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지회 조합원이 263명입니다.”

김용세 노조 경기지부 대창지회(지회장 나일권, 아래 지회) 사무장은 263이란 숫자를 몇 번이나 강조했다. 4월19일 지회 설립 후 한 달 남짓한 기간 지회에 가입한 조합원 수다. 생산직 270명 중 263명이 가입했으니 생산직 97% 이상이 지회에 가입한 셈이다. 263이란 숫자는 노동자들이 회사에 품은 불만의 크기를 보여주는 숫자이자, 지회가 흔들림 없이 투쟁할 수 있는 자신감의 근거다.

5월24일 시흥시 정왕동 한 노동단체 사무실에서 나일권 지회장, 이명석 수석부지회장, 김용세 사무장을 만났다. 아직 지회 사무실이 없어 단체 사무실을 전전하는 처지지만, 이 노동자들은 현장 반응에 힘입어 반드시 회사가 지회를 인정하게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1년에 20여 건 사고, 10년 일해도 최저 시급

대창은 창립 42주년을 맞은 유서 깊은 회사로 조시영 대표이사는 대창 외에 서원, 에쎈테크 등 여러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한창때 대창그룹 매출액이 1조원이 넘었다고 한다. 지회가 생기기 전 대창의 노동조건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 김용세 사무장, 나일권 지회장, 이명석 수석부지회장(사진 왼쪽부터)이 5월24일 시흥시 정왕동 한 노동단체 사무실에서 지회 운영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시흥=김경훈

노동안전 문제가 심각했다. 1년에 평균 20여 건 사고가 났다. 회사가 비용이 드는 안전설비를 설치하는 대신 벌금을 내는 쪽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작업 중 사고가 나면 회사는 산업재해가 아닌 공상으로 처리했다. 산재로 쉽게 승인나지 않는 근골격계 질환이나 퇴행성 질환인 경우만 산재 처리에 동의했다. 나일권 지회장은 2014년 4월16일 대창 창립기념일에 열린 체육대회 중 발목이 부러졌지만, 회사는 부서별 체육대회니 개인적으로 치료받으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산재 승인을 위해 현장을 돌며 자료를 모으니 회사는 “네가 뭔데 현장을 돌아다니냐”며 방해했다. “출근하면 책임지고 사직서 쓰게 만든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나일권 지회장은 “싸워서 산재 승인을 받긴 했지만, 회사의 태도에 분노해 노동조합 결성을 고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낮은 임금이다. 이명석 수석부지회장은 “올해 법정 최저 시급이 6,030원이 되면서 10년 일한 사람도 최저시급 수준을 받았다. 대창의 시급 인상률이 법정 최저 시급 인상률보다 낮으니 시간이 지나면 모두 법정 최저 시급을 받을 거라는 불안감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낮은 임금은 노동안전 문제와 관계있다. 낮은 임금 때문에 잔업, 특근을 많이 하다 보니 근골격계 질환 등 업무상 재해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았다. 김용세 사무장은 “특근, 잔업을 거의 매일 했다”고 설명했다.

임금피크제에 따른 임금 삭감도 있었다. 회사는 2013년 정년 60세 연장법이 통과되자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56~60세 노동자 임금을 20% 삭감하려 했다.

이런 불만 때문에 나일권 지회장과 이명석 수석부지회장, 오주현 선전부장은 2014년 9월부터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준비했다. 2014년 10월 경기지부를 찾아 상담을 받고, 1년 6개월의 준비 끝에 올해 4월19일 마침내 지회를 설립했다.

 

회사, 유령노조 내세워 단체교섭 거부

지회는 설립 날부터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조합원 네 명에 활동도 없는 유령노조인 대창노동조합을 앞세워 교섭을 거부했다. 대창노동조합과 맺은 단체협약 효력이 아직 남아있다는 핑계를 대며 교섭요구 사실도 공고하지 않았다.

▲ 5월24일 시흥시 정왕동 한 노동단체 사무실에서 대창지회가 확대간부회의를 하고 있다. 시흥=김경훈

지회는 4월22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교섭요구 사실 공고에 대한 시정신청을 했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5월23일 “교섭대표노조가 없고, 임금협약이 체결된 사실이 없어 지회는 언제든지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며 “회사는 지회의 교섭요구 사실을 7일간 게시하라”라는 결정문을 보냈다. 회사는 경기지방노동위원회 판정에 따라 5월23일부터 지회의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했다.

 

“지회 생기고 주도권 현장으로 넘어와”

지회 설립 후 한 달이 조금 지나 현장에 큰 변화가 생겼다. 나일권 지회장은 “지회가 생기니 현장이 예전과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일단 안전사고가 없어졌다. 지회가 생긴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지회 설립 뒤 안전사고가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회사가 강제로 잔업, 특근을 시키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나일권 지회장은 “지회 건설 이전 회사가 특근을 지시하면 거부하기 힘들었다. 지금은 특근을 지시해도 쉬고 싶으면 쉰다. 회사 눈치 보면서 쉴 필요가 없다”고 자랑했다. 이명석 수석부지회장은 “이제 주도권이 현장으로 넘어왔다”며 “내가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다”라고 맞장구쳤다.

짧은 시간에 현장이 이렇게 변한 원동력은 조합원 263명이다. 김용세 사무장은 “많은 조합원이 함께 하니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다. 지회 사업을 잘 만들어야한다는 마음이 더 크다”고 다짐했다.

나일권 지회장은 “조합원 263명과 함께 앞으로 더 큰 변화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노동자가 경영자와 대등한 입장에서 한 곳을 바라봐야 일류회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노동자로서 경영자와 함께 일류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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