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1일 밤 독립 인터넷 언론인 <뉴스타파>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의혹을 보도하며 관련 동영상을 공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회장은 2011년 12월부터 2013년 6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삼성동 자택과 논현동 빌라에서 성매매를 한 의혹이 있다.

동영상에 이 회장과 여성들이 성관계를 암시하는 대화를 나누는 장면과 이 회장이 여성들에게 돈 봉투를 건네는 장면 등이 나온다. <뉴스타파>는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의혹과 함께 여기에 회사 쪽, 즉 삼성그룹이 관련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했다. 동영상 촬영 장소 중 하나인 논현동 빌라가 김인 전 삼성SDS 사장 이름으로 전세계약 돼 있었기 때문이다.

<뉴스타파> 보도 이후 대중은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에 이어 또 하나의 영화 <내부자들> ‘실사판’ 등장이라며 분노했고, 분노한 여론의 시선은 언론을 향했다. 언론, 특히 주류 언론들이 과연 ‘삼성’이란 이름 앞에서 ‘주연’만 다른 유사한 상황에서 공익을 앞세우며 했던 보도들과 같은 보도를 과연 할 수 있을까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기업 권력과 결탁한 언론이 비밀 별장에서 섹스 파티를 벌이면서 동업자가 돼 마음대로 여론을 주무르는 영화 속 상황을 현실에서 결국 대놓고 완성하고야 말 것인지에 대한 주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뉴스타파> 보도 다음날이었던 7월22일 주요 일간신문 중 관련 기사를 지면에 실은 곳은 <한겨레>가 유일했다. 물론, <뉴스타파> 보도가 늦은 밤 있었던 만큼, 조판 마감을 감안할 때 지면 게재는 어려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뉴스타파> 보도(밤 10시경) 한 시간 여가 지난 후부터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 2위가 ‘뉴스타파’와 ‘이건희’로 뒤덮이고, 인터넷 매체들이 앞 다퉈 관련 내용을 보도하기 시작했음에도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제외한 주요 일간신문의 온라인 뉴스 어느 곳에서도 해당 내용을 기사화하지 않았다.

주요 일간신문의 온라인 뉴스에서 관련 소식을 전하기 시작한 건 삼성그룹의 입장이 나온 후부터였다. 삼성그룹은 22일 오전 <뉴스타파> 보도와 관련해 “이건희 회장과 관련해 물의가 빚어지고 있는 데 대해 당혹스럽다”며 “이 문제는 개인(이건희 회장) 사생활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회사로선 드릴 말씀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여기서 짚어야 하는 건 <뉴스타파> 보도에서 제기한 의혹이 두 가지라는 점이다. 우선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의혹으로, 이 부분은 <뉴스타파> 보도 직후 한 시민이 이 회장의 성매매특별법 위반 여부를 수사해 처벌해 달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만큼 검찰 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14년 5월 쓰러진 이 회장이 현재 사경을 헤매는 상황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처벌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런데 <뉴스타파>는 이 회장의 성매매 의혹과 함께 이 과정에 삼성그룹 차원의 지원이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성매매 정황을 담은 동영상 촬영 장소 중 하나인 논현동 빌라가 김인 전 삼성SDS 사장 이름으로 전세계약 돼 있었는데, 김 전 사장은 <뉴스타파> 취재 초기 전세계약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김 전 사장은 이후 자신이 개인적으로 전세계약을 했다고 말을 바꿨다. 김 전 사장의 최초 답변대로라면 삼성그룹이 김 고문의 명의를 이용해 이 회장의 거처를 마련했고, 전세 보증금 또한 삼성그룹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만약 삼성그룹이 이 빌라의 전세자금을 댔거나 삼성그룹 회계장부에선 찾아볼 수 없는 돈을 사용했다면, 여전히 삼성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정황에 더해 비자금 의혹까지 나올 수 있다. 삼성으로 대표하는 한국기업의 지배구조 문제가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삼성그룹이 이번 논란을 “개인의 사생활”, 즉 ‘회장 개인의 일탈’로 정리하며 “회사로선 할 말이 없다”고 선긋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다.

문제는 삼성의 선 긋기를 다수의 언론이 ‘가이드라인’처럼 받들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당장 지난 22일 지상파 방송 3사 SBS, KBS, MBC의 메인뉴스에서 모두 관련 소식을 보도했지만,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 동영상이 공개됐다는 사실과 함께 이 영상이 촬영된 목적, 해당 영상만으로 성매매가 있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경찰 측 입장을 전하는 데 그쳤다. 이번 사안에 삼성이 개입 혹은 지원한 정황에 대한 부분은 언급하지 않았다.

지상파 방송을 비롯한 주류 언론의 이런 모습은 ‘인용 보도’에 대한 신중함으로 해석할 수 있다. 때문에 두 눈 부릅뜨고 앞으로 보도를 지켜봐야 한다. 정말로 신중하게 진실을 추적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지, 아니면 신중함이라는 가치 있는 단어를 앞세워 ‘뭉개기’로 대중의 ‘망각’을 유도하려는지 말이다. 언론은 또 한 번 이렇게 시험대 위에 올랐다.

 

김세옥 <PD저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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