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낙하산’ 논란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지난 5일 차기 EBS 사장 공모를 내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청와대 내정설’과 함께 이명희 공주대 교수와 몇몇 ‘뉴라이트’ 인사들의 이름이 나오더니, 지난 18일 공모 마감 직후 이명희 교수가 지원한 사실이 확인되며 그의 EBS 사장 선임 가능성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이 교수는 역사학계 안팎에서 ‘뉴라이트 교과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교학사 근현대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다.
방통위와 EBS 주변에서는 이 교수와 같은 뉴라이트 계열 인사로 지원설과 유력설이 돌던 류석춘 연세대 교수와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가 지원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뉴라이트 인사들이 공영방송인 KBS와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하 방문진) 이사회에 대거 진출한 상황과 함께, 방통위의 EBS 사장 공모 첫날부터 내정설이 돌던 이들 역시 모두 뉴라이트 인사들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뉴라이트 인사 중 EBS 사장에 ‘단독’ 지원한 이 교수가 더욱 유력해진 게 아니냐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공모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내정설과 관련해 방통위원장과 함께 EBS 사장 선임을 논의해야 할 상임위원이 “내정설은 나올만한 이유가 있고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고 지적하며 “지금 내용을 공개하지 않겠지만 (내정설 관련) 제보를 받은 게 있다”(11월12일, 고삼석 방통위 상임위원)고 사실상 ‘경고성’ 발언을 한 사실도 있다.
그러나 최성준 위원장은 공모 첫 날부터 내정설로 시작해 마감일 유력설로 구체화 된 논란에 대해 “알 수 없는 얘기”(11월19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라며 펄쩍 뛰었다. 최성준 위원장은 지난 11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도 이에 대한 질문을 받고 “왜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안타까운 건 ‘청와대 낙점설’이 나오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최 위원장의 발언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어쨌든 현재로서는(11월20일 기준) 지원자들의 결격 사유 등을 확인하며 추려내 인선하는 절차가 남아있으니 폭로되고 있는 구체적인 정황들에 대한 얘기는 일단 접어둔다 하더라도 그렇다.
방통위는 지난 7월부터 현재까지 잇달아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만드는 인사를 하고 있다. 지난 7월부터 9월 사이 공영방송 이사진들을 추천(KBS)하고 선임(방송문화진흥회(MBC)‧EBS)했다. 그런데 공모 과정에서부터 여권에서 유력하게 밀고 있다고 거론되던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공영방송 이사회 진출에 성공했다. 이들은 공영방송 이사로 활동하는 지금도 전임 대통령에 대해 “공산주의자”(고영주 방문진 이사장)라고 주장하거나 “동성애자는 더러운 좌파”(조우석 KBS 이사) 등의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사회 통합이라는 방송의 책무를 보장하기 위한 역할을 해야 하는 공영방송 이사진의 발언과 행태로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인사권자인 방통위원장은 “합리적이고 중립적인 인물만이 공영방송의 이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11월11일, 출입기자 간담회)고 말한다.
인사권자로서 지금 이들이 보이고 있는 모습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는 질문에는 “아직 이르다”며 답을 피했다. 앞서 ‘부적격’ 비판이 높았던 이들 이사를 인선했을 당시 방통위는 비밀 투표를 진행했다. 최성준 위원장을 비롯한 여권 추천 방통위원 3인은 단 한 번의 투표에 모두 같은 인물에 표를 행사했고(야권 추천 위원 2인의 표는 엇갈렸다) 이런 결과는 결국 ‘오더성 인선’을 반증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았다.
그럼에도 방통위원장이 위원들의 소신에 따른 투표를 통해 “독립적으로” 인선한 결과라고 주장하는 이들 이사들이 속한 공영방송 이사회에서는 벌써부터 이사장 등에 대한 ‘불신임’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방통위 상임위원조차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잘못된 공영방송 이사 인선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해임 또는 자진 사퇴를 유도할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방통위원장은 책임 있는 인사권자로서의 평가도, 동료 위원 제안에 대한 답변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또다시 불거진 공영방송 사장 내정설에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의혹과 논란에도 어쨌든 아직 EBS 새 사장을 뽑는 일은 과정 중에 있다. 그렇기에 아직은 어떤 평가도 유보할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내정설의 핵심 등장인물인 이명희 교수는 지원 사실이 알려지고 언론과의 통화에서 “교과서만 제대로 되면 EBS 교재와 방송의 좌편향을 확실히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고, 언론노조 EBS지부는 그가 사장으로 선임될 경우 18년 만의 총파업도 불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내용들은 모두 보도되고 있고, 임명권이 있는 방통위원장은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을 참고할” 것이며 “교과서 국정화를 위해 EBS 사장을 선임하는 일은 없을 것”(11월19일, 국회 미방위 전체회의)이라고 했다. 방통위원장의 이 말은 지켜질까. 독립된 의사결정을 법에서 보장받고 있는 방통위의 혼(魂)의 유무를 확인할 시점이다.
김세옥 / <PD저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