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9일 <한겨레> 1면에 중․고교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의 정부 광고가 게재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굳은 의지 속에서 정부가 중․고교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행정예고를 한 직후였던 지난 13일자 신문에 “‘역사전쟁’이 아니라 ‘상식과 국격의 파괴’다”라는 제목의 장문의 사설을 게재하고 매일 기사와 칼럼을 통해 정부의 이런 시도가 얼마나 무서우리만큼 황당한 일인지 강도 높게 비판해왔던 <한겨레>인지라 논란은 거셌다.

앞뒤가 안 맞는, 모순된 행태가 아니냐는 소리가 <한겨레> 안팎에서 쏟아졌다. 더구나 <경향신문>이 <한겨레>와 똑같이 정부로부터 광고 게재 의사를 전달받고 거절한 사실이 알려져 <한겨레>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현재 정부는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여론전에 한창이다. 배재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정부 광고를 대행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에 확인한 결과, 교육부는 최근 전국 단위 일간지와 경제지 22곳에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광고를 게재하는데 5억 157만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10월19일자 신문에 해당 광고를 게재한 <한겨레>는 3,000만원의 광고 매출을 얻을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광고를 게재하기까지 내부 반발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당초 해당 광고는 10월16일자 신문에 집행될 예정이었으나 내부 기자들을 반발로 한 차례 미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편집인 등은 “좌편향이나 주체사상을 언급하지 않아 문제될 게 없다”(10월 19일, 언론노조 한겨레지부 성명)며 광고 게재를 최종 결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과 관련해 ‘좌편향’, ‘주체사상’ 등 몇몇 자극적인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하여 해당 광고를 게재하는 일에 설득력이 따른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사실 몇몇 단어의 사용 유무와 상관없이 해당 광고를 통해 정부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분명하다. 그런데 <한겨레>는 정부의 이런 시도를 그저 하나의 정책에 대한 찬반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10월13일자 31면 기획 사설을 보자. 이 사설에서 <한겨레>는 정부의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전환 시도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정면으로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또 “국정화 논란은 ‘역사전쟁’이니 ‘이념대결’이니 하는 말로 포장돼 있지만 사실과 논리에 근거한 역사 논쟁과 거리가 멀다”며 “힘으로써 민주국가의 상식을 파괴하고, 후진국을 자처함으로서 국격을 망가뜨리는 폭거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의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단순하게 찬반으로 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라는 게 <한겨레>가 이 사설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으로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벗어난 것”(10월 19일, 언론노조 한겨레지부 성명)이라는 판단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한겨레>는 이 사설에서 “(정부가) ‘국정 교과서’라는 용어를 애써 피해가며 ‘올바른 역사교과서’라고 명명한 데서도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런데 <한겨레>에서 비판한 ‘올바른 역사교과서’라는 정부의 명명은 10월19일자 <한겨레> 1면에 게재된 광고에도 사용됐다.

사실 <한겨레>가 기사 논조에 배치되는 광고 게재로 문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겨레>는 지난 2014년 12월 광주인권헌장이 동성애 문화를 조장하고 이단과 사이비를 창궐하게 할 것이라는 기독교 단체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담은 광고를 게재했다.

하지만 <한겨레>가 그동안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문제를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측면에서 비판해 왔던 터라 해당 광고 게재를 둘러싼 논란은 뜨거웠다.

반복되는 이런 논란 속에서 “기사는 기사, 광고는 광고”라는 목소리도 일부에서 힘을 얻고 있다. 이런 목소리가 일부나마 힘을 얻는 상황엔 쇠퇴하는 신문시장의 현실 속에서 정부와 재벌에 우호적인 기사를 쓰는 언론보다 더욱 어려운 경영 상황을 감내해야 하는 진보 언론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이해가 있다.

일단 생존을 해야 진보를, 소수를 대변하고 권력을 비판하는 언론의 기능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이해일 터다. 실제로 <한겨레>는 정부 광고 게재 이후에도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문제를 짚고 비판하는 기사를 1면을 포함해 다수의 지면을 통해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언론에 있어 소위 ‘먹고사니즘’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실례로 정부가 다수의 신문에 중․고교 역사 교과서 국정화 주장을 담은 광고를 집행했던 10월15일 이후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신문에서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관련 기사는 1면에서 사라졌다.

진보 성향뿐 아니라 중도․보수 성향의 학자들과 여당 일부에서도 국정화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이 논란으로 인한 정국의 분열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저마다의 신문에 주어진 편집권을 존중한다 하더라도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신문이, 언론이 정치․경제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돈의 맛’에서 최소한 지금보다는 자유로울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방안에 대한 논의가, ‘돈을 내고 볼 만한 뉴스가 없다’가 아닌 ‘좋은 뉴스를 위해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전환이 필요한 때다.

김세옥 / <PD저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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