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현대제철(옛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도급이 아닌 불법파견으로 봤다. 현대자동차·한국지엠·쌍용자동차를 비롯한 완성차업계에 이어 철강업계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한 첫 판결이다. 철강업계에서 유사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21일 노동계에 따르면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2민사부(재판장 김형연 부장판사)는 지난 18일 현대제철 순천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161명이 원청인 현대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전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현대제철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업무 지휘·명령을 행사하고, 인사·근태에 관여했는지 여부와 협력업체들이 전문성·기술성이 있는지, 독립적인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췄는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뒤 “원고들은 각 협력업체에 고용된 후 피고의 사업장에서 피고로부터 지휘·감독을 받는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 2월19일 노조 광주전남지부가 현대제철 불법파견 인정, 사과와 정규직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지부 제공

재판부는 옛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적용을 받는 근속 2년 초과 109명은 현대제철 정규직으로 인정하고, 개정 파견법 적용을 받는 52명에 대해서는 현대제철이 직접고용의 의사를 밝히라고 주문했다.

 

“현대제철 순천공장 전 공정에 불법파견”

이번 판결은 철강업종 생산공정뿐만 아니라 기계정비·고철장·에너지·폐수 처리·실험실 같은 부수적인 업무까지 제철소에서 이뤄지는 전 공정을 망라해 파견으로 봤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원·하청 직원이 함께 혼재해 작업하는 자동차 생산공정을 중심으로 사내하청 노동자의 근로가 파견으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특히 원청업체와 공정이 분리돼 원청 정규직들은 수행하지 않는 제철소 크레인 운전도 파견으로 인정했다. 동일한 업무를 하지 않아도 원청의 지시·감독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실제 현대제철은 크레인 작업과 관련한 준수사항이 기재된 업무협조 공문을 보내고, 진행실에서 크레인에 설치된 단말기 모니터로 메시지를 띄우는 방식으로 구체적인 작업지시를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 회사는 크레인 운전자들에게 준수사항을 공문으로 하달하고 3회 이상 어길시 순천공장에서 크레인 운전을 금지하도록 하는 등 도급을 위한 지시권의 한계를 넘어 협력업체 근로자들에 대한 실질적 지휘·명령권을 행사했다”고 판시했다.

원고측 대리인인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제조업 생산공정에서 사내하청업체 근로의 파견근로 해당성을 대단히 폭넓게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사내하청 노동자도 웃을까

완성차업계에 이어 철강까지 제조업 사업장 전반에 걸쳐 불법파견 판결이 나오면서, 당장 포스코 광양제철소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2심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광주고등법원의 2심 선고는 이달 3일로 예정됐다가 4월3일 변론을 재개하기로 하면서 연기됐다.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2013년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크레인 운전을 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포스코 정규직들과 같은 작업공간에서 같은 작업을 하지 않았다”며 “포스코가 전산장치를 통해 크레인 작업지시를 한 것은 업무특성상 당연한 내용”이라며 “포스코가 업무상 지휘·감독원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양동운 금속노조 포스코 사내하청지회장은 “이번 현대제철 순천공장 판결은 생산공정에서 사실상 불법파견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한 판결”이라며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고등법원 판단도 현대제철 판결과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혜정 기자 / <매일노동뉴스 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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