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이 지났지만 이곳에 오면 긴 수염을 기르던 김주익 지회장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다시 열사가 생기지 않도록, 지회가 조합원의 힘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 한 분 한 분 앞장서서 새롭게 투쟁의 각오를 다집시다. 저 역시 오늘 이 시간부터 열사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현장에서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김주익 열사와 곽재규 열사가 세상을 떠난 2003년 수석부지회장이었던 김양수 조합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12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두 열사의 정신을 계승해 현장에서 일당백의 기백으로 활동하자”고 호소했다.

▲ 노조 부산양산지부 한진중공업지회(지회장 박성호) 조합원들이 10월21일 '김주익·곽재규 열사 흔적 찾기'에 참여하기 위해 85호 크레인 터로 행진하고 있다. 부산=김경훈

노조 부산양산지부 한진중공업지회(지회장 박성호, 아래 지회) 조합원들은 10월21일 12년 만에 처음으로 김주익, 곽재규 열사가 세상을 떠난 영도조선소 현장에서 ‘김주익·곽재규 열사 흔적 찾기’를 진행했다. 이날 지회 조합원들은 김주익 열사가 세상을 떠난 85호 크레인이 있던 장소, 곽재규 열사가 목숨을 끊은 4도크 앞에서 두 열사의 흔적을 더듬고,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1981년에 한진중공업에 입사해 두 열사와 함께 노동조합 활동을 했던 김병철 한진중공업지회 열사 정신계승사업회(아래 열사회) 사무국장은 “주익이는 말은 별로 없지만 묵묵히 행동하는 친구였죠. 소처럼 우직하달까. 재규 형님은 나이가 많은데도 사람들과 잘 어울렸어요. 참 천진난만하달까. 잘 삐치지만 금방 풀어지고. 정도 많고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죠.”

곽재규 열사가 김주익 열사보다 여덟 살 많아 호형호제했다. 회사의 가혹한 탄압 속에서 꾸준히 노동조합 활동을 하던 두 사람은 자연스레 가까운 사이가 됐다. 사람들과 잘 어울렸던 곽재규 열사가 가장 아끼고 좋아했던 동지가 김주익 열사다. 한진중공업의 계속되는 노조 탄압은 두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 차해도 한진중공업지회 열사 정신계승사업회장이 10월21일 ‘김주익·곽재규 열사 흔적 찾기’ 에서 “동지들, 12년 전을 기억합시다. 기억하고, 저항하고, 다시 민주노조 깃발을 움켜쥐고 모든 영도조선소 노동자들과 이 자리에 다시 모입시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부산=김경훈

두 죽음으로 쟁취한 승리

한진중공업은 2002년 ‘인력체질개선작업’이라는 이름으로 구조조정을 실시하며 650명을 정리해고하고, 138명을 교육 발령했다. 회사는 정리해고를 반대하던 지회에 7억4천만 원의 손배가압류를 걸었다. 당시 지회장이던 김주익 열사를 비롯해 지회간부 스무 명의 임금과 노동조합비를 가압류했다.

김주익 지회장은 2003년 6월10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의 85호 크레인에 올라 외로이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회사는 교섭을 회피하며 노조탄압을 자행했다. 회사는 7월19일 지회와 맺은 해고자 복직, 손배가압류 등에 대한 합의를 일방 파기했다. 10월14일 관리자를 동원해 4도크에서 건조 중인 배를 빼고, 마산 특수선지회 150명의 조합원에게 10월15일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150억 원의 손배가압류를 하겠다고 협박했다. 회사의 집요한 탄압에 조합원들이 파업대오를 이탈했다. 김주익 지회장은 85호 크레인 위에서 조합원을 지켜보다 깊은 절망 속에서 10월17일 스스로 목을 맸다.

김병철 열사회 사무국장은 김주익 지회장이 세상을 떠난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날도 평소처럼 아침에 집회를 하는데 주익이가 안 나와요. 몇 번 불러도 안 나오니까 이상해서 올라갔지요. 주익이가 주검이 돼 있더라고요. 실감이 안 나 멍한 상태에서 조합원을 조직하고, 사수대를 만들어 천막을 치고 철야농성에 들어갔죠.”

지회가 조합원을 다시 조직해 장례투쟁을 시작한 가운데 가장 아끼던 동지를 잃은 곽재규 조합원은 10월30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곽재규 열사는 김주익 지회장이 목을 맨 85호 크레인 옆에 있는 4도크에 투신했다.

▲ ‘김주익·곽재규 열사 흔적 찾기’에 참여한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이 김주익, 곽재규 열사가 세상을 떠난 장소에서 묵념하고 있다. 부산=김경훈

파업대오에서 이탈했던 조합원들이 두 열사의 죽음에 분노하며 돌아왔다. 조합원 1,000여 명이 투쟁에 나선 결과 11월15일 손배가압류 철회와 노조 활동 손배가압류 금지, 해고자 17명 복직, 부당노동행위 관련자 처벌, 고용안정 확약 등 노사합의를 했다. 두 동지의 죽음으로 쟁취한 승리였다.

기억하라, 그리고 저항하라

12년이 흐른 2015년. 1,000여 명에 달하던 조합원은 170명으로 줄었다. 2012년 1월 나타난 기업노조가 대표교섭권을 갖고 있다. 나이 든 지회 조합원이 많아 대거 퇴사를 앞둔 상태다. 지회가 힘든 상황에 놓여서인지 두 열사에 대한 기억이 강렬하다.

김병철 열사회 사무국장은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지금도 가끔 두 사람을 떠올린다”며 김주익 열사에 얽힌 추억 하나를 털어놨다. “주익이가 죽기 며칠 전 85호 크레인 위를 걸어 다니는 모습을 봤어요. 바로 전화를 해서 ‘빨리 땅에 내려와서 걸어 다녀야지’라고 하니 주익이가 웃으면서 ‘땅에 내려올 날이 있겠지’라고 대답했어요. 그런 이야길 했는데 며칠 뒤 주익이가 세상을 떠나니 더 허망했죠.” 

지회 조합원들은 두 열사를 회한 섞인 추억으로 떠올리지 않는다. 죽음으로 회사의 노조탄압에 맞섰던 두 열사를 기억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저항하고, 이 저항을 모아 민주노조를 지키는 투쟁을 조직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 김병철 한진중공업지회 열사 정신계승사업회 사무국장이 10월21일 지회 사무실에서 김주익, 곽재규 열사 얽힌 추억을 회상하며 웃고 있다. 부산=김경훈

한진중공업지회 열사 정신계승사업회가 김주익·곽재규열사 12주기 열사정신 계승 주간에 ‘기억하라, 그리고 저항하라’는 굳은 맹세를 내건 이유도 이 때문이다. 차해도 한진중공업지회 열사 정신계승사업회장은 ‘김주익·곽재규 열사 흔적 찾기’에 참석한 지회 조합원들에게 “12년 전을 기억하자”고 강조했다.

“동지들, 12년 전을 기억합시다. 기억하고, 저항하고, 다시 민주노조 깃발을 움켜쥐고 모든 영도조선소 노동자들과 이 자리에 다시 모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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