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적이든, 비언어적이든 간에 자녀가 새롭거나 특이한 가치관을 내세울 때 수용할 수 없는 자녀의 새로운 가치관을 바꾸도록 할 것인가 수용할 것인가는 부모의 문제가 됩니다.

만약 부모가 자녀의 가치관을 바꾸기 위해 강제력을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부모가 자기 가치관에 대한 감정이 강렬한 만큼 강제력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이 크더라도 아이도 역시 자기 가치관에 대한 감정이 강렬하므로 강제력은 거의 효과가 없습니다. 더구나 부모가 강요하거나 처벌을 이용하여 강제력을 사용한다면 아이는 반감을 갖게 되고 갈등은 심화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가치관 대립’ 상황에서는 부모를 위해 아이에게 변화하라고 강요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아이가 변화하려는 동기는 아이의 내면에서 일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부모가 강제력을 사용한 결과, 아이의 가치관이 변하지 않는다면 부모로서 무시당했다는 감정의 손상으로 관계가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강제력은 자기 패배(좌절)를 가져오기 쉬우며 아이의 가치관도 변화시킬 수 없으면서 관계만 손상시킬 위험이 큽니다. 강제력을 사용하는 것은 담배, 술 등의 약물을 상습 복용하는 아이가 과다 복용의 위험이 있을 경우 치료 기관에 보호를 요청하는 아주 불가피한 경우에만 타당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의 변화를 유도하는 데는 4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앞의 두 가지는 아이를 위한 것이고, 나머지 두 가지는 부모를 위한 것입니다.

첫째는 모델 학습(Modeling)입니다. 만약 부모의 가치관이 아이의 가치관보다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고 아이가 부모를 훌륭한 모델로 여기도록 친밀한 관계라면 ‘가치관 대립’에서 결국은 부모의 가치관을 모방하게 되어 아이는 스스로 변화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이가 장애인에 대해 왜곡된 생각을 갖고 있거나 친구의 어떤 점 때문에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한다면 ‘남을 무시하면 안 된다, 그 아이에게 좋은 점을 발견해 봐라. 차이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 등의 말로 설득하거나 훈계, 비난만 해서는 성장과 변화는 없습니다. 아이에게 부족한 것을 도와주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봉사하고 남을 배려하는 아이가 되기 바란다면 부모가 먼저 모범이 되야 합니다.

중고등학생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 아이들을 사회복지시설에 데리고 갔습니다. 모두는 아니지만 다녀온 뒤에 변화가 느껴지는 아이들을 봅니다. 가까운 지역아동센터를 후원하거나 복지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제3세계 아이들을 후원하거나 부모가 소박하게 봉사하는 여유를 갖는다면 아이는 저절로 배우게 될 것이고 아이의 삶은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모델링입니다.

▲ 아이들이 폭력에 익숙해지고 폭력으로 상처받는 것이 어느 세대에선가 끊겨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도 언제나 꽃으로도 아이들을 때리지 마라는 버튼을 달고 다닙니다. 30~40명의 아이들과 짧은 수업 시간에 벌어지는 갈등 상황에서 제가 아이들을 가장 쉽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체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갈등을 체벌로 해결하는 한 아이들에게 갈등 상황에서 서로 말로 하지 왜 때리느냐고 당당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폭력에 익숙해지고 폭력으로 상처받는 것이 어느 세대에선가 끊겨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가끔 아이들이 제게 조언합니다. “한번 무지 때려보세요. 그럼 금방 말 잘 듣는데” 이런! 아이들 스스로 아이들은 맞아야 버릇(?)이 생긴다고 내면화 되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더욱 모델링을 합니다.

둘째는 의논하기(Consulting)입니다. 며칠 전 부모와 자녀가 공부에 대한 갈등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아이는 노래를 잘해 가수가 되고 싶다는데 부모는 학생 신분이므로 공부를 해야 한답니다. 부모 나이가 많아 돌봐줄 시간이 적으므로 아이가 공부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걱정없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아이는 여전히 공부에 흥미가 없고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자기 적성과 관심을 잘 압니다. 부모들은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공부해야 미래가 보장(?)된다고 하여 아이의 희망은 ‘대학에 들어가고 난 다음’으로 유보하자고 합니다.

만약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좋다면 아이는 자신의 가치관으로 인한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기꺼이 부모를 의논 상대자로 찾게 될 것입니다. 단, 이때 부모가 일단 조언을 해 준 후에는 자기의 삶을 향상시킬 가치관 선택의 권리는 아이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의 조언이 받아들여질 경우 아이가 자기를 위하여 정말 변화할 것임을 믿고 기다리고 지지해주어야 책임감있고 자율적인 아이로 자랄 수 있습니다.

의논을 할 때 부모 자신의 가치관을 효율적으로 제시할 수 있도록, 그리고 왜 아이가 부모의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하는가를 충분히 설명해줄 수 있도록 부모는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아이가 단순한 흥미로 요리사가 되기로 했다면 부모가 준비한 여러 가지 자료 덕분에 다른 길을 택할 수도 있고 부모의 가치관을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겁니다. 진로와 관련해서 적성검사도 할 수 있고 흥미를 가진 여러 가지 직업을 탐색 하고 탐방해보는 일도 필요합니다.

셋째는 자기 수정입니다. 부모는 가치관이 대립할 경우에 아이의 가치관이 부모의 가치관보다 더 올바를 수도 있다는 것을 어렵지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가치관을 따르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것은 부모가 새로운 가치관의 장단점을 발견하기 위해 개방된 마음을 갖는데서 시작됩니다.

예를 들면 부모는 요리사가 되는 게 꿈인 아이가 왜 그렇게 그것을 하고 싶어하는지, 내가 알고 있는 요리사란 직업에 대해 잘못된 정보와 편견은 없었는지 알아보거나 아이에게 가르쳐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부모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 (명문대 진학만이 아이를 위한 길, 학교에서 하는 공부만이 공부일까)이 타당한지를 재검토하는 것입니다. 많은 가치관들이 당대의 유행이기 때문에 깊은 생각없이 단순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예전에 받아들여진 가치관이 지금은 유행에 뒤떨어지거나 무엇보다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우린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가치관을 변화시킬 준비를 해야 합니다.

또한 부모는 여전히 명문대 진학이 자신에게는 더 가치가 있지만 아이의 가치관이 아이가 살아갈 환경에서는 더 가치 있을 수 있다고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부모는 가치관을 변경하지 않고도 아이의 가치관에 대해 반대를 하지 않음으로써 아이와의 가치관 대립을 끝낼 수 있습니다.

넷째는 평온을 비는 기도입니다.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들을 / 받아들일 수 있는 / 평온을 주옵시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 변화시킬 수 있는 / 용기를 주옵시며
그리고 그 차이를 알 수 있는 / 지혜를 주소서.“

이것은 변화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단지 어떤 일은 변화될 수 있고 또 어떤 일은 변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가치관 대립이 생길 경우 모델학습이나 의논을 통하여 아이를 변화시키거나, 부모와 아이의 가치관의 진정한 가치에 대하여 서로 머리를 맞대고 면밀한 검토를 함으로써 부모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만일 변화가 가능하고 또 변화가 바람직함을 알고도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부모와 아이 두 사람의 관계에 고통과 상처를 줄 것입니다. 반면 변화될 수 없는데도 아이나 부모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무모하게 행동하는 것은 더 해로울 수도 있습니다.

가치관 대립의 해결을 위해 모든 방법을 사용한 후에도 아이에게 아직 남아있는 수용할 수 없는 행동과 가치관이, 부모와의 애정어린 관계에서 얻는 만족과 비교해 작다는 것을 깨달으면 아이는 마음에 조금 남은 수용할 수 없는 가치관과 행동을 부모와 아이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참기(?)로 결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가치관에 의해 우리의 삶이 참 많이 달라집니다. 얼마전 자율형사립고등학교의 부정입학이 밝혀져 입학이 취소되자 아이가 이제 공부 안 하겠다고 했다는 학부모 인터뷰를 봤습니다. ‘너를 위해 그렇게 한 거야, 경쟁에서 지면 어찌 되는 줄 아니’ 어른들이 늘어놓는 미래에 대한 공포감에 아이는 그 학교 입학 취소가 정말 큰일일지 모릅니다. 짧은 인터뷰로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고등학교 입학 취소가 이미 경쟁에서 밀려나는 것이라 생각해 자신의 미래를 불행하게 단정짓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이제 공부안 하겠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해 봐야 성공할 가능성이 적다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지 걱정입니다.

얼마 전 난방에 문제가 생겨 일하러 오신 분들께 힘드실까 걱정했더니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해서 이런 일 할 수밖에 없죠”라는 자조 섞인 말씀을 하시기에 가슴이 답답하고 아팠습니다. 사람의 재능의 한 부분인 한 때의 성적으로 일생동안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나뉘어지고 그에 대한 댓가가 달라지게 만든 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일진데 아직 우리 사회는 개인의 문제로만 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어느 부모들은 아이들이 내 삶을 이어가기 바라며, 어느 부모들은 내 삶을 이어가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아이들에게 명문대를 향해 달릴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힘듭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중독이나 무기력으로 자기 자신을 파괴하며 괴롭히는 아이도 있고 공격적인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 모두 사람의 가치가 공부와 성적이라는 잣대로만 평가되는 이 사회의 모순이 만들어낸 가슴 답답하고 아픈 일입니다.

부모와 아이의 가치관 대립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이야기하며 뜬금없이 요즘 고민을 늘어놓았습니다. 모든 사람을 힘들게 하는 무한경쟁사회라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을 돌아보고 이쯤에서 가치관 대립을 대의적으로 풀어갈 해법을 위해 다른 나라 사례를 모델링하고 면밀히 검토 의논하고 수정하기를 바라며, 모든 이가 앞 사람 뒤통수보고 무조건 달려야 하는 이 무한 궤도의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하나 둘 빠져나와 달리는 사람이 머쓱해지는 즐거운 상상을 해보며 이만 글을 마칩니다.

이명남 / 서울영림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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