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이 끝나자마자 마치 핵폭탄을 맞은 것처럼 거제 지역 경기가 얼어붙었다. IMF 때도 없었던 불경기를 경험한다고들 말한다. 전국 언론들이 조선산업을 마치 사양 산업인양 말하고 심지어 “대우조선하나 정리 못하는 것이 정부냐”며 몰아세우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조선산업이 위기고 심각한 상황인가?

 

성장세를 지속하던 조선산업, 왜 어려워 졌나

조선업 불황에 다양한 이유가 있다. 저유가 등 불황 요소가 이어져 전 세계 발주 물량이 크게 감소했다. 경기에 따라 움직임이 많은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치솟다가 최근 40달러 내외로 내려가다 보니 해양플랜트 발주는 전무한 실정이다.

두 번째, 중국과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적극 수주에 나서면서 한국 조선소 가격 경쟁력을 떨어졌다. 특히 세 번째, 국내 대형조선소 사이 과당경쟁으로 저가 수주와 무리한 해양플랜트 수주가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끝으로 경기가 어려운데도 시장경제를 무시하고 경기를 떠받치려 한 기업들의 무리한 차입경영도 원인중 하나다. 이로 인해 기업들이 과도한 부채를 쌓았다.

 

누구의 잘못인가

금속노조와 조선업종노조연대가 꾸준하게 고용위기와 과당경쟁 문제를 제기해 왔다. 정부, 지자체는 노조의 말을 듣지 않고 조선산업을 단기간에 고용을 확대, 유지할 수 있는 산업으로 인식해 오히려 인허가를 남발했다.

▲ 정부는 조선산업 지역을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현재 6개월인 실업급여 수급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두 번째, 재취업을 위한 취업교육을 실시해야한다. 대다수가 고숙련 노동자들인 만큼 소중한 자산이다. 이들이 재취업할 수 있도록 기술교육을 해 축적된 경험과 기술을 보호해야 한다. 사진=신동준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정부 지침에 따라 움직였고 특히 사장 선임을 받기 위해 무분별한 수주 확대에 나섰다. 무리하게 저가 수주를 했고, 오늘날 국내 빅3조선소의 과당 경쟁을 낳았다. 산업은행은 낙하산 인사들을 대우조선해양에 내려 보냈다. 한 해에 수십 명에 이를 때도 있었다. 한마디로 ‘낙하산부대’였다.

이들은 3조3천억원을 회수해 갔지만 경영 실패 책임은 지지 않았다. 보너스를 받지 못할까봐 적자 발생을 숨기기까지 했다. 전임 사장은 적자가 났음에도 21억원의 보너스를 챙기는 등 도덕적 해이를 보였다.

 

고숙련 노동자와 세계 최고 기술력

조선산업은 불경기와 호황기를 주기적으로 넘나든다. 세계 모든 조선산업이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유럽과 일본도 조선산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 않고 있다. 지금은 조선산업이 불황일 뿐이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이 낸 조선사 수주 잔량 자료를 보면 대우조선해양의 수주 잔량은 지난 3월말 기준 118척, 782만 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로 세계 조선소 가운데 압도적으로 많았다.

수주 잔량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잔여물량이 많다는 사실은 당분간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5조원이 넘는 적자를 냈지만 정년퇴직 후 신규 채용억제, 자산 매각, 채권단 지원확대 등을 통해 올해 흑자로 실적 반등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은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이 있다. 노동자들은 오랜 기간 일해야만 얻을 수 있는 숙련도와 경험치를 축적하고 있다. 이 노동자들은 특히 국내 주요 방위산업도 담당하고 있다. 잠수함과 구축함 건조 등 전력기술을 갖추고 있으며 최근 전투함을 영국 등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이런 조선산업 특성상 수십만 명의 생계가 걸려 있다. 겉으로 보면 단순히 몇 만 명에 불과해 보일 수도 있지만 직영인력과 하청업체, 외주업체와 납품업체까지 다단계로 형성돼 있다. 겉으로 보이는 현상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물론 구조 문제도 있다. 무엇보다 과당경쟁이다. 국내 업체끼리 지나치게 경쟁하다보면 원가 이하의 저가로 수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 불안정 노동에 따른 고용안정 문제도 있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대다수가 비정규직이고 노동조합조차 고용을 보장하지 못한다. 업주들은 비정규직에 대한 선호가 높을 수밖에 없다.

특히 ‘물량팀’으로 불리는 다단계 하청이 주를 이루는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원청에서 하청업체로, 재하청으로, 심지어 네 단계나 하청관계가 내려간다. 이 노동자들에게 무조건 나가라고 할 경우 순순히 받아들일 사람들이 있을까. 아무런 보장책 없는 노동자들에게 ‘해고는 곧 살인’이다.

 

정부가 제대로 정책 세워야

정부가 조선산업을 살리기 위해 적극 개입해야 한다. 우선 거제 지역을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현재 6개월인 실업급여 수급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두 번째, 재취업을 위한 취업교육을 실시해야한다. 대다수가 고숙련 노동자들인 만큼 소중한 자산이다. 이들이 재취업할 수 있도록 기술교육을 해 축적된 경험과 기술을 보호해야 한다.

세 번째, 국적선 발주다. 중국과 일본은 국가가 국적선을 발주해 일거리를 확보해주고 있다. 끝으로 RG(선수금환급보증 : 주문한 선박을 계약대로 인도받지 못할 경우 금융기관 등이 대신 선주에게 지급하기로 하는 선수금 지급 보증) 발급 등으로 선주에게 조선업체 신용도를 보여줘야 한다.

이 같은 정책이 현실화해야 그나마 거제와 울산 지역 조선업이 다소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정부가 이조차 무시하고 조선업을 사양산업 취급해 노동자 대량해고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안이한 대책으로 일관한다면 고용대란에 이어 공멸할 수 있다. 조선산업은 화급을 다투는 응급환자다.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응급치료를 한 후 중장기 대책수립을 해야 한다.

김해연 <경남미래발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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