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장에서 화학물질을 사용할 경우,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라는 것을 비치하고 노동자에게 교육을 하도록 법에 정해져 있다. 물질안전보건자료는 화학물질의 성분과 독성부터 안전한 저장방법이나 화재 등 비상시 대응방법까지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들에게는 건강과 생명을 지켜주는 소중한 정보인 것이다. 만약 물질안전보건자료의 정보를 신뢰할 수 없다면? 그건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현장의 물질안전보건자료들이 유통기한이 지난데다가 성분도 누락된 엉터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게 도대체 웬일일까?

발암물질진단사업이 추진되면서, 약 80 여개의 사업장이 참가 신청을 했다. 그리고 이제 각 사업장의 물질안전보건자료들이 노동환경건강연구소로 제출되고 있다. 연구소에서는 물질안전보건자료에 기재된 화학물질의 성분을 컴퓨터에 입력한 다음, 발암물질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하여 발암물질들을 찾아낸다. 그런데,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금속노조로 긴급 연락이 왔다.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입력하다보니 자료를 다시 받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랬다.

첫째, 물질안전보건자료의 작성일 또는 개정일이 1-2년 이내여야 하는데, 유통기한이 지난 물질안전보건자료들이 많다. 둘째, 성분별로 함량이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고, 함량을 모두 합산해도 100%가 안되어 중요 성분의 누락이 의심되는 자료들이 있다. 셋째, 화학물질의 고유번호(카스번호)가 누락되어 있거나 영업비밀로 되어있어 성분 자체가 확인되지 않는 자료들이 있다.

자세히 살펴보자. 4월 초까지 23개 사업장에서 물질안전보건자료가 제출되었다. 제출된 것 중에서 샘플로 541개의 물질안전보건자료만 먼저 살펴보았는데, 이 중의 대다수가 엉터리였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는 고심 끝에 기준을 완화하여 엉터리를 골라냈다고 한다. 그래도 부적합한 것이 총 396개(73%)나 되었다. 개정일이 5년이나 넘어서 부적합한 것이 354건으로 가장 많았고, 성분표기가 부실하여 성분확인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132개, 함량이 50%가 안 되어 성분누락이 의심되는 것이 88개였다. 개정일도 5년으로 하고, 함량도 100%가 아니라 50%로 낮추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엉터리 물질안전보건자료가 이렇게 많았던 것이다.


4월 초 금속노조 지부 노안담당자 회의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최인자 연구원이 참여해 이 사실을 지부 담당자들에게 설명했고, 지부담당자들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물질안전보건자료가 부실하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유통기한까지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질안전보건자료가 먹는 것도 아닌데 유통기한이 뭐 중요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화학물질을 제조하는데 성분이나 함량이 변했는데도 그 내용이 개정되지 않은 채 사용된다면 누군가에게는 큰 비극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노안담당자 회의에서는 엉터리 자료들을 제대로 된 것으로 바꿔서 다시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물질안전보건자료를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물질안전보건자료의 정확성에 대한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할 때, 대략 40% 정도는 물질안전보건자료의 정보가 부실하다고 판단된다. 화학물질 제조회사와 납품업체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만들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금속노조에서 제대로 된 자료를 요구하더라도 제대로 된 것이 없어서 받아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우선 법에 문제가 있다.

첫째, 노동부에서는 『화학물질의 분류. 표시 및 물질안전보건자료에 관한 기준(노동부고시 제2009-68호)』으로 물질안전보건자료 작성의무 및 방법을 규정하고 있다. 제11조 9항에 작성원칙이 있는데, “사업주가 MSDS(물질안전보건자료)를 작성할 때에는 취급근로자의 건강보호목적에 맞도록 성실하게 작성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부실한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작성해도 처벌받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둘째, 화학물질의 제조사나 유통사에게 물질안전보건자료 작성의 의무를 부여한 후,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사업주들에게는 물질안전보건자료의 비치와 교육의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옳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분명하게 되어 있지 않다. 책임이 분명하지 않고 분산되어 있다는 뜻이다. 최근 유럽에서는 리치(REACH)라는 화학물질 등록 및 관리 제도를 새로 도입하였다. 리치에서는 화학물질의 독성정보를 작성하고 제공할 책임은 화학물질의 제조자에게 있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였다. 우리나라도 시급히 이러한 원칙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물질안전보건자료의 유통기한을 한국산업안전공단에서는 1-2년으로 제안하고는 있지만, 이것이 법에 분명히 명시되지는 않았다. 이것을 분명하게 만들어야 물질안전보건자료의 신뢰도가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법개정 전까지 그냥 참고만 있어야 할까? 아니다. 답은 분명하다. 우리 노동자들이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면 된다. 정보가 확실한 회사의 제품으로 교체해 버리는 것이다. 이번에 부실한 물질안전보건자료에 대해 정확한 자료를 제출하도록 사업주에게 요구하고, 만약 그래도 내용이 부실하다면 다른 제품을 사용하라고 요구하도록 하자. 금속노조 전체가 함께 움직인다면, 절삭유나 세척제 같은 화학물질 업체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신범 /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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