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통고 하청노동자 살리기 지역대책위’에서 활동하는 두 분과 함께 지난 6월17일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주관한 ‘미조직 활동가 대회’에 다녀왔다. 장소는 충북 영동에 있는 노근리 평화공원이었다. 시간 여유가 있어 근처에 있는 쌍굴다리 부터 먼저 둘러봤다.

그곳은 한국전쟁 때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6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콘크리트벽에 남아있는 총탄자국은 선명하기만 했다. 쌍굴다리 주변은 물론이고 안쪽 벽면까지 수없이 많은 총탄흔적이 남아있었다. 그 흔적만 보더라도 당시의 참혹한 상황이 어렵지 않게 연상됐다.

시골마을에 살던 무고한 이백여명의 주민이 중무장한 미군에 포위당해 아무 이유 없이 학살당한 현장에서 미조직 활동가대회가 열렸다. 그런 현장에서 이 시대 가장 고통 받는 무권리, 무방비 상태에 있는 노동자와 함께하는 활동가들이 모임을 연다는 게 무척 의미 있게 다가왔다.

건설노조 조직화 과정에 대한 강의로 첫 일정이 시작돼 전국 다섯 개 지역 조직화 사례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건설노조의 경우 우리 조선소의 상황과 비슷한 조건이 많아 관심 있게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사례들은 집중력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다.

▲ 2016 미조직활동가 대회에 참가한 참가자들이 대회를 마무리하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런데 둘째 날 있었던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의 강의는 내용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강의는 미조직노동자 조직화를 주제로 진행됐다. 경륜과 깊이를 감출 수 없는 외모에 매끄럽고 강단 있는 목소리와 초등학교 선생님 같은 강사의 상냥하고 친절한 어투로 강의는 물 흐르듯 두 시간을 이어나갔다.

‘노동자의 현실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는데 왜 조직화는 답보상태에 있는가?’ ‘노동조합에 대한 노동자의 인식이 왜 갈수록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그 원인과 해법을 여섯가지 주제로 설명해나갔다. 여섯가지 주제 모두 중요하고 서로 연관돼 있지만 특히 가슴에 여지없이 꽂히는 내용이 있었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도 가입하는 것도 너무 힘들다는 사회적 여건은 치워두고라도, 노조에 가입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자격’이 안 돼 가입을 못한다는 내부의 장벽에 대한 문제를 얘기할 때다. 엄연히 존재하는 내부의 장벽 문제를 얘기할 때는 엄중함을 넘어 비장하게 느껴졌다.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한사람으로 그동안 억울하고 분통터지고 답답하고 절망감까지 느꼈던 내 심정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방식도 노조에 참여하는 방식도, 그리고 노조의 활동방식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입할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기본권이다. 문제는 결국 노동자 자신이 어찌하는 가에 달려있다.

주변에서 아무리 관심을 갖고 도와주려 해도 당사자인 비정규직 하청노동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말짱 헛일이다. 하청노동자 모두가 투사가 되고 희생을 각오해야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함께 한 발짝만 더 다가가 서주면 된다. 비록 우리가 지금 일방적으로 빼앗기고 무시당하고 있지만, 한번 뭉치기 시작하면 못할 일이 없다. 그 어느 놈도 겁날 것 없다는 자신감과 믿음을 갖고 일어서면 어떤 어려운 상황도 헤쳐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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