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산업통상자원부), 재벌(전국경제인연합회), 노동시민단체가 지난 4월21일 동시에 재벌을 거론했다. 이날 언론에 등장하는 우리나라 재벌 모습을 이렇다.

“채용은 줄이고, 곳간은 늘리며, 사람은 자르고, 어버이연합은 키우고.”

 

신규채용 줄인다

전국경제인연합회(아래 전경련)는 4월21일 낸 보도자료에서 30대 그룹의 2016년 고용계획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30대 그룹 중 21개 그룹이 신규채용 규모를 지난해 보다 줄였다. 30대 그룹 전체 올해 신규채용은 모두 12만6천394명으로 지난해 13만1천917명보다 5천523명(4.2%)이 감소한 숫자다.

전경련은 지난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산순위에 따라 30대 그룹을 선정했고 이른바 ‘재벌’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전경련이 이 같은 조사결과를 발표한 이유는 재벌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위해서가 아니다. 송원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서비스산업 활성화법안과 노동개혁 법안 등 경제활성화 법안이 조속히 통과돼 일자리 창출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경기가 좋지 않으니 정부와 국회가 나서 재벌 돈벌이에 도움을 달라는 말이다.

노동계가 노동개악이라며 필사적으로 막고 있는 ‘노동개혁 법안’과 병원 등 의료산업에 재벌 진출 허용을 포함하는 ‘서비스산업 활성화 법안’을 통과시키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발상이다. 법안을 통과시켜야 채용을 늘리겠다는 협박일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한국노총은 전경련 발표에 대해 “청년고용 명목으로 임금피크제 도입하고 이제와서 나 몰라라 한다”며 같은 날 입장문을 내어 꼬집었다.

▲ 재벌 사내유보금은 천문학적인 규모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규모가 증가하는 현상에 보다 큰 문제가 있다. 재벌이 사내유보금을 늘려가는 동안 중소기업과 노동자는 소득불평등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고 가계부채는 멈추지 않고 늘고 있다. 재벌은 ‘노동개악 법안’과 ‘서비스산업 활성화법안’ 통과를 압박하면서 청년 신규채용은 줄이는 와중에 자신들 곳간은 매년 늘리고 있다. 4월30일 오후 서울 논현역에 모인 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2016년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임단협 승리 결의대회’를 여는 강남역 삼성본관으로 행진하며 재벌개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신동준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 30대 재벌 대부분은 청년 신규채용에 쓰겠다는 핑계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거나 도입계획을 발표했지만 삭감한 임금만 챙기고 청년 일자리는 줄인 셈이다.

그렇다고 재벌광고로 유지하는 일부 언론이 표현하듯 재벌사 재정난이 ‘허리띠를 졸라맸는데도’ 가중되는 것은 아니다.

 

곳간은 매년 늘렸다

민주노총 등이 참여하는 ‘재벌사내유보금환수운동본부(아래 운동본부)’는 전경련 보도자료 발표 날짜와 같은 날인 4월21일 전경련 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재벌 사내유보금 현황을 발표했다.

10대 재벌 93개 상장계열사를 2015회계연도 개별재무제표를 기준으로 분석한 운동본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10대 그룹 상장사 사내유보금은 2014년 말 503조9천억원에서 1년 새 46조원(9.1%) 가까이 증가해 549조6천326억 원으로 늘어났다.

이중 삼성그룹 16개 상장계열사 사내유보금이 전년보다 9.4% 18조5,835억원 늘어난 215조2천935억 원으로 1위였다. 11개 상장 계열사를 보유한 현대자동차그룹은 10.2% 10조4,548억원 늘린 112조6천48억원으로 2위를 차지했다.

<금속노동자> 기사 ‘재벌개혁, 한국 사회문제 해결의 핵심’에서 지적했듯 재벌 사내유보금은 천문학적인 규모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규모가 증가하는 현상에 보다 큰 문제가 있다. 재벌이 사내유보금을 늘려가는 동안 중소기업과 노동자는 소득불평등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고 가계부채는 멈추지 않고 늘고 있다. 재벌은 ‘노동개악 법안’과 ‘서비스산업 활성화법안’ 통과를 압박하면서 청년 신규채용은 줄이는 와중에 자신들 곳간은 매년 늘리고 있다.

 

사람은 자르고 어버이연합은 키우고

정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4월21일 취임 1백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형환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부실기업은 채권단 중심으로 해결해 나가되,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을 활용해 자발적이고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할 수 있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8월13일부터 시행하는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기활법)’을 활용해 ‘미래에 예상되는’ 경영상의 위험에 대비하는 쉬운 해고를 지원하겠다는 의미다.

이미 조선산업에서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대규모 해고가 벌어지고 있어 ‘학살’로까지 표현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조선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저임금 장시간 불안정노동에 방치하고 나아가 실업자로 내팽개치며 대책 없이 그저 기업의 경영상 어려움을 돕겠다고 발 벗고 나선 꼴이다.

이렇듯 사정없이 노동자를 해고하고 청년 실업 핑계로 노동자 임금은 깎고 신규 채용은 줄이는 재벌들이 눈먼 돈 쓰듯 베푼 조직이 있다.

최근 JTBC 단독 보도로 밝혀지고 있는 어버이연합 뒷돈 대기다. 정부-재벌-극우단체 삼각편대가 그동안 우리 사회를 어떻게 추악하게 비틀고 다녔는지 매일같이 까발려지는 중이다.

전경련 홈페이지 소개란을 보면 전경련 비전으로 정관 1조를 제시하고 있다. “전경련은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올바른 경제정책 구현과 우리 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하고자 합니다.”

전경련은 재벌들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재벌단체다. 이들 재벌이 말하는 ‘건전한 국민경제’, ‘올바른 경제정책’, ‘우리경제 국제화’ 비전이 어디에서 충족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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