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아픔으로 기억하는 20년 전의 그 날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해 겨울은 어느 해보다 추웠습니다. 삶에 대한 애정과 살아야 할 시간들에 대한 소중함을 간직한 한 젊은 노동자가 자본과 정권의 폭압에 항거한 그 해 겨울. 그의 죽음은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고통과 분노를 주었지만, 동시에 삶의 이정표를 제시했습니다.

1995년 12월15일 새벽. 여의도백화점 7층 민주당사 비상계단으로 향한 조수원 동지의 발걸음을 몇 번이고 떠올렸던 우리에게 지난 20년은 견디기 힘든 세월이었습니다. 결단의 시간을 혼자 보내며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조수원 동지의 뒷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동지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에 시달렸습니다. 살가웠던 동지를 잃은 슬픔에 목 놓아 울며 회한과 분노에 절규하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조수원 동지의 죽음은 도저히 믿을 수 없고 있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 1996년 1월6일 조수원 열사 장례행렬이 부산 대우정밀 공장을 나서고 있다.

1987년 대우정밀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설립했습니다. 노동해방열사 조수원의 삶은 노동조합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1987년부터 1991년 부당해고 당할 때까지 조수원 열사는 젊은 날에 헌신적으로 노동조합에 참여함으로써 노동자로 거듭 태어났고 역사의 주체, 투쟁의 주체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갔습니다. 이 기간 동안 조수원 열사는 노동조합활동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세우고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특히 원칙과 노동자의 대의를 기준으로 현실에 접근했습니다. 노조 편집부장으로 일할 때 노보『해방·터』, 유인물「활화산」을 제작하면서 열사의 정신은 활자화되어 조합원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열사는 1988년~1989년 사이 129일 동안 파업투쟁, 1991년 전노협 사수 투쟁 등 전투적인 민주노조 기풍을 당당하게 현장에 뿌리내리게 했고 투쟁을 승리로 엮어내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열사의 삶은 지회활동의 중요한 활동 원칙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조수원 열사 정신은 계승, 발전할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조수원 열사의 정신은 지금도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자신보다 동지와 조직을 우선하면서 그는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배자, 해고자, 병역기피자라는 여러 굴레 속에서도 당당하게 투쟁했습니다.

조수원 열사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사람은 노동자였습니다. 희생적인 열사 삶은 지친 동지들에게 큰 희망으로 다가서고 시련보다는 희망을, 좌절보다는 새로운 투쟁을 만들어 내는 작용을 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희망을 갖고 사람을 통해 현실의 조건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조수원 열사의 뚜렷한 가치관이었습니다.

주변 여건들이 만만치 않은 일로 가득한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현실이라는 장벽을 넘어 노동자의 대의를 기준으로 모순에 접근하는 길이 순리인데 과연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의문을 던져봅니다. 쉽게 세상과 타협하고 좀 더 안락한 삶을 위해 우리는 열사의 정신을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지 자신을 되돌아보지만 명쾌하게 ‘아니다’라고 말하지 못하며 살고 있습니다.

추모제에서 외치는 열사 정신계승은 생활과 투쟁 속에서 의식할 때 진정한 계승이 될 것입니다. 혼돈이 가득하고 명쾌한 해답을 내리기 힘든 시대에 사는 우리는 열사의 정신을 기억할 때 올바른 삶을 영위할 수 있고 노동자 대의를 지킬 수 있습니다.

▲ 1994년 5월20일 조수원 열사(사진 오른쪽) 등 병역특례 해고노동자들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자본과 정권의 폭압과 폭정에 항거한 많은 열사들이 있습니다. 지금 민주노조는 열사가 만든 토양에 깊이 뿌리내려 새싹을 키우고 있습니다. 열사는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열사는 노동자의 역사적 임무를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여름내 가물던 땅에 겨울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습니다. 새벽 무서리에 떨어진 낙엽은 나무뿌리로 스며들어 새봄이 되면 다시 무성한 잎으로 태어날 것입니다. 조수원 동지가 뿌린 노동해방의 씨앗은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 온 대지를 뒤덮을 것입니다. 노예이기를 거부하고 참된 인간으로서 권리를 당당하게 밝히며 하나뿐인 목숨을 동지와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던진던 노동해방열사 조수원 동지. 우리는 조수원 동지가 죽음으로 흔들어 깨운 노동해방 정신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조성민 / <조수원 열사 정신계승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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