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루라기 하나로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던, 그를 아십니까?

다들 세상이 변했다는데, 너나없이 변화된 세상을 말하는데, 60년대를 살다가 전태일처럼 죽어간, 그를 아십니까? 18년을, 자기 집 문지방을 넘나들던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 허덕거리며 드나들었을 공장 길목에, 감사비도 아니고 기념비도 아닌, 그을린 자국하나 흔적으로 남겨진, 그를 아십니까?

50평생 단 한 번도 푸른색으로 바뀌지 않던, 이 멋들어진 21세기에도 붉은 빛만 껌뻑거리던 신호등 앞에서, 붉게 검붉게 타오르던, 그를 아십니까? 병도 아니고 사고도 아니고, 이 견딜 수 없이 부자연스러운 죽음 앞에, “왜”가 아니라 “오죽했으면”이 먼저 가슴을 치던, 그를 아십니까?

더는 밟힐 수가 없어, 도대체가 더는 당할 것도 없어, 마지막 일어서는 일이, 몸부림치며 일어서는 일이, 일어서 외마디 소리친다는 일이, 제 몸뚱아리, 말라비틀어진 몸뚱아리 장작개비 삼는 일밖엔 없었던, 그를 아십니까? 50년 그 긴긴 세월 그 몸뚱아리 하나로 살았으면서도, 기름기 흐르게 먹여본 적도, 늘어지게 쉬게 한 적도, 한 번도 잘해 준 적도 없으면서 그 몸뚱아리를 그예 횃불로 밝혔던, 그를 아십니까?

이 세상에서 입어보는 가장 비싼 옷이 수의가 된 지지리도 못난 사내, 그를 아십니까? 그 마지막 호사마저 분에 넘쳐, 새까맣게 오그라붙어, 타다만 비닐처럼 오그라붙어, 그마저도 64일을 꽁꽁 얼어, 변변히 갖춰 입지도 못한 채 먼 길을 떠나는, 그를 아십니까? 50평생을 밟히고 채이고 내몰리기만 하다가 죽어서야 꽃상여를 타는, 그를 아십니까?

다 태우고 마지막 한 점까지 다 내주고 이제 그가 갑니다. 수십 년 살 부비고 살았던 마누라에게조차 차마 마지막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던 그가 갑니다. 살아서는 지구를 수천 바퀴를 돈다 해도 이 세상 어디서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가 갑니다. 징계, 가압류, 전과자의 굴레를 이렇게밖에는 벗어날 수 없었던 이 모진 땅을 그가 떠나갑니다. 권미경의 곁으로, 조수원의 곁으로, 신용길의 곁으로, 양봉수의 곁으로, 서영호의 곁으로, 최대림의 곁으로, 박창수의 곁으로 또 한 사람이 갑니다.

<2003년 3월14일 배달호 열사를 보내면서 김진숙 동지가 낭독한 글>

 

▲ 2003년 1월10일 '노동열사 배달호 동지 추모와 살인 두산재벌 1차 규탄대회'에 참여한 조합원들이 열사의 영정에 꽃을 바치고 있다. 신동준

 

박용성 두산중공업 전 회장은 2000년 정부로부터 한국중공업을 헐값에 인수한 뒤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1,124명을 명예퇴직으로 내쫓았다. 2002년 한 해 노조간부 89명 징계해고, 22명 고소 고발과 구속, 78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사상 초유의 단체협약 해지 등 온갖 탄압을 자행했다. 조합원들의 성향을 한 명 한 명 분석해 분류한 뒤 가족까지 동원한 노조말살 정책을 폈다. 악랄한 노동자 탄압의 총체가 바로 두산중공업이었다.

두산중공업 노동자들은 살기 위해 투쟁에 나섰다. 교섭위원이었던 배달호 열사는 2002년 파업투쟁으로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사측에 재산과 임금을 가압류당하고 있었다. 몇 달간 집에 생활비조차 가져가지 못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배달호 열사는 부당한 자본의 횡포와 정권의 묵인에 분신으로 항거했다.

2016년 1월7일 13주기 추모제는 두산중공업 정문에서 열사를 보내며 낭독했던 김진숙 동지의 추모사를 다시 낭독하며 시작했다. 배달호 열사를 떠나보낸 지 13년이 지났지만 노동자들에게 달라진 세상도 좋아진 현장도 없다. 여전히 구조조정과 손배 가압류, 고소 고발 등 온갖 노조탄압이 벌어지고 있다. 노동개악까지 해가면서 노동자를 노예로 만들려는 자본과 정권의 음모는 더 심해지고 있다.

13주기 추모제는 열사를 추모하는 현수막이 아니라 ‘호루라기 소리, 호각소리 듣고 싶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었다. 집회나 행사가 있을 때면 항상 호루라기를 불며 동료들의 참여를 독려하던 호루라기 사나이 배달호 열사. 이제는 살아남은 우리가 다시 호루라기 불면서 힘차게 투쟁할 때다.

강웅표 / <배달호 열사 추모사업회>

 

배달호 열사 약력

 

1953년 10월14일 경남 김해시 출생

198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입사

1988년 두산중공업 노조 2대 대의원

1993년 7대 대의원

1995년 10대 노사대책부장, 민영화 대책위원

1997년 11대 대의원(3지구대장), 민영화 대책위원

1998년 12대 대의원, 파견대의원, 민영화 대책위원

1999년 13대 대의원(3지구대장), 운영위원

2001년 15대 대의원, 파견대의원

2002년 교섭위원

2002년 7월23일 두산중공업 파업투쟁으로 구속

2002년 9월17일 출소, 집행유예, 재산과 임금 가압류, 정직 3개월 징계

2002년 12월26일 현장 복귀

2003년 1월9일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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