매출 1조원 기업에서 비정규직이라서 하루 14시간을 일해야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노동조합은 살기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차헌호 지회장은 조합원 의지를 대변했다. “우리 조합원 중 한 명은 2살, 4살, 9살 아이가 세 명 있습니다. 생계비 1백만원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새벽에 우유배달하고 아침 7시부터 투쟁에 결합합니다.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서 입니다. 투쟁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 11월18일 ‘아사히 비정규직 투쟁 승리를 위한 500일 결의대회’에 참여한 조합원들이 지회 조합원들의 노래공연에 호응하며 박수를 보내고 있다. 구미=신동준

 

▲ 민중가수 박성환 동지가 11월18일 ‘아사히 비정규직 투쟁 승리를 위한 500일 결의대회’에 참여한 조합원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있다. 구미=신동준

 

▲ 11월18일 ‘아사히 비정규직 투쟁 승리를 위한 500일 결의대회’에서 4.16 율동패 동지들이 힘찬 몸짓 공연을 하 고 있다. 구미=신동준

 

▲ 11월18일 ‘아사히 비정규직 투쟁 승리를 위한 500일 결의대회’에서 민중가수 류금신 동지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조합원들에게 힘을 주는 공연을 하고 있다. 구미=신동준

차 지회장은 정권과 자본이 막아도 갈 길 가다 이기리라고 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아사히 공장을 방문했습니다. 2014년 아사히 일본인 사장이 청와대에 가서 박근혜를 만났습니다. 아사히는 김앤장을 믿고 노조파괴를 자행했습니다. 지난해 6월30일 대량해고 전 노동부 구미지청과 구미시청, 구미경찰서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집단들이 공조해서 벌인 일입니다. 이들이 이기는지 우리 민주노조가 이기는지 한번 싸워봅시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에게 노조가, 15만 조합원들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지회 생계기금 CMS 신청이다.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eUI3V8c6B0tLSEaKnOKgdSv3z2jgnOkA25i6RiSB-O7iEU7g/viewform?c=0&w=1

170명이 해고당하고, 조합원 23명이 남아 싸우고 있다. 2,300명이 1만원씩 결의해 한 달 1백만원의 생계기금으로 싸울 수 있다고 한다.

차헌호 지회장은 말한다. “고립입니다. 투쟁하는 우리가 가장 두려운 것은 저들의 악랄하고 치졸한 탄압이 아니고 최소한의 생계비조차 없어 투쟁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의 고립입니다. 아사히 자본은 장기투쟁대책기금 지급이 끝나는 시점에 또다시 ‘너희 투쟁은 끝났다’며 악선전과 고소-고발, 희망퇴직 등으로 장난을 쳤습니다. 우리의 두려움이 기우였음을 전국의 금속노조 동지들이 연대의 손길로 보여주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아사히글라스화인테크노코리아 하청업체 GTS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과 부당한 노동조건에 맞서 2015년 5월12일 지회를 결성했다 같은 해 6월30일 아사히글라스로부터 계약해지 당했다. 지회는 회사의 계약해지가 부당해고라 규탄하고 아사히글라스 공장과 구미시청 등에서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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