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법원 인지제도가 노동자의 노동권을 제약하고 있고, 헌법 원리를 어기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재판을 받는 데 필요한 수수료인 인지대가 지나치게 높아 노동자와 시민들의 재판청구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손잡고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위원회, 이상민 법제사법위원장과 이종걸 원내대표, 이춘석 의원, 전해철 의원, 변재일 의원, 은수미 의원(새정치민주연합), 서기호 의원(정의당)은 10월27일 국회도서관에서 ‘인지제도와 재판청구권’ 토론회를 열어 현행 인지제도의 문제점을 여러 각도에서 지적했다.

“인지대 때문에 소송 포기 고민하는 노동자가 생기고 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김종철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인지제도가 헌법 원리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김종철 교수는 “헌법은 ‘실질적’ 자유와 평등을 달성을 목표로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있다”며 “경제적 이유로 재판에 접근할 수 없다면 복지주의가 심각한 위협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사자에게 실비 수준을 넘는 과도한 인지대를 물게하는 제도는 국민 실질 평등을 요구하는 복지국가원리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 송영섭 노조 법률원장이 10월27일 ‘인지제도와 재판청구권’ 토론회에서 “아무리 사법제도가 훌륭해도 높은 인지대 때문에 재판을 청구하지 못하면 사법제도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이라며 “노동자들이 인지대가 없어 주장을 펼칠 기회조차 상실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경훈

송영섭 노조 법률원장은 노동사건 사례를 들어 인지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기존 민사소송 등 인지규칙은 소가를 산출할 수 없는 노동권 소송의 소가를 2천만100원으로 산정했다. 2014년부터 시행한 개정 규칙은 노동권 소송의 소가를 5천만원으로 산정했다. 이에 따라 인지대가 2.5배 오르면서 대법원까지 소송을 진행할 경우 100만원이 넘는 인지대를 내야 한다. 한국은 소가연동제를 채택해 소가가 늘수록 인지대가 증가한다.

송영섭 법률원장은 “인지대를 대폭 올리면서 인지대 때문에 소송 포기를 고민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손해배상 사건을 예로 들었다. 현대자동차지부 비정규직지회는 2010년 11월15일부터 25일간 울산1공장 점거파업을 벌였다. 현대자동차는 총 금액 213억원에 달하는 7건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비정규직지회는 1심 패소 후 항소에 필요한 1억 여 원의 인지대가 부담돼 항소포기까지 고려했다.

송영섭 법률원장은 “아무리 사법제도가 훌륭해도 높은 인지대 때문에 재판을 청구하지 못하면 사법제도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이라며 “노동자들이 인지대가 없어 주장을 펼칠 기회조차 상실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지대 인상으로 소송 남발 못 막는다”

이날 토론한 심경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총괄 심의관은 “한국처럼 소가연동제를 채택한 일본, 독일의 1심 수수료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인지대 수준이 결코 과다한 편이 아니다. 현재 체계를 바꾸기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며 현행 인지제도를 옹호했다. 심경 심의관은 상소제기 시 인지대를 증액하지 않는 방안에 대해 “각 심급별로 모두 동일한 인지대를 낸다면 상소 남발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 손잡고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위원회, 이상민 법제사법위원장과 이종걸 원내대표, 이춘석 의원, 전해철 의원, 변재일 의원, 은수미 의원(새정치민주연합), 서기호 의원(정의당)이 10월27일 국회도서관에서 ‘인지제도와 재판청구권’ 토론회를 열고 있다. 김경훈

김제완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지대는 소송 남발을 막기에 적절한 수단이 아니다. 재판 외 분쟁해결제도 활성화, 상소이유의 제한 등 다른 정책수단을 통해 소송 남발을 막아야 한다”고 반박하며 “인지대 때문에 소를 제기하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사회가 바람직한 법치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사회자인 황승흠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한국은 이미 소송 남발 사회다. 현행 인지제도는 소송 남발을 방지하는 데 실패했다”며 “소송 남발은 인지제 문제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현행 인지제도의 대안으로 인지대 상한제 등이 논의됐다. 송영섭 노조 법률원장은 “높은 인지대는 노동자들에게 법원의 문턱을 높일 뿐 경제적 강자인 사용자의 불필요한 소송 남발을 억제하는 기능은 거의 없다”며 “노동자들이 사법제도를 통해 노동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인지대 상한을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소가: 원고가 소로서 주장하는 권리 또는 법률관계에 관하여 가지는 이익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금액으로 표시한 것으로서, 소송물가액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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