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뱅이병’이라는 것이 있다. ‘노말헥산’이라는 물질에 노출되면 걸리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다발성 신경장애’로 하반신이 마비돼 걷지 못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0년 전 LCD 부품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8명의 태국 여성노동자들이 이 병에 걸려 유명세를 탔다. 당시 이 노동자들은 노말헥산이 포함된 세척제를 사용해 부품을 세척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보호장비 없이 일하다 법적기준치 5배에 초과하는 노말헥산에 노출돼 앉은뱅이병에 걸린 것이다.

이 사례는 반도체 제조과정에서 유해물질에 노출돼 백혈병과 뇌종양 등 악성 직업성 암을 얻은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들 (현재까지 반올림 추산, 반도체/LCD공장에서만 223명 피해자가 있는 것으로 집계됨), 메틸 알코올에 노출돼 시력을 잃은 삼성 휴대폰 하청업체서 일하던 4명의 청년 노동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희생자들에 대한 책임을 촉구하며 서울 서초동 삼성본관 앞에서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전자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노말헥산과 같은 유기용제 성분이 포함된 세척제를 많이 사용한다. 전자산업에서 사용하는 부품들은 대개 매우 정밀해 불량을 줄이기 위해 세척과정이 중요하다. 유기용제는 시너, 솔벤트 등 어떤 물질도 녹일 수 있는 액체상태 유기화학물질로 휘발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공기 중에 유해가스 형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주로 숨을 쉬는 동안 호흡기를 통해 몸에 들어오거나 피부를 통해 흡수된다.

다량의 유기용제에 노출되면 두통, 구역질, 현기증, 졸림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대개 술 취했을 때와 증상과 비슷하다. 유기용제에 오랫동안 노출되다보면 기억력이 감퇴하거나 감각이상, 마비 등의 증상이 생길 수도 있다. 다행히 유기용제는 우리 몸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고 며칠에서 몇 주면 빠져나간다.

‘유기용제 사용 문제’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많이 사용하기에 심각한 문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유해물질을 쓰는지 미리 안다면 그 위험을 예방할 수 있다. 유독물질이 호흡기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방독마스크를 쓰고, 피부를 통해 흡수되지 못하도록 보호장갑을 껴야 한다. 공기 중 유해가스를 모으도록 집진기를 설치해 일터의 공기질을 유지할 수 있다. 해결책은 간단하지만 사업주가 비용의 문제를 들어 개선하지 않는 게 문제다.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을까? 일단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내가 사용하는 세척제에 어떤 유기용제가 들어있는지, 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야한다. 사업주는 이를 알 수 있게 그리고 물질에 노출됐을 때 어떤 조치를 해야하는지 적힌 서류 (물질안전보건자료 MSDS)를 현장에 작업자들이 쉽게 볼 수 있게 배치해야한다.

특수건강검진 대상 물질이면 특수건강검진도 시행하고 작업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기본 조치를 취해야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요구하지 않으면 사업주가 나서서 이런 조치를 취하는 경우가 드물다. 노동자가 먼저 알고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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