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 요구안(아래 공동요구안)은 임금 인상, 복지 관련 사항 대신 재벌의 사회적 책임성 강화와 노동시간 단축 등을 담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의 목적이 현대기아차그룹사 조합원뿐 아니라 조합원 전체, 나아가 모든 노동자의 노동조건 향상에 있기 때문이다.

공동요구안은 ▲자동차·철강·철도(차량)산업 발전 미래전략위원회 구성 ▲재벌의 사회적 책임 강화 ▲통상임금 정상화와 실노동시간 단축 ▲노조활동 보장과 노사관계 발전이다.

 

산업 전망 마련 위한 미래전략위원회 구성

자동차, 철강, 철도산업발전 미래전략위원회 구성은 세계시장 변화와 공급 과잉, 수요 감소 등 각 산업이 처한 난관을 극복하고, 중장기 산업 발전 전망을 마련하기 위한 요구다.

최근 세계 자동차산업이 급변하고 있다. 자동차산업과 정보통신기술산업 간 융합이 가속화하고,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인공지능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GM은 자율주행 기술 개발 전문기업인 ‘크루즈 오토메이션’을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포드, BMW, 토요타 등도 인공지능 기술에 거액을 투자하기로 했다.

세계시장이 빠른 속도로 변하는 가운데 한국 자동차산업은 국내공장 생산비율이 줄면서 자동차산업 공동화 경향을 우려하고 있다. 자동차산업 공동화의 주범은 현대기아차그룹이다. 현대자동차는 2008년 국내생산비중이 60.0%에 달했으나 2009년 51.8%, 2010년 48.1%, 2011년 46.4%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국내공장 생산이 50%대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2016년 48.2%로 하락할 예정이다.

노조는 세계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현대기아차그룹이 해외공장 생산 확대를 중단하고, 노사가 참여하는 미래전략위원회를 설치해 자동차산업 발전을 위한 중장기적 전망을 마련해야 한다는 공동요구안을 제시했다.

철강산업과 철도산업도 각각 공급과잉과 수요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철강산업은 심각한 공급과잉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2015년 기준 국내 철강 생산량은 7,670만톤이다. 내수 소비량은 5,690만톤 수준에 머물러 1,990만톤 쯤 과잉공급 상태다. 철도산업도 수요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로템이 2015년 해외에서 수주한 사업은 단 한 건이었다. 현대로템은 수주 감소에 따라서 2015년 642억원의 영업이익 순손실을 기록했다.

노조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철강산업과 철도산업 발전을 위한 미래전략위원회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재벌의 사회 책임성 강화, 사회연대기금 출연해야

재벌은 경영승계를 위해 온갖 탈법, 불법을 일삼고, 원하청 불공정거래로 소득 불평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주범이다. 노조는 재벌의 사회 책임성 강화를 위해 ▲정몽구 회장, 정의선 부회장 주식배당금 중 최소 20% 사회연대기금 출연 ▲불법, 편법승계 근절과 계열사 구조조정․매각 금지 ▲납품단가 원가연동제-물가연동제, 초과이익공유제 도입을 공동요구안으로 내걸었다.

▲ 4월19일 현대기아차그룹사 1차 공동교섭이 현대자동차그룹의 불참으로 무산되자 노조 교섭위원들이 교섭 참석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동준

주식배당금을 사회연대기금으로 출연하자는 공동요구안은 재벌이 청년 고용문제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받아들이고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로 마련했다. 한국의 15~29세 청년 고용률은 40%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0%포인트 쯤 낮다. 통계청의 ‘2016년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12.5%로 전체 실업률 4.9%의 약 세 배에 달한다. 다른 국가는 물론이고 다른 연령층과 비교해도 청년 실업이 그만큼 심각한 문제라는 뜻이다.

고용의 질도 문제다. 김주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대 청년층의 고용 추이 및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다른 연령층은 모두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9년보다 비정규직 노동자 비중이 줄어든 반면 20대는 2009년 30.6%에서 2014년 30.9%로 증가했다. 정규직 노동자 수도 다른 연령층은 모두 2009년보다 증가했지만, 20대는 2009년 239만 명에서 2015년 230만 명으로 감소했다.

노조는 정몽구 회장, 정의선 부회장의 주식배당금 1천272억5천만원 중 최소 20%, 254억5천만원을 청년 고용창출과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기금으로 사용하고, 사회연대기금 사용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노사공동위원회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불법․편법승계 근절과 계열사 구조조정․매각 금지도 촉구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정의선 부회장 3세 경영승계를 위해 정의선 부회장 지분이 많은 계열사 현대글로비스에 그룹 내부 물량을 몰아주고, 일감 규제를 회피하려고 현대글로비스 지분 502만 2,170주(13.49%)를 매각했다. 정의선 부회장의 ‘실탄창고’인 현대글로비스와 순환출자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 간 합병설도 나오고 있다. 노조는 재벌의 후계 경영세습을 위해 불법과 편법을 일삼고, 노동자 고용불안을 야기하는 계열사 매각과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일은 원천적으로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원하청 동반성장 방안으로 납품단가 원가연동제-물가연동제와 초과이익공유제를 제시하고, 공동요구안에 포함했다.

현재 단가인하(CR)제도 아래에서 대기업은 계약 기간 중 원자재 가격, 인건비, 에너지 가격 상승 등 원가 인상요인이 생기면 이를 납품단가에 반영한다. 이는 원하청 간 신뢰 훼손, 하청업체 수익성 악화, 기술투자 위축, 자동차 품질 악화,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저하의 원인이다.

노조는 이 악순환을 개선하기 위해 원가연동제와 물가연동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원가연동제는 일반관리비, 연구개발비, 이익 마진 등을 가산하여 가격을 결정하는 제도다. 물가연동제는 도소매물가*관련 경비비율(관련경비/매출)만큼 단가에 반영하는 제도다.

▲ 노조는 4월7일 그룹사 공동교섭요청 공문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에게 등기우편으로 발송했다. 현대차그룹은 4월8일 ‘현대차 문서실에서 현대차 회장님 비서실과 통화후 반송요청하여 반송함’이라 편지지에 써서 뜯어보지도 않고 반송했다.

초과이익공유제는 원청과 하청기업이 사전에 목표 이익을 정하고 이를 초과한 이익을 하청업체와 함께 나누는 방안이다. 노조는 원청업체가 달성한 초과 이익 가운데 절반은 원청이 차지하고 나머지 절반을 하청기업과 기금으로 배분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원청기업은 배분 이익 가운데 80%를 하청기업으로 보내고 20%는 손실대비 적립금인 이익공유기금으로 적립한다. 하청기업은 배분받은 이익 가운데 50% 이상을 임금 인상과 후생복지에 사용해야 한다.

노조는 하청업체들이 물가연동제, 원가연동제, 초과이익공유제 도입으로 확보한 재원을 실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시설에 투자하고, 기술 개발, 노동자 생활임금 확보, 노동조건 개선에 사용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실노동시간 단축, 노동과 일상생활 공존

노조는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통상임금 정상화와 실노동시간 단축을 공동요구안에 넣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2015년 신임금체계를 도입하며 ▲통상임금 산정기준 시간을 기본급 소정근로시간 240시간에서 243시간으로 증가 ▲특근수당 하향 조성 ▲각종 수당 단순화 및 통폐합 ▲연월차 수당 할증 변경 등을 추진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의 이런 행태는 복리후생비,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을 부정하는 개악이며, 근속에 따른 임금체계를 직무급 또는 능력급 임금체계 등으로 개악해 조합원 내부 임금 격차를 더 키우려는 목적이다. 노조는 현대기아차그룹의 신임금체계를 반대하고 기존 요구대로 통상임금을 정상화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실시간노동 단축은 장시간노동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요구다. 현재 한국의 장시간노동은 심각한 수준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의 ‘연장 근로시간 제한의 고용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14년 기준 2,28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길다. 주 52시간 초과자도 전체 노동자의 19%인 357만 명에 달한다. 노조는 잔업, 특근 등 초과노동을 줄여 주간 52시간, 연간 실노동시간 1,800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대폭 단축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실노동시간을 줄여 노동과 일상생활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사회적 연대에 기여하려는 공동요구안이다.

노조는 실시간노동 단축 과정에서 기존 노동조건이 하락하지 않도록 기본급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기본급 인상 방법으로 ▲기본급 절대 액수를 올리는 방법(기본급 인상 5만 원→8만 원 등으로 인상) ▲기본급에 대한 월 소정근로시간 계산식을 변경하는 방법(240→226시간 혹은 209시간 등으로 변경) ▲호봉제를 도입하거나 호봉제 액수를 올리는 방법 등을 제시하고 있다.

 

계열사-부품사 지배개입 금지하고 산별교섭 참여해야

현대기아차그룹은 매우 억압적인 방식으로 계열사 노조를 통제하고 있다. 올해 2월 현대제철이 현대제철지회 전․현직 간부 동향을 사찰한 사실이 드러났다. 비판 여론이 일자 현대제철은 지회 간부 메일함에 있던 노무관리 문서를 삭제하는 등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비계열사 부품사 노조파괴에도 개입했다. 현대자동차는 유성기업에 기업노조 확대가입 추진을 지시하며 구체적인 조합원 가입 목표치를 제시하는 등 노조파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유성기업지회뿐 아니라 부품사 전반의 노조파괴에 개입한 정황이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가 2011년 12월 부품사 노사관계 현황과 전망을 주제로 부품사 경영진 간담회 개최를 준비한 문건이 공개됐다. 이 문건이 작성된 시기를 전후로 발레오만도․상신브레이크․만도․보쉬전장․콘티넨탈 등 여러 부품사에서 노조파괴가 벌어졌다.

노조는 현대기아차그룹이 계열사․비계열사 부품사에 대한 지배개입과 노조파괴 행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노조는 현대기아차그룹이 대등한 노사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산별교섭에 참여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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