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뿌리산업 종사자까지 파견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비정규직 관련법 개정 논의가 국회로 넘어갔다. 노사정은 9·15 노사정 합의 이후 진행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 후속협의에서 비정규직 쟁점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비정규직 문제는 쟁점이 다양하고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또한 막대하다. 때문에 여야 입장 역시 첨예하게 맞선다. 사회 양극화 문제의 핵심으로 꼽히는 비정규직 문제를 바라보는 여야의 관점과 해법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비정규직 관련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고용을 유지하거나 늘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고용유연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에서 경영계에 유리한 내용이다. 이에 반해 야당은 비정규직 규제 강화와 정규직화를 강조한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만이 사회 양극화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계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공은 국회로 넘어갔지만 ‘정부·여당·경영계’와 ‘야당·노동계’의 강 대 강 대결이 불가피해 보이는 이유다.

 

기간제 사용기간 늘려도 고용불안 그대로

민주노총은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 국민을 비정규직으로 만들려는 비정규직법 개악 논의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노사정위 노동시장구조개선특위 전문가그룹이 내놓은 ‘차별시정․기간제·파견 쟁점 관련’ 보고서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17일 국회에 제출될 예정인 노사정위 보고서에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방안에 대한 노·사·정·전문가 그룹의 의견이 각각 담겼다.<표 참조>

핵심 쟁점 중 하나는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을 4년까지 연장하는 내용의 기간제법 개정 여부다. 정부와 여당은 35~54세 근로자 중 본인이 원하는 경우 기간제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최대 4년까지 늘리자고 주장한다. 정규직 전환이나 재취업이 어려운 중장년층 현실을 감안해 이들이 같은 직장에서 더 오래 일하도록 만들어 주자는 얘기다. 정부·여당은 4년이 경과한 뒤에도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직수당을 지급하자는 제안도 내놓았다. 경영계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기간제 사용기간을 제한하는 법조문 자체를 없애자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계와 야당은 “수용 불가”라고 반박한다. 사용기간이 4년으로 늘어나더라도 정규직 전환을 기대하기 어렵고, 이직수당만 지급하면 언제든 해고가 가능한 수습기간을 4년으로 늘려 주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기간제교사나 영어전문강사 같은 일부 학교비정규직 직무의 경우 4년까지 비정규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돼 있지만, 이들이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사례는 거의 없다”며 정부․여당 제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인천대 비정규직 조교 사용사례도 노동계의 우려를 뒷받침한다. 인천대는 기간제법 예외조항을 악용해 조교들과 5년 근로계약을 맺고, 5년이 지나면 계약해지하는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다. 김세영 대학노조 조직부장은 “인천대 조교들은 교직원과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면서도 중도에 계약해지될 것이 두려워 임금이나 근로조건 차별에 대해 문제제기조차 하지 못했다”며 “기간제 사용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늘더라도 비정규 노동자들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으며,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결국 해고 통보”라고 지적했다. 저임금과 고용불안이라는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장도 병원도 파견천국 되나

파견법 개정을 둘러싼 양측의 이견은 더욱 엇갈린다. 대법원의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판결을 계기로 기업들의 무분별한 파견 사용이 이윤추구를 위한 불법적 행위임이 명확해졌는데도, 정부․여당은 오히려 ▲고령자 파견확대 ▲고소득 전문직 파견확대 ▲뿌리산업 종사자 파견확대 등 지금보다 파견직을 늘리는 대책을 들고나왔다.

반면 노동계와 야당은 “근로자 출산·육아 또는 질병·부상 등으로 결원 대체 시, 일정한 사업의 완료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에만 파견직을 쓸 수 있도록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특히 노무공급을 목적으로 파견이 악용될 소지가 높은 제조업 생산공정업무를 “파견 절대금지업무로 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파견법 개정방안 중 눈여겨볼 대목은 고소득 전문직 파견확대와 뿌리산업 파견확대다. 통계청 한국표준직업분류 대분류 1(관리직)·2(전문직) 세세분류 업무에는 무려 900여개의 업무가 포함돼 있다. 여기에는 판사·변호사·세무사 같은 소위 ‘사’자 직업 외에도 초중고 교사․유치원 교사․간호사․자동차부품 기술 영업직․기자 등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완성차 공장 내 품질관리(QC) 업무는 ‘자동차 품질검사 지원 전문가 업무’로, 설비보전 업무는 ‘기계장치 수리 지원 업무’로, 생산관리 업무는 ‘물류․배송 전문 업무’로, 수출선적 업무는 ‘포장·선적 지원 준전문가 업무’로 구분할 수 있다. 해당 업무에 파견사용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 민주노총이 11월 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노사정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국민을 평생 비정규직으로 만들려는 박근혜 정부와 노사정위원회, 새누리당을 규탄하고 있다. <노동과 세계>

이런 일은 병원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현행 파견법은 의사는 물론 간호사나 임상병리사·방사선사·의료장비기사처럼 국민 건강과 밀접한 업무에 파견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여당의 계획대로라면 앞으로 장기근속자를 중심으로 파견 전환이 가능해진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미조직위원장은 “병원에서 오래 근무한 40대 중후반 이상 노동자들은 전문직으로 구분되는 동시에 새누리당이 고소득자 소득기준으로 제시한 연봉 5천600만원에 근접한 임금을 받고 있다”며 “파견법 개악안이 통과하면 병원 내 장기근속자들은 파견회사로 쫓겨날지, 임금삭감 같은 근로조건 불이익변경을 수용할지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55세 이상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까지 파견을 허용하면 전체 노동자 10명 중 4명꼴에 해당하는 741만명이 새롭게 파견 대상에 포함된다고 추산한 바 있다.

 

파견 늘리면 뿌리산업 인력난 해소?

정부·여당이 영세기업 인력충원 대책으로 내놓은 뿌리산업 파견확대에 대해서도 이견이 팽팽하다. 뿌리산업인적자원개발위원회가 올해 8월 발표한 ‘뿌리산업 실태 및 인력수급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내 뿌리기업은 전국 2만6천곳, 종사자는 42만명이 넘는다. 업체당 평균 종사자는 16.2명이다.

새누리당이 발의한 파견법 개정안은 주조·금형·용접·표면처리·소성가공·열처리 등 뿌리기술을 활용하는 업무뿐 아니라 ‘뿌리기술에 활용되는 장비 제조업무’까지 파견을 허용하고 있다. 대규모 제조업체에 기계장치와 장비를 납품하는 업무까지 파견 허용업무로 분류한 것이다.

노사정위 노동시장구조개선특위 전문가그룹의 의견은 한발 더 나아갔다. 전문가들은 기존 ‘모집형 파견’이 아닌 ‘상용형 파견’을 통해 영세기업에 인력을 공급하자고 주장한다. 상용형 파견은 파견업체가 파견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함으로써 해당 노동자가 다른 업체에 파견업무를 나가지 않는 동안에도 임금을 지급하는 형태다.

그러나 상용형 파견이 본래 취지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노동계의 분석이다. 오민규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전략사업실장은 “파견업체에 노동자 이름만 등록해 놓은 뒤 물량 주문이 있을 때에만 업체에 파견을 보내는 호출근로 형태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뿌리산업 인력난이 해당 산업의 영세함에서 비롯된 만큼 원청의 불공정거래 해소나 노동자에 대한 생활임금 보장과 같은 근본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은회 기자 / <매일노동뉴스 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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