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2일 아침, 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 조합원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구로공장으로 출근했다. 각자 자리를 찾아 앉았지만 일을 시작할 수 없었다. 회사가 이전한 새 공장으로 출근하라고 일방 통보를 한 상태였다. 공장장은 구로공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자재도 모두 빼 갔다.

회사는 9월15일 교섭에서 구로공장 부지를 팔았다고 통보했다. 이어 9월17일, 10월12일부터 독산동에 위치한 새 공장으로 출근하라는 공고문을 게시했다. 조합원들은 하루아침에 공장에서 내쫓기는 신세가 됐다.

청춘바쳐 일한 공장, 억울해서 못 나간다

신애자 분회장은 스무살이던 1987년 하이텍에 입사했다. 올해로 입사 29년차. 말 그대로 청춘을 고스란히 바쳐 일했다. 조합원 여섯 명도 20년 안팎으로 이 곳에서 일했다.

신현숙 조합원은 23년 동안 하이텍 노동자로 살았다. 신현숙 조합원은 “부지를 팔았다는 소식을 듣고 답답했다. 도대체 회사 탄압의 끝이 어딘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어린 아이 셋을 키우고 있다. 정년까지 일해야 아이들을 키우며 먹고 살 수 있다. 노동자들의 생존이 달렸는데 회사는 공장폐쇄를 강행하고 있다.

▲ 하이텍알씨디분회 현판이 조합원들의 투쟁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신동준

신애자 분회장은 “공장이전은 조합원 일곱 명은 한번에 내쫓기 위한 꼼수”라고 회사의 의도를 꼬집었다. 분회는 회사에 공장이전 통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명확히 밝혔다. 9월23일 구로공장 사수 천막농성을 시작하며 ‘공장폐쇄 분쇄, 민주노조 사수, 생존권 쟁취’ 투쟁에 본격 돌입했다.

‘회사가 공장 문을 닫는다는 게 아니지 않느냐. 새로 이전한 공장에 가서 일하면 되니 않느냐.’ 조합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방혜정 분회 사무장은 “고용보장 없는 공장이전이다. 이전을 받아들여도 회사가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회사는 10년 넘게 틈만 나면 우리를 내쫓을 생각만 하고 있다. 우리는 박천서 회장을 정말 잘 안다”고 답한다.

다시 시작한 노조말살 시나리오

하이텍알씨디코리아는 금속노조를 아는 사람이라면 알만한 유명한 악질 노조탄압 사업장이다. 2002년 박천서 회장이 ‘10억 원이 들든 20억 원이 들든 반드시 노동조합을 깨겠다’고 공언하고 회사는 온갖 탄압을 자행했다. 공격적 직장폐쇄, 조합원 왕따라인 구성, CCTV 감시, 용역깡패 고용, 임산부 조합원 폭행, 1년 여 휴업, 부당징계, 정리해고, 단협해지……. 10년 동안 조합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탄압을 견뎠다.

탄압의 의도는 ‘민주노조 말살’ 하나다. 신애자 분회장은 “회사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다. 노조를 없애고 자신들 마음대로 운영할 생각이다. 하이텍 박천서 회장의 노조말살 시나리오는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공장부지매각과 이전통보 역시 노조말살 시나리오의 일환이라는 것.

회사의 구로공장 폐쇄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회사는 2005년 12월 주말을 이용해 본사를 오창으로 옮겼다. 생산직 노동자들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야반도주 했다. 월요일 출근하자 텅 빈 사무실만 남아있었다. 조합원들은 오창 본사에 찾아가 투쟁했다.

두 번째 시도는 2007년이었다. 회사는 그해 11월 자본금 5천만원 짜리 회사를 설립해 분사를 단행했다. 신애자 분회장은 “회사는 분사한 회사로 전적하면 평생 고용을 보장하고 임금을 인상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회사 말을 믿은 비조합원은 회사의 전적 명령에 응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조합원들은 분사한 회사로 가지 않았다. 이 때 역시 구로공장을 폐쇄하려는 의도를 알았기 때문이다.

▲ 10월21일 하이텍알씨디분회, 서울지부 조합원들이 '공장폐쇄 분쇄 민주노조 사수 하이텍알씨디분회 투쟁 승리를 위한 결의대회'을 열고 있다. 신동준

1년이 지나지 않아 회사의 의도가 드러났다. 회사는 2008년 12월 분사한 회사의 노동자 전원을 희망퇴직, 정리해고 등으로 내보냈다. 분사한 회사는 문을 닫았다. 신애자 분회장은 “이번 공장이전도 다르지 않다. 조합원 일곱 명을 내쫓고 구로공장을 폐쇄하기 위한 술수다. 절대 이 공장에서 나갈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평생 고용보장 약속은 이미 깨졌다

최근 회사는 자신들의 의도를 곳곳에서 드러냈다. 2013년 구로공장에 있는 구내식당을 일방 폐쇄했다. 교섭에서 회사 교섭위원이 ‘구로공장의 적정인력은 0명’이라는 막말을 내뱉었다. 회사는 1억 원을 줄테니 공장을 그만두라고 회유했다. 어떻게든 노동자들을 구로공장 밖으로 내쫓기 위해 혈안이다.

방혜정 사무장은 “지금껏 해외공장 짓고 회장 일가가 200억 원이 넘는 주식배당금을 가져가게 만든어 준 사람들이 바로 우리다. 적정인력이 0명이라는 회사 얘기를 들으니 노동자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며 분노했다.

분회는 2013년부터 현재까지 3년째 임단협 교섭을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는 임금 월 1만5천원 인상과 단체협약 노조 요구안 수용 불가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조합원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내년에 법정최저임금 밑으로 떨어진다. 신애자 분회장은 “월 9~10만원 이상 인상해야 최저임금을 넘길 수 있다. 30여 년을 일한 정규직 노동자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다. 박천서 회장은 회사에 현금을 550억 원 쌓아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장이전 통보 이후 9월21일 조합원들은 박천서 회장을 직접 만나기 위해 오창 본사에 갔다. 회사 문이 열려있어 우연히 회장을 만났다. 조합원들과 마주친 회장은 “너희와 할 말 없다. 임금 따박따박 받아가며 무슨 생존권을 얘기하느냐”고 말하고 도망쳤다.

신애자 분회장은 “노동자 생존권을 철저히 외면했다. 반말을 하고 도망가는 회장을 보며 조합원들은 회사가 우리를 발톱의 때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청춘을 바친 노동자를 헌신짝 취급했다. 처참하고 서글프다”고 울분을 토했다.

▲ “회사는 10년 넘게 어떻게든 이 공장을 밀어버리려고 했다. 수차례 시도했다. 우리가 지켰다. 우리 손으로 만들고 지킨 공장이다.” 신애자 분회장은 구로공장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10월21일 결의대회에서 신 분회장이 꽹과리를 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동준

분회는 박근혜 정권을 향한 투쟁,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공동투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신애자 분회장은 “박근혜 정권이 전체 노동자를 전면 공격하고 있다. 정권의 움직임에 따라 하이텍과 마리오아울렛 등 악질자본이 탄압을 강화하고 있다”며 “우리는 적은 숫자지만 사업장 너머 지역 투쟁, 공동투쟁을 얘기해왔다. 정권을 향한 투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지킨 공장, 포기할 수 없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는 구로공단에 유일하게 남은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사업장이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1988년 노조를 설립하고 지금껏 민주노조 깃발을 지켜왔다. 신애자 분회장은 “오랜 세월 싸우다보니 이 곳을 지나다니는 지역 노동자들은 계속 투쟁하는 사업장이라고 알고 있다”며 “우리가 포기하면 구로, 가산디지털단지 지역의 열악한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줄 공장이 없다. 투쟁의 역사가 서린 이 공장을 지키는 길이 지역의 희망을 만드는 길”이라고 이번 투쟁의 의미를 설명한다.

하이텍 구로공장은 조합원들에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회사는 10년 넘게 어떻게든 이 공장을 밀어버리려고 했다. 수차례 시도했다. 우리가 지켰다. 우리 손으로 만들고 지킨 공장이다.” 신애자 분회장은 구로공장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30여 년의 공장생활, 10년 넘는 투쟁. 구로공장은 조합원들의 삶이 고스란히 배인 곳이다. 봄이면 살구꽃과 벚꽃, 라일락이 흐드러지게 피는 공장, 생존의 터전. 내 힘으로 지킨 현장과 민주노조를 뺏기지 않기 위해 조합원들은 다시 투쟁을 결의했다.

“이미 10년 넘게 싸웠다. 얼마나 힘든 길인지 안다. 어렵다. 지금까지 투쟁하는 동안 정말 많은 동지들과 같이 싸웠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동지들은 자신의 일처럼 함께 했다. 이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방혜정 사무장이 자신의 결심을 내비쳤다.

“결사 투쟁.” 지난 10년의 투쟁 동안 분회 조합원들을 ‘결사 투쟁’이 아닌 ‘단결 투쟁’을 끝구호로 외쳤다. 이번 공장폐쇄 분쇄 투쟁을 시작하며 분회는 처음으로 ‘결사 투쟁’ 구호를 외쳤다. 회사의 노조 말살, 공장폐쇄 음모를 이번에 반드시 끝장을 내겠다는 결의다.

“일곱 명이 뭘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해왔다. 박천서 회장이 악랄하게 노조를 파괴하려 했지만 13명이, 그리고 7명이 지켰다. 해낼 수 있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 노동자들은 고용과 생존, 28년 민주노조의 깃발을 사수하기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구로공장 사수 투쟁을 오늘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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