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공장 지을 때 기초부터, 벽돌 한 장 손대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배상규 노조 경주지부 파나진지회장이 농성장 뒤 공장을 가리키며 파나진 영천공장의 역사를 설명했다. 파나진 영천공장은 대구에 있다가 1995년 영천으로 이전하며 규모를 키웠다. 나사와 못, 철제 와이어를 생산하던 파나진 영천공장은 수백억 원의 매출을 올리던 때가 있었다. 지금 예전의 영화는 온데간데없고 녹슨 철 구조물과 빛바랜 외벽이 서 있는 낡은 공장만 남았다.

공장 정문 앞에 지회가 설치한 농성천막과 복직을 촉구하는 팻말들이 늘어 서있었다. 3년 넘게 가동을 멈춘 공장안에서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영천공장을 인수한 새 사업주가 공장 정문에 설치한 감시카메라와 경비업체 표지판이 방문자를 맞이했다. 여섯 명의 조합원들은 공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정문 앞 천막과 컨테이너에 의지하며 공장복귀의 염원을 키워가고 있었다.

 

공장 되살리는 게 모두에게 이익

배상규 지회장은 “얼마 전만 해도 새 사업주와 얘기가 잘 돼서 조합원들이 공장에 돌아가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어느 날 갑자기 사업주가 안면을 바꾸고 민주노조를 포기하라고 하더라”고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산에 있는 철강업체인 오성와이어가 파나진 영천지점이라고 불리던 영천공장을 올해 1월 인수했다. 같은 업종을 운영하는 자본이 생산시설을 재가동할거라는 기대에 조합원들도 복직을 예상했고, 오성와이어와 복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새 사업주가 민주노조를 포기하면 복직시키겠다고 요구해 지회와 오성와이어의 대화는 중단됐다.

▲ 배상규 파나진지회장이 공장 앞에 붙어있는 지회 팻말을 가리키며 파나진 영천공장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영천=성민규

배상규 지회장은 “새 사장은 한국노총에 가든 기업노조를 만들든 뭘 해도 좋지만 금속노조만은 안 된다고 했다”며 “우리가 금속노조는 회사운영에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해도 막무가내였다”고 설명했다.

2013년 초 파나진이 일방 공장폐업을 통보한 후 조합원들은 대전과 영천을 오가며 고용보장을 요구했다. 조합원들은 3년 넘게 하루도 빼지 않고 공장 앞을 지키며 조를 나눠 1주일에 2~3일씩 대전 파나진 본사 앞에서 선전전을 벌였다. 이제 안산에 있는 오성와이어 본사 앞에서 복직요구 선전전을 벌이느라 동선이 하나 더 늘었다.

조합원들은 “공장 앞을 지키고 있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아니다. 우리는 안산에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매주 2박3일 안산본사 앞 농성투쟁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상규 지회장은 “지금이라도 회사가 노조를 인정하고 조합원들이 공장에서 일만 할 수만 있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이렇게 좋은 공장을 기껏 인수해서 놀리는 것 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가동하는 쪽이 회사나 지회나 모두 이익인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파나진지회 조합원들은 노조 경주지부의 도움과 연대가 없었다면 3년 넘게 투쟁을 버텨낼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해고기간이 길어지면서 조합원들이 느끼는 고통은 점점 커졌다. 배상규 지회장은 “조합원들이 인근 농장에서 복숭아, 포도 농사를 돕는 등 어떻게든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하지만 아이가 있는 사람들이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라고 털어놨다.

생활비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문제는 복직의 날이 더 뒤로 늦춰진다는 불안감이다. 3년을 끌어온 부당해고 소송이 3주전 대법원에서 지회의 패소로 결론 났다. 파나진은 지회 앞으로 자신들이 부담한 소송비용인 3,500만원을 내라는 최고장을 보내며 압박하고 있다. 지회 조합원들은 소송비용도 비용이지만 3년간 끌어온 부당해고 소송이 일방적으로 회사에게 유리하게 끝난 사실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오성와이어가 인수한 파나진 영천공장은 아직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비어있는 공장에 적막이 감돌고 있다. 영천=성민규

이경준 지회 쟁의부장은 “누가 봐도 회사가 일방으로 공장을 폐쇄하고, 해고상태를 구제할 노력조차 하지 않았는데 부당해고가 아니라니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느냐”고 대법원 판결에 분통을 터트렸다.

 

민주노조 지키는 싸움, 포기는 없다

파나진지회는 일단 회사가 제시한 소송비용이 적합한지 확인하고, 퇴직금을 받기위한 소송 등 각종 법적 대응방안과 투쟁방식을 조합원 논의를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상규 지회장은 “이미 3년을 넘게 싸워왔고, 조합원들이 법률로 이기는 싸움이라고 생각했으면 현장투쟁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대전 파나진 본사와 안산 오성와이어를 압박하는 투쟁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계속 이어 간다”고 못 박았다.

조합원들은 민주노조를 포기할 거라면 애초에 투쟁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파나진지회가 처음 깃발을 올린 이유는 회사의 찍어내기 퇴직을 막기 위해서였다. 회사가 특정 직원을 찍어 표적해고하려는 상황을 보고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배상규 지회장은 “한국노총에 전화해보고, 민주노총에 전화해봤다. 금속노조에 물어보라고 해서 대구지부에 연락해보다가 결국 경주지부 소속으로 가입했다”며 “지회를 만들고 회사의 인사전횡이나 부당대우가 줄었다. “아닌 건 아니고, 맞는 건 맞다”고 노동자들이 제 목소리 내도록 현장을 바꾸는 게 노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파나진지회 조합원들은 어려움에 몰렸지만 굴하지 않고 싸워 승리한 다른 사업장의 투쟁을 보며 희망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파나진지회는 질기게 싸워 파나진이 부당해고를 인정하고 오성와이어가 민주노조와 함께 고용을 승계해 현장에서 웃으며 돌아가 다른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배상규 지회장은 “나에게 손자가 두 명 있다. 만약 조합원들이 힘들어 투쟁을 그만둬야 할 상황이 오면 나는 늙어서라도 손자들과 함께 이 컨테이너를 꼭 지키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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