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일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남한을 방문했다. 커트 캠벨은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신각수 외교통상부 제1차관을 예방, 한미동맹 현안과 북핵을 비롯한 북한 문제 등 전반적인 양국 현안을 논의했다. 이어 6자회담 우리 측 수석대표인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만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 동향 및 향후 6자회담 재개, 북핵 대응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뿐만 아니라 천안함 사태의 원인과 관련하여 ▲내부폭발 ▲외부충격 ▲북한소행 등에 따른 대응방향을 협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하여 정부의 한 당국자는 "미국은 동맹국으로서 사고수습과 원인규명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입장"이라며 "앞으로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오더라도 향후 대응에 있어서 한미 간 공조는 긴밀히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쯤 되면 한미공조는 긴밀하다 못해 찰떡궁합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천안함 사태의 전개과정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자.
지난 달 26일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한 뒤 10일 이상 경과했지만 실종자 수색은 지체되는 반면 온갖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실종자 수색과정에서 한주호 준위를 비롯하여 금양호 선원 2명이 사망하고 7명이 실종되는 등 인명피해가 연이어 속출하였다. 이를 보다 못한 실종자 가족대책위는 더 이상의 인명피해를 막고 실종자 수색에 소극적인 국방부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실종자 수색을 중단해달라는 요구까지 공개적으로 천명하였다.
과연 국방부 관계자는 실종자 수색을 중단해달라는 가족대책위의 피 끓는 분노를 제대로 헤아리고나 있는 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해군과 국방부는 사건 직후 구조 활동을 비롯한 초동대응에서부터 허점을 드러내더니 실종자 수색과 사건의 원인 규명, 실종자 가족과 국민정서 위로 등 모든 분야에서 총체적 무능과 늑장대응, 사실 은폐와 말 바꾸기로 일관해왔다. 이로 인해 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국방부가 천안함 침몰사건 전후 천안함과 해군 2함대사령부 사이에 이뤄진 교신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서해안 일대에서 펼쳐진 한미연합 군사훈련인 독수리훈련(Foal Eagle)과 관련해 북을 자극할 수 있는 '기동훈련'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감한 내용 때문에 천안함 이동경로와 침몰직전 상황을 담은 교신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독수리 훈련'은 유사시 미국 본토에서 한반도로 전개되는 증원군을 수용해 한국군과 통합하는 절차를 숙달하는 '키 리졸브' 훈련과 연계해 실시되는 한미연합 군단급 야외기동훈련이다. 이에 따라 한미 해군은 지난달 23일부터 천안함 침몰사건 발생 직전까지 군산 이남에 있는 격렬비열도 인근 서해상에서 미국 이지스함 등 2척과 한국의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 최신예 전투함인 최영함, 윤영하함 등 2함대 배속 함정이 모여 합동훈련을 했다.

이에 대해 북한 중앙방송은 지난달 29일 "19일 평택항에 기어든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 2척과 해군 구축함 세종대왕호를 비롯한 전투함선들이 23일부터 수 일간 대함 및 대공사격훈련, 해양차단작전 등을 본격 감행했다"고 격렬히 비난했다.

천안함 사건이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가장 높은 곳인 서해 5도 지역에서 한미연합 독수리훈련이 진행되는 기간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적대정책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가 포함된 10.4선언을 이행하여 이 지역의 긴장을 완화하고, 대북 침략적 전쟁연습인 키 리졸브 독수리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했더라면 이번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근본적으로는 분단과 전쟁, 남북 쌍방이 합의한 해상 경계선조차 없는 불안정한 정전상태로부터 비롯된 어처구니없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을 비롯한 반북수구세력은 아무런 합리적이고 신빙성 있는 근거조차 제시하지 않으면서 무차별적으로 이번 사건을 북의 소행으로 몰아갈 뿐만 아니라 전쟁까지 선동하는 위험천만하고 범죄적인 반북 소동을 벌이고 있다. 김태영 국방장관을 비롯한 국방부와 해군 당국자들 역시 이번 사건의 원인을 북으로 돌리는 듯한 언행을 계속 함으로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무책임하고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방귀 뀌고 성내는 모습’이 볼 성 사납다.

한편, 북에 사건의 책임을 돌리려는 한국 국방부의 태도에 대해 미국은 일관되게 북한의 개입 가능성을 배제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전시작전통제권은 물론 평시작전통제권의 핵심권한까지도 연합권한위임사항(CODA)이라는 이름으로 주한미군사령관이 장악하고 있고, 사고 당일 서해에서 한미연합 독수리훈련이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미국 또한 이 사건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우선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건대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져 있다는 점을 직시하고 철저하고 공정한 조사를 통해 진실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 진상조사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가 꾸린 합동조사단에 실종자 가족을 비롯하여 야당과 사회단체, 각계 전문가를 포함시키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국방장관과 해군참모총장을 비롯한 관련 책임자는 응분의 법적·정치적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은 이번 사건의 원인이 왜곡 은폐되는 것을 방지하는 한편,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책임 있는 태도로 나서야 한다. 나아가 한미양국은 이 사건의 근본 원인이 분단과 전쟁, 불안정한 정전상태와 대북 적대정책에 있는 만큼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상황을 법적으로 청산하는 결단을 조속히 내려야 한다. 그 길만이 제2의 천안함 사태의 재발을 막는 길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악재는 되풀이 된다’는 지난 역사의 교훈을 한번이라도 숙고해보시길.

김종일 /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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