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말: 언론은 사회의 워치독(Watchdog, 감시견)입니다. 사회가 지켜야할 가치를 위협하는 자본과 정치권력을 감시합니다. 물론 이는 교과서 속 이야기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화된 언론재벌과 재벌언론이 사회의제를 주도하며 권력의 위협요소를 공격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묵묵히 노동현장을 목격, 관찰, 기록하는 ‘노동 담당 기자’가 있습니다. 노동자를 대변하면서 우리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소중한 존재입니다.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지만 노동자이자 관찰자로서 미처 다 쓰지 못한 노동, 노동자, 노동조합에 대한 말과 몸짓을 들었습니다.

‘목격자’ 연재를 구상하면서 <매일노동뉴스>를 첫 인터뷰 대상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1993년 창간한 진보 노동언론, 노·사·정을 아우르며 ‘노동, 세상을 꽃피우는 힘’이라는 슬로건으로 11월10일 지령 6천호를 발행한 세계 유일 노동일간지. 노조 간부라면 아침 일과를 <매일노동뉴스>를 집어 들며 시작할 정도로 노동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와 역할을 차지하고 있으니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 없다.

 

금속노조 정보 습득의 창구 <금속노동자>

잔뜩 흐린 가을 날씨에 어울리는 산뜻한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제정남 기자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초면에 소소한 취재 뒷얘기로 인터뷰를 풀어갈지, 묵직한 금속노조 의제에 대한 의견을 물을지 결정을 못한 상태에서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제정남 기자는 2012년부터 <매일노동뉴스>에서 일했다. 건설, 산업안전, 국회 환노위, 공공부문 등을 두루 거쳐 현재는 민주노총과 금속, 화학섬유노조를 담당하고 있다. 진지하면서도 어색함을 녹이는 밝은 웃음을 짓는 제 기자는 서툰 질문에도 생각을 잘 정리해 술술 풀어냈다. 노조 기관지인 <금속노동자>에 대한 의견부터 물었다.

기자들에게는 중요한 정보창고다. 전반적으로 노조 사업장 돌아가는 소식을 알 수 있다. 금속노조 정보를 습득하는 창구 역할이다. 잊고 있던 투쟁사업장이나 예전에 벌어진 일을 되새겨주는 역할을 한다.

흐뭇한 답이었지만 기관지 칭찬에 더해 금속노조가 지닌 폐쇄성에 대한 지적을 잊지 않았다.

사실 노조 중앙을 통해서 모든 소식을 파악하기 힘들다. 잘 안 알려준다. 단위 사업장이 하는 고민이나 사건을 바로 파악하기 힘들다. 노조의 고민이나 방향성을 파악할 수는 없어 기관지로서 한계나 역할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다.

 

금속산별교섭 - 책임 있는 전략과 목표 제시부터

아픈 지적이다. 금속노조 관행과 속성은 기관지가 노조 내부 쟁점을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기보다 조직 내 논의체계를 우선한다. 폐쇄적인 운영이라면 모든 공식 회의자료와 결과를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공공운수노조와 비교되기도 한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2016년 대표 사업이었던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으로 넘어갔다.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 경우 금속노조가 목표나 로드맵을 제대로 제시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기자회견을 두어차례 했지만 확실히 전달하지 못했다. 외부 학자나 언론이 보기에 당황스러웠다. 처음이라 비판적일 수밖에 없었다. 올해로 끝난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집행부 바뀌면 어찌 될지 의문이다.

▲ “<금속노동자>와 <아이레이버>는 기자들에게는 중요한 정보창고다. 전반적으로 노조 사업장 돌아가는 소식을 알 수 있다. 금속노조 정보를 습득하는 창구 역할이다. 잊고 있던 투쟁사업장이나 예전에 벌어진 일을 되새겨주는 역할을 한다.” 사진=신동준

그룹사 공동교섭은 현대차그룹이 금속노조와 교섭 자체를 부정하는 상황에서 산별교섭 완성을 위해 불가피하게 시도한 방안이기도 하다. 올해 처음 시도한 만큼 정보제공 여부가 평가 기준이 될 수 없다. 의견을 좀 더 물었다.

지금은 비관적인 평가다. 노조 내부 평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올해를 복기하자면 지도부 순수성을 보고 취재해왔는데 현대차 1차 잠정합의안 이후 동력이 떨어져서인지 공동교섭 얘기가 쏙 들어갔다. 그 이후 개별 사업장 교섭으로 흘러갔다. 아쉽다. 책임 있게 산별노조와 산별교섭 전략에 대해 논의해야할 것 같다. 연초에 공동교섭을 목표로 시작했는데 후반에 사업목표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림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새로운 교섭방식을 시도했으면 전면적이고 본격적으로 추진해야한다는 수긍할 수 있는 의견이다. 제정남 기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정체하고 있는 산별교섭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보편적인 노동자 요구를 담은 산별교섭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갑갑하겠다는 생각은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제 무덤 판 역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임단협 앞에만 서면 금속산별이 초라해진다. 조합원 탓만 하면 안 된다. 집행부도 사업장 과제에서 산별과제로 더 확장하지 못했다. 개별교섭으로 가는 상황이 고착화됐다. 과연 금속 단위 사업장이 산별정신에 맞거나 정의로운 교섭을 통해 결과를 만들고 있는가. 자본 입장에서 노조가 산별교섭을 말한들 진실성 있게 느낄까. 그래서 사회의 응원이 작은 것 아닐까.

공동교섭과 중앙교섭은 확실히 다른 것 같다. 결과만 봐도 그렇다. 올해 중앙교섭 결과 나온 것 보고 기자들이 “아… 그래도 산별노조가 하니까 이런 내용이 들어가는 구나”라고 했다. 전체 조합원의 10%밖에 안 되는 작은 리그지만 뭉쳐 앉으니 산업이야기를 한다.

제정남 기자는 산별중앙교섭이 정의로운 요구로 쟁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반박에 동의했다. 대신 분명한 전략 수립을 강조했다.

어려움은 알겠다. 사용자는 교섭 안 하려하고, 제도도 안 돼 있어 강제도 못하고, 사법부에서 상신브레이크 사례처럼 판결해버려 산별노조 망가지고. 그렇다면 사용자를 굴복시킬 정도로 투쟁하든지, 법제도 개선이라면 보수야당을 통해서라도 합의를 하든지, 아니면 정치세력화 방침을 통해 관철할 수 있도록 20년 플랜을 세워 현장에서 실천하든지 선택해야한다. 산별노조가 진정 맞다고 생각하면 합당한 계획을 여러 세력과 함께 만들어야한다. 방향을 수립해야하는데 지금은 계획을 못 세우고 흘러가는 것 아닌가. 현대차지부가 솔직한 것 같다. 어려움에 대해 일정부분 시인한 것 같다.

 

산별 조직, ‘우리 편’ 양성위해 안과 밖이 한결같은 실천해야

현대중공업노조 금속산별 전환 시도를 계기로 언론에 보도된 현대차지부 지역편제 문제 등 산별조직과 조직관장력에 대해 물었다.

내년에 현대차가 지역편제 돼야 한다. 일 년 앞두고 논의 안 되고 있지 않나. 어렵다는 상황을 알기 때문에 보수언론도 내년 현대차 지역편제를 놓고 놀리고 비아냥거리는 거다. 언론만 알겠는가. 정치권, 자본, 청와대도 안다. 올해 일부 사업장의 통제할 수 없는 노사합의, 비정규직 농성투쟁 후속조치, 판매직 노동자 노조가입 문제 등 곳곳에서 금속노조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책결정권자들도 다 알고 있다. 금속이 대외적으로 주장하는 요구와 오버랩 된다. 안과 밖이 다른 모습을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그런 걱정이 있다. 아주 작은 모습이라 전체로 확대하면 안 되지만 이런 모습을 바탕에 깔고 비아냥거리진 않을지, 금속노조를 무서워하지 않고 콧방귀 뀌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 “갑갑하겠다는 생각은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제 무덤 판 역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임단협 앞에만 서면 금속산별이 초라해진다. 조합원 탓만 하면 안 된다. 집행부도 사업장 과제에서 산별과제로 더 확장하지 못했다. 개별교섭으로 가는 상황이 고착화됐다. 과연 금속 단위 사업장이 산별정신에 맞거나 정의로운 교섭을 통해 결과를 만들고 있는가. 자본 입장에서 노조가 산별교섭을 말한들 진실성 있게 느낄까. 그래서 사회의 응원이 작은 것 아닐까.” 사진=신동준

일부 문제를 과장하는 듯 했지만 타당한 지적이긴 하다. 그러나 그런 문제 해결이 산별교섭이나 조직관장력 문제를 해결하는 효과가 있을지 묻자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을 이어갔다.

효과가 크지는 않을 거다. 대신 사회적 의제를 세울 때 순수성은 인정받을 거다. 사회적으로 노조가 지탄받아도 된다. 다만 우리를 대변해주는 ‘우리 편’을 돌아서게 하면 안 된다. 우리 편이 자동적으로 양성되는 사회가 아니다.

현대차 잘 나갔고 임금인상 요구 당연히 했다. 회사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임금인상 일부 수용하며 나머진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노조도 어느 순간 동의해줬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거다. 산별이 아니니 통제가 안됐던 면도 있다. 진정한 산별이면 대놓고 못했을 거다. 그러나 금속 역사 속에서 실기한 점이 있다. 그런 중대한 실기 때문에 당연한 노동자 요구가 욕을 먹게 되지 않았나 싶다. 조선산업도 마찬가지다. 호황기 때 정규직 임금 올리는 대신 2차, 3차 하청 썼고 노조는 묵인해준 것 아닌가. 이제 해결 못할 과오로 남았다. 지금 완충지대였던 비정규직 나가떨어지고 정규직한테 칼날 들어오니 나서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게 기업별 노조의 한계 아닐까.

 

임금, 당당해야한다

현대차 얘기가 나온 김에 임금문제로 주제를 바꿨다. ‘고임금 귀족노조’ 대표로 꼽히는 완성차 노동자에 대한 적대 프레임이 강고하다. 프레임이 워낙 광범하게 퍼져있어 노조가 논리와 근거를 쉽사리 전달하기 어렵다. 이는 완성차 지부뿐 아니라 우호적인 세력조차 마찬가지다. 제정남 기자는 당당함을 요구했다.

생산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고 그만큼 정당하게 받아야한다. 현대차 자본이 가져가는 몫은 점점 더 커지는데 노동자는 점점 더 못 가져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노조는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때려잡아랴할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사회의 지탄받는 상황이 노동자들의 잘못일까. 공격에 우리가 밀리는 거다. 새빨간 거짓말도 제대로 방어를 못하고 있다. 당당해야 한다. 고교 교육에 임금산정 과정만 넣어도 많이 해결될 것 같다. 수능문제에 제조노동자 임금계산 문제가 나오면 크게 개선될 텐데. 간편한 해결방법 같다. (웃음) 노조 틀 안에서 권리를 요구하는데 익숙하고 실제로 쟁취한 경험을 있는 조합원들은 수세에 몰리니 사회 대중 앞에서 요구 못하고 노조 내부에서 고임금 전략을 쓴다. 누구나 고임금 요구할 수밖에 없다. 위험이 높은 사회니까.

▲ “사실 금속 현장에 가면 힘을 많이 받는다. 희망도 본다. 금속노조 조합원들께 이런 얘기를 해드리고 싶다. 민주노조가 깨진 곳을 가보면 정말 비참하다. 아무리 부족해보이더라도 금속노조, 민주노조는 노동자의 소중한 울타리다. 부디 힘내시고 민주노조를 지켜 달라.” 사진=신동준

노조는 현대차 조합원 임금이 높은 것이 아니라 하청사, 중소기업 노동자 임금이 낮다고 본다. 원인은 현대차그룹과 하청․부품사 사이 착취구조에 있다. 노조는 올해 하청사 착취 구조와 하청․부품사 저임금 문제 해결을 위해 원청사 초과이익분을 하청사와 공유하자는 요구안을 냈다.

그걸 강제할 수 있을까. 나쁜 아이디어는 아니다. 괜찮은 요구다. 경제민주화라는 사회 트렌드이기도 하다. 어떻게 압박할 것인가. 기업이 주머니에 있는 돈을 순순히 내놓을 것인가. 계속 사회의제화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첨언, 그래도 금속노조

짧은 시간에 많은 얘기가 오갔다. 논쟁이 아니라서 여과 없이 전달키로 했다. 제정남 기자는 노조 중앙과 대공장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애정과 기대로 인한 비판임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얽히고 설켜 답답하다. 금속노조가 산별운동이나 사회를 바꾸는 투쟁을 하기 싫어 안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노동자 힘이 약해지고 몰리는 사회구조에 문제가 있다. 노조를 불온시하는 사회에서 얼마나 고심할까하는 갑갑함을 느낀다. 그래도 기대가 있으니 지켜본다. 운동에 복무하는 분들에 대해 추호도 의심이 없다. 너무 실무에 치이고 챙길 것이 많아 보인다.

우울한 얘기를 많이 했는데 사실 금속 현장에 가면 힘을 많이 받는다. 희망도 본다. 금속노조 조합원들께 이런 얘기를 해드리고 싶다. 민주노조가 깨진 곳을 가보면 정말 비참하다. 아무리 부족해보이더라도 금속노조, 민주노조는 노동자의 소중한 울타리다. 부디 힘내시고 민주노조를 지켜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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