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김세옥의 미디어 속내
부끄러움의 시간[미디어 속내 38] 저널리즘은 ‘허용된’ 자유 안에서 기능하는 게 아니다
김세옥  |  edit@ilabor.org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6.11.18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Jtbc와 TV조선, <한겨레> 등이 연일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관련 특종을 터트리며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상파 방송 3사의 언론인들은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분노를 터트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방송사별로 수위는 다르지만 이달 초부터 지상파 곳곳에서 비상총회와 피케팅, 천막농성, 집회 등이 연이어 열리고 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지상파의 언론인들은 촛불 집회에서 시민들의 욕설 속에 쫓겨나는 게 당연한, 여전히 ‘박근혜’라는 이름 석 자는 성역인 비정상의 보도 현실을 짚으며 “이러려고 기자된 게 아니다”라고 부끄러움을, 지금의 지상파를 이렇게 만든 이들의 책임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상파 언론인들의 이런 목소리는 시청자인 시민들에게 충분히 닿지 못하는 모양새다. 여러 표현들이 있지만 결국 시민들이 하는 얘기는 하나다. 여태 뭐하고 있다가 권력의 힘이 약해지니 앞으로 잘하겠다며 숟가락을 꽂으려 하느냐는 말이다. 언론이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걸 알면서도, 제 밥그릇을 챙기느라 침묵하던 당신들에겐 더 이상 언론이길, 기자이길 기대하지 않는다는, 냉소다.

   
▲ 시청자인 시민들에게 우리도 이렇게 힘들었고 어쩔 수 없었다고 호소할 순 없는 일이다. 언론인들이 강요받은 침묵을 시민들 또한 강요받고 있었지만, 침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론이 침묵한 자리에서 시민들은 벌써 2년이 넘게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대통령의 7시간의 비밀을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경찰이 직사로 쏜 물대포에 맞아 무려 317일 동안 생사를 넘나들다 끝내 숨진 고 백남기 농민의 곁을 지켰다. 강요받았지만 침묵하지 않았던 시민들은 갖가지 죄목으로 법정에 드나드는 처지에 놓였으나 여전히 행동하고 있으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통해 언론이 하지 못한 언론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11월12일 서울 퇴계로에서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는 노동자들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신동준

그러나 사실 지상파의 언론인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특보 출신들이 방송정책을 결정하고 규제를 맡는 정부 기관의 수장부터 방송사 사장 자리를 줄줄이 꿰차자 낙하산 사장 반대와 공정방송의 회복을 주장하면서 파업 등의 저항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해직-징계를 당한 언론인만 400명이 넘는다.

2012년 KBS와 MBC, YTN 등에서 대대적으로 진행한 연쇄 파업도 있었다. 하지만 정권은 바뀌지 않았고, 정권에서 사실상 임명한 것과 다름없는 사장들과 휘하들은 언론인들의 말할 자유를 내부에서부터 박탈하기 시작했다. 대외 활동 신고라는 이름으로 외부를 향한 발언을 막았고, 내부 게시판에 경영진에 대한 비판 글을 올린 이는 징계 대상으로 삼았다. ‘해사 행위’라는 단어가 만능 칼처럼 작동하기 시작했고, 언론인들의 입은 봉해졌다.

하지만 시청자인 시민들에게 우리도 이렇게 힘들었고 어쩔 수 없었다고 호소할 순 없는 일이다. 언론인들이 강요받은 침묵을 시민들 또한 강요받고 있었지만, 침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론이 침묵한 자리에서 시민들은 벌써 2년이 넘게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대통령의 7시간의 비밀을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경찰이 직사로 쏜 물대포에 맞아 무려 317일 동안 생사를 넘나들다 끝내 숨진 고 백남기 농민의 곁을 지켰다. 고통의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뜻과 무관한 협상 결과를 놓고 자화자찬 하는 정부를 언론이 조명하고 있을 당시 이건 옳지 않은 합의라고 비판하면서 할머니들과 소녀상 곁을 지킨 이도 시민들이었다. 그리고 강요받았지만 침묵하지 않았던 시민들은 갖가지 죄목으로 법정에 드나드는 처지에 놓였으나 여전히 행동하고 있으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통해 언론이 하지 못한 언론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그렇기에 시민들의 언론을 향한, 여태 뭐하고 있다가 권력의 힘이 약해지니 앞으로 잘하겠다며 숟가락을 꽂으려 하느냐는 질타에, 우리도 가만히 있던 건 아니라고, 400명이 넘는 언론인이 징계를 당했다고, 설명하려 해선 안 된다. 결코 언론인들이, 지상파가 처한 현실에 대해 멋모르고 던지는 질타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시민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이라면, 언론의 역할을 했어야 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보도와 제작의 자율성은 법이 보장하고 있는 것이고, 이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은 정권이 잘못했으며,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도록 언론의 자유를 보장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언론의 자유가, 저널리즘의 책무는 ‘허용된’ 자유 안에서만 기능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 기본을 냉소로 일깨우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행간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면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지금의 시간들은 언제고 또 반복될 수밖에 없다.

김세옥 <PD저널> 기자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금속노동자소개기사제보광고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서울시 중구 정동 22-2 경향신문 별관 6층 금속노조 | TEL : 02)2670-9507 | Fax : 02)2679-3714
발행처 : 전국금속노동조합 | 발행인 : 김호규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호규
대표이메일 : edit@ilabor.org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금속노동자 iLabor가 생산한 저작물은 정보공유라이선스2.0 : 영리금지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