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해고됐으니까 남들 같은 월요일이 없잖아요. 복직해서 남들처럼 월요일에 일하고 싶다는 의미로 <해피먼데이>란 이름을 붙였어요.” 

김성진 패원은 쌍용자동차지부(아래 쌍용차) 노래패 <해피먼데이>의 뜻을 이렇게 설명했다. <해피먼데이>는 남들처럼 공장으로 출근하는 평범한 월요일, 하지만 아직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월요일을 기다리며 수많은 투쟁의 현장에서 노래하고 있다.

<해피먼데이> 패원들은 12월2일 평택 쌍용차 심리치유센터 <와락>에서 다음날 열릴 20회 인천인권영화제에서 부를 ‘이 길의 전부’와 ‘콩그레츄레이션’를 연습하고 있었다. 가벼운 율동을 하며 노래하던 패원들은 서로의 몸짓에 웃음을 터뜨렸다.

 

연대를 넘어선 자기 투쟁

<해피먼데이>의 탄생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점거파업 1주년을 맞아 노래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노래패가 탄생했다. 이후 쌍용차 노래패는 여러 투쟁현장에서 연대 공연을 하다 2011년 이용석 가요제를 준비하면서 ‘함께 꾸는 꿈’이란 이름을 붙여 노래패를 재정비했다. <해피먼데이>로 이름을 바꾼 때는 지난 8월 ‘2015 강정생명평화 대행진’을 마친 후다.

▲ 쌍용자동차지부 노래패 <해피먼데이>가 12월2일 평택 쌍용차 심리치유센터 <와락>에서 3일 개막하는 20회 인천인권영화제에서 부를 ‘콩그레츄레이션’를 연습하고 있다. 평택=김경훈

현재 패원은 패장인 유제선 쌍용차지부 비정규직지회 부지회장, 고동민 쌍용차 대외협력실장, 김남오 조합원, 김득중 쌍용차지부장, 김성진 쌍용차 정비지회 사무장, 복기성 쌍용차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 한윤수 쌍용차 비정규직지회 사무장 등 일곱 명이다.

김성진 패원은 7년여를 투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2011년부터 2년 11개월 동안 지속된 대한문 투쟁을 꼽았다. “대한문은 인권, 종교계 등 사회 각계각층의 힘이 다 모인 집합소 같았어요.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그동안 갖고 있던 오해와 편견들이 바뀌는 걸 느꼈어요. 그때 받았던 감동과 울림은 평생을 가도 잊지 못할 거 같아요.”

유제선 패장은 <해피먼데이>가 노동현장 외의 다른 사회 투쟁에 꾸준히 연대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단순한 연대가 아니라 나의 투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저는 쌍용차 투쟁에 연대한 동지들이 자기 투쟁한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노동현장 외의 다른 투쟁 현장에서 노래하는 이유도 여러 문제를 나의 투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해피먼데이> 패원들이 가장 인상 깊은 공연으로 기억하는 공연들은 인권 관련 투쟁에 연대한 공연이다. 복기성 패원은 <해피먼데이>가 섰던 무대 중 2015년 5월16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 아이다호 공연을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꼽았다. 복기성 패원은 “동지들의 축제를 망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부담이 컸지만, 가장 성공적인 공연 중 하나였다. 드물게 흡족한 공연이었다”며 웃었다.

▲ 유제선 패장이<해피먼데이>가 노동현장 외의 다른 사회 투쟁에 꾸준히 연대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평택=김경훈

김남오 패원은 “‘2015 강정생명평화 대행진’ 공연이 인상 깊었다”고 자랑했다. “기획회의에서 아무도 우리한테 공연을 하라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우겨서 노래도 부르고, 율동도 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우리 공연이 제일 호응이 좋았죠. 동지들이 정말 좋아해줘서 우리도 뿌듯했습니다.” 

 

“복직해서 함께 정기공연하고 싶다”

<해피먼데이> 패원들은 노래패 활동을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고 입을 모았다. 고동민 패원은 “투쟁하다 보면 마음이 격해지고, 내적 갈등을 겪을 때가 많다. 이럴 때 노래가 정신적으로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7년여 동안 투쟁하면서 지치고 힘들 때가 많았지만, 노래에서 위안을 얻고 새롭게 투쟁할 수 있는 힘을 받았다고 한다. 고동민 패원은 “투쟁이 정체되고, 심지어 후퇴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럴 때 노래를 부르며 위안을 얻는다”고 덧붙였다.

노래패 활동으로 얻은 다른 하나는 함께 노래를 부르는 동지들과의 ‘관계’다. <해피먼데이>패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는 ‘해피 먼데이’가 와도 계속 노래패를 유지할 수 있을지 분명치 않다. 복기성 패원은 “복직해도 함께 노래패를 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복직하면 노래패를 그만 두려는 사람도 있겠죠. 그래도 전 계속할 거고, 떠나는 사람을 붙잡을 거예요. 우리가 7년 동안 싸우면서 남은 건 함께 했던 사람, 동지들과 관계니까요. <해피먼데이> 동지들과 맺은 관계를 지금처럼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복직 기념 정기공연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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