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이후 미국에서 노조회피산업(Union Avoidance Industry)이 급격히 성장했다는 논문을 읽는 내내 대한민국의 현실이 겹쳤다. 심종두와 창조컨설팅, 대형 로펌, 그들과 계약을 맺은 기업들, 노골적이면서도 교묘한 민주노조 파괴 공격에 시달리면서 고통스러운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이 떠올랐다.

대한민국에서 노조 탄압과 파괴의 역사는 심종두의 창조컨설팅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기업들은 몽둥이를 든 구사대 대신 노무컨설팅과 법의 뒤에 숨어 교묘하게 노조파괴를 하고 있다. 민주노조 조합원에 대한 각종 차별, 징계, 고소고발, 손배가압류, 회유, 복수노조제도의 활용 등. 근육질의 구사대가 아니라 지식으로 무장한 전문가의 자문이 노조탄압과 파괴에 더 효율적인 시대다. 미국에서 노조회피산업이 성장한 역사는 대한민국의 노조파괴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너무나 유사하고, 또 끔찍하다. 그래서 그들의 역사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 노조회피산업은 노조 없는 사업장을 만들기 위한 전략을 기획하고, 실행하고, 법률적 조언 등을 해주는 일을 한다. 노조회피산업의 주요한 행위자들은 컨설턴트, 로펌, 산업심리학자, 파업관리자다.

나단 셰퍼만(Nathan Shefferman)은 미국의 근대 ‘노조회피산업’의 아버지로 불린다. 셰퍼만의 NRA는 1950년대에 뇌물, 협박, 공갈 등과 같은 불법적인 방법을 수없이 저질렀으며, 그가 발전시킨 몇몇 전략은 이후 노조회피 캠페인의 주요한 내용이 됐다. 결국 셰퍼만의 회사는 의회 청문회 등을 거치면서 퇴출됐지만, 다른 노조회피 전문가들이 교육받고 성장해나갈 수 있는 토대가 됐다.

1960년대 새로운 노조회피 전문가들은 컨설팅 사업을 다양한 업종으로 확장했다. 1970~80년대는 미국에서 노조회피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기업들은 거리낌 없이 노조회피전문 컨설턴트를 고용하거나 계약을 맺고 노조조직화를 저지하기 위해 싸웠다. 1980년 레이건이 대통령이 되면서 노조회피 컨설턴트를 규제하기 위한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 오늘도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노동자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한다. 우리의 미래는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9월20일 ‘간접고용 비정규직, 위험의 외주화, 정리해고, 구조조정, 노조탄압 투쟁사업장 문제해결 위한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참여한 유성기업지회, 갑을오토텍지회 등 노조 조합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 <아이레이버> 자료사진

1990년대 들어 노조회피산업은 더욱 성장했고, 컨설턴트들은 업종별로 전문화했다. 노동자들의 인종이나 성별에 따라 특화된 역할을 하는 컨설턴트들도 생겨났다. 2000년대 들어 컨설턴트들은 더욱 대담하게 사용자들에게 노조조직화에 대응하여 싸우라고 부추겼고, 고객의 사업장에 노조가 조직되면 환불해주기도 했다.

1970년대 이전 노조회피전략 업무는 주로 컨설팅 업체들이 주도했으나, 최근 로펌이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로펌의 법률가들은 컨설턴트들과 달리 노동자들과 직접 대면하지 않고 컨설턴트들과 긴밀한 관계 아래 노조회피를 위한 법률 자문과 소송 등을 진행한다. ‘세이파쓰 쇼우(SEYFATH SHAW)’라는 로펌은 400여명의 법률가가 기업의 노조회피를 위한 법률 자문과 소송을 수행 하고 있다. 노동관련 분야에만 126명의 법률가들이 일하고 있는 로펌인 ‘잭슨 루이스(Jackson Lewis)’는 기업 관리자와 노무관리 실무자들을 위해 ‘노조회피 전쟁게임’이라는 명칭의 노조회피 세미나를 연다. 이들의 홍보 전단지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이미지가 들어가 있다. 로펌에서 근무하는 법률가 상당수는 미연방노동관계위원회(NLRB)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산업심리학자들은 행태학, 사회과학 기술들을 도입하면서 노조회피산업이 성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사용자들이 잠재적인 노조 지지자들을 차단하고, 노조조직화가 우려되는 지점들을 찾아내고, 무노조환경이 유지될 수 있는 일터를 구축하도록 도와준다.

파업관리업체들도 노조회피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에서는 미연방대법원의 1937년 판결 이후 파업참가자들을 대체하는 인력을 투입할 수 있게 됐는데, 1970년대 이후 기술혁신, 대체근로를 하려는 노동자들의 증가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력의 대체투입이 증가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파업관리업체들은 컨설팅 업체, 로펌과 밀접히 연계하면서 파업 등 분쟁기간에 대체인력을 제공한다.

역설적으로 노조회피산업의 성장과 성공은 자신들의 시장을 잠식했다. 노조조직률이 떨어질 수록 컨설턴트와 로펌의 먹이감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은 2005년 AFL-CIO(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조합회의)가 분열했을 때를 기회로 삼았다. 이들은 노동조합 내부의 분열이 결코 사용자들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경고하면서 자신들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했다. 여느 자본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업종으로 확장, 미국 이외 세계시장의 개척을 위해 나섰다.

미국에서 노조회피산업의 성장은 노동조합에 적대적인 정치, 경제, 사회문화 환경으로 가능했다. 일터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는 침해당했고 노동조합은 파괴됐으며 사용자들의 힘은 세졌다. 미국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했다. 그나마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2016년 3월 노조회피산업의 부정적인 역할을 제어하고자 ‘노무관리보고공개법’을 개정해 기업이 컨설팅 업체와 맺은 계약 내용을 모두 공개하도록 했다. 노조회피산업의 성장을 적극 방조하던 정부가 문제인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럽다.

한국의 노무컨설팅업체, 로펌, 기업들에게 미국의 노조회피 산업의 성장은 중요한 모델이다. 노동조합에 적대적인 말들이 오늘도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심종두는 미국의 나단 셰퍼만처럼 대한민국 노조파괴 컨설팅의 아버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고, 창조컨설팅은 새로운 형태의 노조파괴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을 제공한 회사로 회자될 것이다. 미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로펌은 심종두와 창조컨설팅이 개척한 시장에서 더욱 중요한 지위와 역할을 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현실이 너무 잿빛이다. 고개를 돌려, 오늘도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노동자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한다. 우리의 미래는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탁선호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