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해요. 나는 잠시 다니러 가는 겁니다. 물 좀 줘요. 마시지 않을 테니까. 입술에 묻히게만 해줘요. 난 동일제강에서 해고되었고, 중학교 3년 중퇴하고 가난하게 살았어요. 신흥정밀은 하루 9시간씩 기본으로 일하고 3,280원을 줬어요. 너무도 살기 힘들어 임금인상하려고 했는데… 지금 빨리 가고 싶어요. 가면 쉬겠죠. 우리 부모님은 우성아파트에서 청소부 일을 하고 있어요. 어머님이 이 일을 천만 노동자에게 꼭 전해주시길…” <박영진 열사가 이소선 어머니에게 남긴 유언>

 

박영진 열사는 어린 시절 중학교를 중퇴할 정도로 어렵게 살았다. 박영진 열사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23세 되던 해, 야학을 다니면서 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시흥에 있는 동도전자에 다니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단결된 힘이 필요하다는 진리를 보았다.

박영진 열사는 1984년 동일제강에 입사해 1985년 3월 노조를 결성하고 사무장에 선출돼 민주노조 건설에 핵심 역할을 했다. 박영진 열사는 해고된 후 신흥정밀에 입사했다. 신흥정밀은 초임 3,080원, 기본 노동시간 9시간에 연차, 월차, 생리수당이 주지 않는 열악한 노동조건의 회사였다. 부당노동 행위와 임금 착취에 대해 조금만 항의해도 구타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해고시키는 무법천지의 회사였다.

▲ 박영진 열사.

박영진 열사는 동일제강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직 사업과 현장 실태 파악에 전력투구했다. 당시 여러 상황들이 동지를 힘들게 했지만 박영진 열사는 노동자들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탁월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헌신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1986년 저임금과 임금체불로 노동자들의 투쟁이 급증한 시기였다. 1월부터 서울 구로지역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시작한 투쟁은 전국 임금인상투쟁으로 확산했다. 신흥정밀 노동자들은 ▲초임 4.200원으로 인상 ▲하루 기본근무시간 8시간 정상화 ▲강제잔업과 철야 특근 철폐 ▲부당해고철회 등을 걸고 투쟁을 시작했다.

신흥정밀 노동자들은 3월17일 점심시간 투쟁을 벌일 계획이었지만 이를 눈치 챈 사측이 점심시간을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노동자들은 식당에서 성명서를 낭독하고 요구사항을 외쳤으나 즉각 경찰이 투입되어 옥상까지 밀렸다. 박영진 열사는 온몸에 석유를 붓고 성명서에 불을 붙인 뒤 경찰은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경찰은 이를 무시하고 노동자들을 끌어내리는 데 급급했다.

한참 뒤인 15시경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진 박영진 열사는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온 몸에 화상을 입어 위중한 상태였다. 박영진 열사는 “전태일 선배가 못다 한 일을 내가 하겠다. 1천만 노동자의 권리를 찾겠다.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 등 유언을 남기고 3월18일 새벽 사망했다.

박영진 열사는 죽었지만, 박영진 열사의 몸을 감싼 불꽃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꺼지지 않았다. 박영진 열사의 불은 노동해방을 꿈꾸는 이들의 가슴에 아직도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역사, 그 꺼지지 않는 불

 

활화산처럼, 박영진

당신이라는 불은 왜 꺼지지 않는 것일까

왜 재가 되지 않고

30년 동안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일까

 

무덤으로 덮어두어도

눈물을 더하고

세월로 식혀보아도

깜빡 깜빡 저 깊은

망각의 바다에 빠뜨려보아도

왜 당신이 켜둔 불은

꺼지지 않는 것일까

 

왜 밤이 깊어질수록 더 밝아지는 것일까

왜 모순이 깊어질수록 더 뜨거워지는 것일까

왜 설움이 더해갈수록 거대해지는 것일까

저 제국주의 분단의 철책을

모두 녹일 때까지는 꺼지지 않을 참인가

저 자본의 사금고를

모두 녹일 때까지는 사그러지지 않을 참인가

 

어째서 당신은 30년 내내

지금 여기인지

어째서 당신은 30년 내내

비타협의 외침이며 투쟁이며 항쟁인지

어째서 당신은 30년 내내

꺼지지 않는 역사의 화로인지

 

여기 우리의 비겁을 불사르고

여기 우리의 나약함을 불사르고

왜 우리는 당신 앞에만 서면

다시 불로 태어나는지

다시 불길로 타오르는지

거부하려 해도 왜 끝내 거부할 수 없는지

왜 모든 걸 들키고 마는지

 

당신이라는 불

해방이라는 불

진실이라는 투명이라는

사랑이라는 변혁이라는

역사의 꺼지지 않는 불

 

아직도 뜨겁다

30년이 지났는데도

당신의 열망이

당신의 분노가

당신의 외침이 뜨겁다

송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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