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16일 금속노조 충남지부 세원테크지회 설립.

12월12일 용역 깡패와 노조파괴에 맞서 충남 최초 지역 총파업 전개.

2002년 1월 단체협약 체결.

2002년 154일 공장점거 파업.

2002년 8월16일 이현중 지회 문화체육부장 진입투쟁 중 부상.

2002년 10월22일 노사합의.

2003년 8월26일 이현중 문화체육부장 사망.

전면 파업 돌입 후 대구 세원정공 본사에서 열사 투쟁 돌입.

10월23일 이해남 지회장 분신.

11월17일 이해남 지회장 사망.

12월10일 노사 합의.

12월12일 이현중·이해남 열사 전국 노동자장.

2004년 지회 선거에서 민주파 9표 차로 패배. 어용 집행부 금속노조 탈퇴.

▲ 이해남 열사.

11년이 흘렀다. 그동안 자본의 탄압은 막무가내로 밀려 들어왔고, 민중을 향한 정권의 오만과 독선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두 번 다시 열사를 만들지 않겠다고 했지만, 매년 여러 열사가 이현중, 이해남 열사와 만났다. 바닥을 치면 솟구친다고 했지만 바닥을 뚫고 땅속으로 들어갈 만큼 우리의 투쟁은 계속 밀리기만 했다. 노동개악에 맞선 총파업을 앞둔 지금, 이해남 열사의 삶과 투쟁은 우리가 나아갈 길을 알려주고 있다.

투쟁을 피하거나 계산하지 않았다. 이해남 열사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2년 동안 두 번의 구속과 세 번의 수배를 당했다. 투쟁을 고민하며 “집회에 몇 명이 모일까? 이 정도면 되겠지”라며 계산하거나 예상하지 않았다. 해야 하는 투쟁, 해야 할 투쟁이었기에 투쟁 여부를 고민하지 않았다. 어떻게 최선을 다할 것인지 우선 고민했다. 최선을 다한 투쟁이었기에 아쉬움은 있었지만 후회가 들어올 여지는 없었고, 평가는 살아있는 평가가 되었다.

살아있는 총파업. 2001년 200여 명의 용역깡패에 맞선 투쟁에서 완전하게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충남지역 총파업이었다. 이틀 밤을 용역깡패와 대치하고 싸우던 과정에서 만들어진 지역 총파업. 총파업을 결정했던 동지들 전부가 오롯이 투쟁 현장에서 누구보다 앞장서 투쟁했다. 총파업의 필요성을 절실히 이해했던 동지들이 내린 결정. 밀물처럼 끝도 없이 밀려 들어오던 노동자 군대와 꽁무니를 빼며 도망치던 용역 깡패. 이렇게 충남지역 총파업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총파업이었다.

이해남 지회장은 연대를 생명처럼 여겼고 낮은 곳의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시그네틱스 투쟁, 까르프 투쟁,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투쟁, 이주노동자 투쟁 등 수많은 투쟁에 연대했다. 노조를 설립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를 위한 식단을 따로 준비한 일이었다.

▲ 2003년 12월12일 거행한 이현중-이해남 열사 전국노동자장.

열사를 기억하는 일, 열사정신 계승의 의미는 무엇일까?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자신이 없어졌다. ‘열사정신 계승’ 구호를 뛰어넘는 우리의 삶과 투쟁은 무엇인지 갈피를 못 잡고 헤매던 즈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서울남부지역 노동해방열사 합동추모문화제 사전행사로 열사 강연을 해달라는 것. ‘감히 내가 열사 강연이라니.’

거절하기 어려워 주제넘게 하겠노라 하고 하이텍알씨디코리아 구로공장을 찾았다. 공장 입구 천막을 지나 허름한 곳에 들어가니 여러 동지들이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간단한 인사를 하고 삼계탕 한 그릇을 퍼서 함께 저녁을 먹고, 강연 장소로 들어간 공장. 책과 영상으로만 봤던 구로공단의 그 허름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1985년 구로동맹파업을 치른 현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

“이해남 지회장님이 분신하기 전에 이곳에 오셨어요.” 강연을 마치고 천막에서 진행한 뒤풀이에서 2003년 당시 분회장이었던 김혜진 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부지회장이 상념에 잠겨 이야기를 뱉어냈다.

이현중(세원테크지회, 8월26일 사망), 김주익(한진중공업지회, 10월17일 사망), 이해남(세원테크지회, 10월23일 분신, 11월17일 사망), 이용석(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지회, 10월26일 분신, 10월31일 사망), 곽재규(한진중공업지회, 10월30일 사망).

수많은 노동자가 자신의 목숨을 던지며 투쟁했던 노무현 정권 2003년. 당시 힘들고 외롭게 투쟁했던 동지라면 한 번쯤 고민했던 죽음. 자신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이해남 지회장의 소식을 접한 후 고민을 접었다고 했다. 이렇게 이현중, 이해남 열사는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불쑥 튀어나온다. 열사 정신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기억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한창 유행하는 드라마 <송곳>의 주인공 이수인의 대사를 옮긴다. 이해남 열사와 닮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같은 무게를 견딜 수는 없습니다. 그분들은 우리와 함께 싸우다 우리보다 먼저 쓰러진 것뿐입니다. 저는 부상당한 동료를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아직 노조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저보다는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보다는 한 달 치 월급 때문에 탈퇴한 사람들에게, 탈퇴자보다는 가입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입 자격도 불확실한 계약직들에게 노조는 더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더 절실한 사람들에게 열려있지 않는 노조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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