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칼자루를 쥐고 ‘조선업 구조조정’을 속전속결로 진행하고 있다. 정부가 업종별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한 지 한 달 만에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는 인력과 생산시설 감축을 중심으로 자구책을 내놓았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 리서치의 5월 발표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14척,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82척,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92척, 현대삼호중공업 영암조선소 81척 등 한국 조선소들이 수주 잔량 부문에서 세계 1위부터 4위까지 차지했다.

왜 조선산업이 구조조정 타겟이 됐나?

조선은 세계 경기 영향을 많이 받는 산업이다. 2000년대 들어 중국 경제의 팽창과 미국 경제 회복 등이 맞물려 세계 무역량이 늘며 선박수요가 급증했다. 조선산업은 역사상 최고의 호황기를 맞았다. 그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무역이 크게 감소하며 경기 침체로 상선 발주가 급감했다. 중소형 조선업체들은 직격탄을 맞아 최근 7년 사이에 중형 조선사 50%가 폐업했다.

▲ 조선업종노조연대를 구성한 노조 조합원들이 정부에 조선산업 살리기를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벌이고 있다. 아이레이버

국내 빅3 조선사들은 해양플랜트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2011년 이후에 배럴당 100달러 이상의 고유가가 지속되며 심해 유전 개발에 뛰어든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해양플랜트 공사를 대거 발주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대우조선,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소위 빅3가 ‘고부가가치’, ‘미래 먹거리’등의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며 경쟁적으로 뛰어든 해양플랜트가 현재 조선업계 위기의 진원지가 됐다.

유가하락에 따른 해양플랜트 발주사의 인도지연 및 취소, 빅3간 과다 경쟁에 따른 저가수주 등이 복합으로 작용해 빅3는 해양플랜트 부문에서만 8조 원이상의 적자를 냈다. 무능하고 부실한 경영진들의 과욕 탓이다.

생산설비 최소화하고 정규직 없애면 조선업이 살아날까?

우리나라 조선업 노동시장이 하청직원, ‘물량팀’(일용직 노동자) 등으로 충분히 유연화됐다. A조선사의 노동자가 5만 명이라고 한다면 이 중 정규직이 1만 명, 사내하청 2만 명, 물량팀이 2만 명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조선산업은 숙련 기술직 노동자들의 존재 여부가 경쟁력인 만큼 정규직을 대거 구조조정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규직을 비정규직화하는 과정에서 조선사들의 경쟁력이 더 퇴보할 수밖에 없다.

조선현장에서는 설비·인력 감축이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서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는 상황이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보고 있다. 조선업 구조조정 발표시기가 총선 직후이고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주체가 정부와 금융권인 것도 의문이다.

노동자들은 지난 2000년대 중후반부터 조선업 위기를 대비해 정부와 기업, 노조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기업은 귀를 막았다. 호황기에 천문학적인 성과급을 챙겨가던 경영진과 국책은행들이 위기에 직면해서는 설비 감축과 노동자 해고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업 구조조정은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시작이다. 정부가 조선업 구조조정을 시작으로 향후 건설, 철강, 석유화학 등 직종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런 예상을 뒷받침하듯 “기업구조조정촉진법과 기업활력제고법 등 구조조정을 위한 법률체계가 정비된 만큼 정부와 채권단은 ‘사즉생’의 각오로 구조조정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공언했다.

조선산업의 위기는 일시적 위기일 뿐이다. 정부의 조선산업에 대한 심층적인 대책과 계획없이 산업재편을 추진하고 노동개혁의 정치적 성과를 얻기 위해 조선노동자들을 극도의 고용불안과 생존권 위기로 내몰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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