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만 차별받는 건 너무 억울하잖아요”
10년을 일한 회사에서 여성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받았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남녀고용평등법에 의한 동일가치동일노동 소송’을 진행 중인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TDK사업장 서봉석 조합원을 만났다. 서 조합원은 (주)TDK한국이라는 회사에서 10년 3개월을 일하다 올 1월 그만뒀다.

전자제품을 만드는 TDK에는 정규직, 계약직 사원, 아르바이트생이 함께 생산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서 조합원은 10년 전 아르바이트로 회사에 입사해 계약직 사원으로 전환되고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왔다. 처음 서 조합원이 입사했을 당시에는 회사에 비정규직이 많았다. 하지만 회사는 2002년 정리해고를 시작으로 3차례에 걸쳐 인원감축을 했고 그때마다 늘 해고 1순위는 비정규직이었다.

“정리해고를 하고 희망퇴직을 할 때마다 1대1 면담을 해요. 불러놓고 퇴직서를 쓰라고 얘기하는 거죠” 만약 회사의 퇴직 요구를 거부하면 7차에 걸쳐 면담을 계속해야 한다. 일도 고된데 매일같이 불러서 퇴직을 강요당하는 스트레스까지 버텨내기란 쉽지 않다. 2002년, 2005년, 그리고 올 해 1월까지 정리해고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를 그만뒀다.

“나한테 와서 개인면담을 하자고 하더라구요. 면담을 안하겠다고 거부했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사표를 쓰라고 종이를 내밀었어요” 힘든 일을 10년이나 하다보니 몸도 많이 좋지 않아 그만둘까 했지만 회사에서 내민 사표에는 ‘회사를 그만둔 후에는 회사와의 모든 관계는 종결된다’는 각서가 포함돼 있었다. “2007년부터 남녀고용평등법 소송을 하고 있는데 회사와 관계가 모두 없어지면 안되잖아요” 서 조합원은 각서를 수용할 수 없어 사표쓰기를 거부하자 회사는 소송 결과가 나오면 임금 소급분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직접 적게 하고 사표를 받아갔다.

차별의 이유는 '회사마음'

이곳에는 서 조합원을 포함해 2명의 금속노조 조합원이 있다. 2명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금속노조에 가입한 건 이해할 수 없는 임금 차별 때문이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기본급 30만원이 적다. 상여금도 정규직은 700% 비정규직은 300%로 임금 차별을 겪고 있다. 2005년 회사에서는 정규직 임금을 5.8% 인상하고 성과급도 100만원을 지급했지만 계약직 사원들에게는 단 하나도 적용되지 않았다. 서 조합원은 왜 계약직은 적용이 안되는지 회사에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회사 마음’ 이었다.

분명히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계약직이라고 차별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에 서 조합원은 회사 내 정규직 노조(한국TDK노조는 현재 한국노총 소속이다)에 연락을 했다. 노조에 가입도 하고 계약직 문제도 같이 해결하자고. 하지만 결국 노조는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계약직 노동자의 노조 가입을 거부했다. 회사에 쫓아가 따져도 듣지 않고 노조에 내민 손길도 거부당한 서 조합원은 ‘외부에 나가서라도 반드시 싸워서 이길거다’라는 생각으로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얼마 전 회사에서 비정규직을 정리해고 할 때 내가 그 사람들한테 같이 노조에 가입하자고 했어요. 훨씬 큰 힘이 된다고” 안타깝게도 해고당한 노동자들은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서 조합원은 금속노조에 가입한 것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얘기한다. “정신적으로도 나와 같이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큰 힘이 되요. 지금도 다들 같이 싸워주고 있구요”

비정규직의 다른 이름 무기계약직

2006년 노조에 가입을 하고 회사와 교섭을 시작했다. 교섭 과정에서 상여금 인상과 정규직화에 대한 논의까지 되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회사는 지금까지의 모든 얘기를 뒤집었다. 서 조합원 등은 비정규직으로 2년 이상 일했기 때문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고 정규직화나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는 것 등을 얘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 2006년 12월 비정규법이 통과된 이후였다.

“우리가 무기계약직이라는건 그때 회사가 얘기해서 처음 들었어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고 통보한 적도 없었고, 막상 이전 계약직 사원일 때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회사는 무기계약직이니 비정규직과 상관없다고 얘기하지만 실제 서 조합원의 환경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계약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임금을 받았고 복지 환경에서 차별을 겪어야 했다. 서 조합원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서 좋다고 떠드는 언론도 많지만 실상은 고용기간에 대한 문제가 없을 뿐 비정규직과 다를게 없어요”라고 얘기한다.

회사의 어처구니없는 태도에 결국 2명 조합원은 2007년 ‘남녀고용평등법에 의한 동일가치동일노동 요구’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고등법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조합원들의 주장은 생산 공정에서 남성 정규직 사원들과 거의 동일한 업무를 했는데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임금 등에서 차별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 서 조합원은 근무 파트에서 남성 정규직들이 일하는 부분도 통상적으로 같이 해왔고 80% 이상의 업무를 동일하게 해왔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남성 노동자들은 3교대로 야근을 한다는 것 뿐이다. “우리도 야근 하라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회사 규칙에 야근은 정규직만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어서 아예 할 수 없었어요”

실제로 서 조합원은 소송을 하면서 업무 환경을 증명하기 위해 같이 일했던 남성 노동자들에게 서명을 받았다. 다들 같은 일을 해왔던 것이 맞다며 용지에 서명을 해줬다. 하지만 서 조합원의 요구에 대한 회사의 탄압은 악랄했다. 서 조합원은 회사가 서명을 한 노동자들을 불러서 면담을 하고 다른 부서로 전출을 시키기까지 했다고 전한다. 뿐만 아니라 서 조합원이 아무 내용도 없는 백지에 서명을 받아갔다는 내용으로 다시 서명을 받아 법원에 제출했다는 이야도 한다.


지금은 회사에 가도 같은 일을 했다는 것을 증명할 길이 없다. 언제부턴가 회사 간부가 바뀐 뒤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업무를 분리시키기 시작했다. ‘이 일은 정규직만 하고, 비정규직은 이 일만 해라’라고 업무를 규정짓고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참 치사하게 워낙 일이 힘들고 온도가 높아서 6월~9월까지 직원들한테 주던 음료수를 갑자기 정규직 직원들만 주더라구요” 회사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같은 업무를 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들 같은 일 해온 것 맞다

서 조합원이 정규직화, 임금차별 해소를 요구하는 싸움을 시작한 후부터 회사의 탄압은 끊임없이 진행됐다. 서 조합원이 일하는 부서는 회사에서도 3D 부서로 이름난 곳이다. 먼지도 많고 전기로가 있어 50℃가 넘는 온도를 참아가며 하루 종일 서서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회사는 오전, 오후 30분씩 있던 휴식 시간을 10분, 20분으로 축소했다. 심지어 화장실을 가서 자리를 비운 것을 빌미삼아 휴식 시간 외에는 화장실도 가지 말라는 말도 안되는 지시를 하기도 했다. 또 한번은 서 조합원이 TV 프로그램에서 비정규직 관련한 인터뷰를 했다는 이유로 2달 정직이라는 징계를 했다.

서 조합원은 10년 전 처음 입사를 했을 때를 생각하며 몸은 너무 힘들지만 마치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매일 몸에 파스를 붙이고 자야 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회사에 출근하는 길은 늘 행복했다. 서 조합원은 정규직 직원들도 받기 힘들다는 모범상을 받을 만큼 열심히 일했다. “회사 사훈이 꿈, 용기, 신뢰인데 우리들에게도 희망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얼마 전 서 조합원은 회사에서 지금껏 경영진에게 골프 회원권을 지급하고 일정 시기마다 차량을 교체해줬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경영진에게 제공했던 혜택이라면 계약직 사원들을 정규직화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는 생각에 또 한번 회사의 행태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일하고,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차별받지 않고 정당한 권리를 찾고자 하는 서 조합원과 계약직 노동자들의 희망을 경영진은 알고나 있을까.

“이번 소송에서 이기고 판례가 나면 지금은 차별받으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 중에 많은 사람이 투쟁하고 권리를 찾을 수 있을거예요” 서 조합원은 이번 소송에 큰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이번 소송은 자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TDK에서 함께 일했던 모든 비정규노동자들, 그리고 사회에 만연한 비정규 여성노동자들의 싸움이라고 얘기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해야죠” 건강이 좋지 않아 회사를 그만뒀지만 서조합원은 당찬 표정으로 여전히 싸움이 끝나지 않았음을, 승리하기 위해 끝까지 함께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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