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말] 24시간 투쟁을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나의 현장은 멀쩡하고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채기 없는 나무는 없습니다. 꺼진 불도 다시 보랬습니다. 우리 여전히 싸우고 있는 현장을 돌아봅시다. 싸우는 현장에 금속노조의 여러 모순이 엉켜있습니다. 새 연재 ‘싸우는 우리’를 통해 엉킨 실타래를 푸는 단초를 찾아봅시다.

 

“풍경은 전국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공장입니다.”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 풍산공장 한편에 컨테이너 박스와 천막 몇 동이 서있다. 풍산마이크로텍지회가 사무실로 사용하는 컨테이너를 나오면 해운대 장산의 웅장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공장 안에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들이 정원수 역할을 하고 있다. 지회 조합원들은 어딜 가 봐도 우리 공장의 풍경이 훌륭하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풍산과 부산시는 풍산 사업장을 포함한 반여동 일대에서 1조5천억원짜리 부동산 사업을 일으키려 한다. 풍산은 반여동 공장 부지를 대대적으로 개발해 막대한 부동산 차익을 노리고 있다. 현재 장산 밑자락에 깔려있는 공장부지 대부분이 그린벨트로 묶여 개발할 수 없다.

▲ 2월3일 부산시청 앞 노숙투쟁 중인 풍산마이크로텍지회 조합원이 취침 채비를 마치고 자리에 눕고 있다. 부산=성민규

부산시가 반여동 주변 그린벨트를 풀고 개발 계획을 실행하면 공장부지와 주변 숲은 아파트와 빌딩숲으로 바뀐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지역 개발 사업으로 업적을 쌓고, 풍산은 헐값에 취득한 공장 부지를 개발해 최소 5000억원 이상 이득을 얻는다.

부산시와 풍산의 장밋빛 개발 환상에 가슴 졸이며 생존권을 위협받는 사람들이 있다. 부산시와 풍산이 계획대로 개발 사업을 진행하면 풍산마이크로텍지회 조합원들의 삶의 터전인 공장이 사라진다.

 

금속노조만 나가라

문영섭 지회장은 “풍산 계열사 중 우리 지회만 유일하게 민주노총 소속 노조다. 만들었을 때 회사 탄압이 극심했다”며 “결국 풍산은 민주노조가 있는 풍산마이크로텍만 매각했다. 민주노조 정리를 위해 떼어낸 셈이다”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문영섭 지회장의 말대로 풍산은 반여동 사업장에 있는 그룹 소유회사 중 유일하게 풍산마이크로텍만 매각했다. 풍산그룹은 개발 시 소속 사업장 노동자들을 동래공장이나 울산공장으로 전환배치할 예정이다. 하지만 PSMC(구 풍산마이크로텍)가 풍산그룹 소속 회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지회 조합원들은 고용을 보장받을 수 없다.

지역 노동자의 고용보장을 위해 힘써야할 행정관청이 노동자 일자리를 빼앗는데 동참하고 있다. 부산시는 공문을 통해 회사에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을 희망퇴직 시키라고 요구했다. 부산시는 지회가 반여동 부지개발의 걸림돌이라고 지목하고 회사에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지회는 이에 맞서 1월13일부터 부산시청 앞에서 반여도시첨단산업단지 개발 중단을 요구하는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 2월3일 노조 부산양산지부 풍산마이크로텍지회 조합원들이 지회 사무실 옆 거점 천막에 모여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부산=성민규

 

5년 동안 싸웠다

지회는 반여동 풍산공장 한편에 놓인 컨테이너를 사무실로 쓰고 있다. 컨테이너 사무실 양 옆에 놓인 두 동의 천막은 지회조합원들이 회의하고 쉬는 거점이다. 조합원들은 거점에 모여 회의하고 부산 곳곳으로 흩어져 선전전을 진행한다.

남태현 지회조직부장은 지회현판을 가리키며 “우리만큼 진이 빠지게 싸운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지회 만들 때부터 싸웠다”고 말했다. 지회는 풍산을 상대로 440여일을 동안 싸워 공장 안 거점을 쟁취했다.

지회 조합원들은 5년 동안 싸움을 이어왔다. 조합원들은 풍산이 벌인 비밀매각으로 2010년 하루아침에 회사 주인이 바뀌자 매각반대 투쟁을 벌였다. 새 사업주는 일방적인 정리해고로 조합원 54명을 해고했다. 해고당한 조합원들은 복직투쟁에 나섰다. 해고 조합원들은 4년 넘게 투쟁을 벌여 현장에 돌아갔다.

조합원들은 복직 후 한순간도 안심할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조합원 복직 직후인 2015년 2월 원인불명 화재로 공장건물 일부가 불탔다. 회사는 화재로 망가진 공장을 복구하지 않았다. 회사는 공장을 경기도 화성으로 옮기겠다고 통보하며 직원들에게 희망퇴직을 요구했다. 남태현 조직부장은 “조합원 대다수 삶의 터전이 부산이다. 화성으로 옮기기 어렵다”며 “반여동 주변에 공장부지가 많은데 공장 화성 이전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생존권 보장할 때까지 싸운다

지회 선발대가 2월3일 어둠이 깔린 부산시청 앞 보도에 자리를 깔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스티로폼과 깔개, 이불로 잠자리 열개를 만들었다. 조합원들은 한겨울 칼바람을 완벽하게 막기 부족하지만 옷을 껴입고 손난로를 챙기면 잘만하다고 웃었다.

▲ 2월3일 부산 반여동 풍산공장 안에 마련한 풍산마이크로텍지회 거점 앞에서 남태현 지회 조직부장이 부산 곳곳에 집회신고를 내기 위해 나간 조합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부산=성민규

민주노총 부산본부가 주최한 노동개악 반대 결의대회에 참석한 조합원들이 21시가 넘어 시청 앞으로 모였다. 조합원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주변 조명이 꺼지는 22시가 되자 잠자리로 파고들었다. 천막은커녕 이슬을 막아줄 비닐도 없는 잠자리에 눕자 곧바로 검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잠을 방해하는 자동차 소음이 큰 도로에서 쉴 새 없이 들려왔다.

문영섭 지회장은 “우리는 2012년부터 어딜 가든 천막 없이 농성했다. 관청에 아쉬운 소리하기 싫어하는 우리 스타일이 원래 이렇다”고 말하며 자리에 누웠다. 문영섭 지회장은 부산시가 벌인 행태를 보며 이 나라 행정 기준이 기업과 자본가들의 이익창출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가기관이 풍산 같은 대기업 편만 들고 노동자에게 양보와 희생만 강요하고 있다고 했다.

문영섭 지회장은 “부산시 공무원들은 지회가 5년 동안 입장변화 없이 맨날 같은 요구만 한다고 볼멘소리를 낸다”며 “노동자들에게 고용은 생명줄이다. 명줄이 끊어지는 판인데 다른 얘기할게 뭐가 있느냐. 우리 조합원들 목숨 줄 뺏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 맞서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합원들은 누운 채로 다음날 아침 선전전 계획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잠을 청했다. 조합원들은 이불을 손에 꼭 쥐고 다음 날 일정을 위해 눈을 감았다. 아침 선전전은 서병수 부산시장이 출근하는 07시30분부터 시작한다.

한 지회조합원이 독백하듯 말했다. “우리가 20, 30년 넘게 일한 공장을 떠나 뭘 해서 먹고 살 수 있겠느냐. 서병수 시장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함께 살자’는 한마디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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