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자유무역지구에 위치한 한국산연이 올해 2월 말 ‘생산부문 3월31일 전면 폐지’를 공고했다. 생산부문 폐지는 곧 생산부서에서 일하는 노조 경남지부 한국산연지회(지회장 양성모) 조합원 54명 전원을 해고하겠다는 해고통보다. 한국산연은 지회의 반발로 9월30일까지 폐지를 미뤘다.

양성모 지회장은 “한국산연은 생산부문을 없애고 한국 거점 역할만 남긴다고 얘기한다”며 “실상은 정규 전원 해고 후 외주화다.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고 회사의 음모를 설명했다.

양성모 지회장은 “회사가 만성적인 적자, 경영위기를 이유로 정리해고 공고했다. 생산하면 할수록 적자가 커진다고 얘기하지만 검증할 수 없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양성모 지회장은 “1년 적자가 120억원이라고 주장하지만 아무리 따져도 이런 규모의 적자는 불가능하다. 화재 기계폐기, 예측 생산량, 우리 임금 등 따질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집어넣어 적자를 불린 듯하다”고 지적했다. 지회는 회사에 5년 간 세무조사 결과보고서와 거래내역서 등을 요청했지만 대외비란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경영실패 책임을 왜 노동자가 지나

한국산연이 정리해고의 이유로 제시한 적자와 위기는 노동자들의 책임이라고 볼 수 없다. 한국산연은 LCD모니터용 CCFL(냉음극관)을 주로 만든다. CCFL은 LCD모니터 후면에 들어가는 광원으로 LED모니터가 일반화되며 수요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주력제품의 시장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회사는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는데 게을렀다.

▲ 양성모 지회장은 “한국산연에서 회사와 노동자가 충돌했을 때, 해답은 언제나 일본에서 제시했다. 이번 상황도 마찬가지다. 산켄전기 일본 본사에 우리의 요구를 전달할 생각이다”며 “6월 산켄전기 주주총회가 있다. 일본 원정투쟁에 나서서 우리 요구를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창원=성민규

양성모 지회장은 “지회에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생산아이템 찾아야한다고 주장했다. LED조명을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시기가 너무 늦었다. 큰 회사들이 이미 자리를 잡아 점유율을 올리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7월 공장에 불이 났다. 원인불명 화재로 조합원들이 일하던 공장 1층이 타버리고 불길이 계단을 타고 올라가 3층에 있는 지회사무실과 식당까지 태워버렸다. 회사는 인근에 있는 KTT라는 회사의 공장으로 옮겨 생산을 계속하고 있다.

양성모 지회장은 “회사의 안내를 받아 KTT에 가보니 우리 회사의 모든 LED제품을 다 생산할 수 있는게 준비가 돼 있었다”며 “칩과 기판이 있고 우리는 가서 일만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한국산연이 외부에 KTT를 자회사라고까지 소개하는 등 정황상 회사가 외주화를 준비한 것으로 보였다”고 돌아봤다.

지회가 발견한 명찰 무더기도 이런 의심을 더 깊게 했다. 현재 한국산연에 없는 사람들의 직책과 이름이었다. 한국산연 조합원들의 이름은 없었다. 지회는 회사가 외주화를 위해 유일한 반발세력인 지회 조합원 전원해고를 노리고 생산부문 폐지를 발표했다고 추측했다.

 

노동자는 대화 상대도 아닌가

외국자본이 투자한 사업장들은 고용에 대한 중요한 경영상 결정은 자본을 투자한 본국에서 한다. 한국에 있는 노동자들은 이 결정에 개입하거나 의견을 내기 쉽지 않다. 권한이 거의 없는 한국의 경영진을 상대로 정리해고 투쟁과 교섭이 쉽지 않다.

▲ 오해진 한국산연지회 사무장이 화재 이후 텅 비어있는 공장 내부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산연기존 공장을 완제품 창고로 사용하고 생산은 인근 KTT공장에서 하고 있다. 지회 제공

조합원들은 외국기업에게 입도 벙긋하지 못하는 정부를 비판했다. 국가의 세금과 행정지원을 받고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성장한 외국자본이 열매를 독점하고 노동자들을 고용불안의 위기로 몰고 있지만 어느 기관이 제지하려 하지 않는 상황을 지적했다.

양성모 지회장은 “한국산연에서 회사와 노동자가 충돌했을 때, 해답은 언제나 일본에서 제시했다. 이번 상황도 마찬가지다. 산켄전기 일본 본사에 우리의 요구를 전달할 생각이다”며 “6월 산켄전기 주주총회가 있다. 일본 원정투쟁에 나서서 우리 요구를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산켄전기는 30여 개국에 진출해 1만여 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다. 매출이 1조원이 넘는 글로벌기업이다. 양성모 지회장은 “한국산연은 산켄과 자재, 물량, 회계가 통합돼 있다. 지금 한국산연과 산켄코리아가 따로 존재하는 상황이다”며 “산켄코리아가 덴소에 자동차용 LED부품을 수입해 납품한다. 물류나 여러 면을 따져봤을 때 한국에서 생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 지회장은 “회사는 단가가 맞지 않아 생산과 납품이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지회와 함께 논의하고 단가를 낮출 방법은 찾아보지 않는다”며 “회사는 이래서 할 수 없다. 저래서 할 수 없다며 우리 임금이 높다고만 한다. 회사는 우리와 함께할 생각이 없다”고 답답한 심정을 털어놨다.

 

외국자본과 효과적으로 싸울 방법 찾아야

지회는 본사가 해외자본인 만큼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회가 지난 3월 일본 원정투쟁을 구상할 때 일본의 산켄전기 노조와 협의하려고 했지만 추진하기 쉽지 않았다. 상황이 발생하고 나서 연대 모색이 중요하지만 관계망을 미리 구축해 평소에 교류사업을 벌일 필요가 있다.

▲ 한국산연 공장앞에 노조 경남지부지회들이 한국산연의 구조조정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걸어놨다. 창원=성민규

오해진 사무장은 “회사는 아예 지회의 움직임에 대응하지 않고 시간을 허비할 생각인 것 같다. 조합원들의 불안감을 자극해 계속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며 “회사의 전향적인 입장변화를 위해서라도 일본 산켄전기를 설득해 회사를 살리고 노동자들도 살리는 방법을 찾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양성모 지회장은 “지난해 TSK지회가 생기기 전 우리 사업장이 마산무역자유지역의 유일한 노조 있는 사업장이었다”며 “한국산연 명예퇴직자가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내면 서류전형에서 탈락한다. 노조를 통한 권리 찾기를 금기시하는 상황이 안타깝지만 우리가 더 열심히 싸워야하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지회는 앞으로 민, 관, 정계를 넘나들며 한국산연 정리해고 문제를 알리고 9월30일전까지 반드시 회사의 결정을 철회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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