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이란 조직은 역사발전의 부산물이다. 노조조직의 형태와 정체성은 나라마다 제 각각이라고 할 만큼 차이가 있다. 개별 국가의 역사발전과정에 따라 노조조직의 성격과 역할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독일의 노동조합은 수공업적인 장인제도에 영향을 받은 직업별 노조주의의 전통이 강한 반면, 생시몽으로 대표되는 공상적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친기술적 과학주의와 무정부주의적 생디칼리즘이 절묘하게 결합한 프랑스의 노동조합,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기계적 분리가 지닌 기능적 효율성을 최대화한 직종별 노조주의의 전통이 강한 영국, 무정부주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으면서 전투적 노조주의의 전통을 현대에까지 이어가고 있는 벨기에와 같이 국가별로 아주 다양하다.

노조는 하나의 조직정체성을 가진 조직이 아니라 노조가 속한 국가의 사회, 경제, 정치적 발전과정에 따라 형태와 내용도 달라지고, 경우에 따라선 매우 대립적이기까지 하다. 즉, 실리지향의 노조와 운동지향의 노조가 지니는 넓은 간극과 더불어 노조를 도구적으로 보는지 아니면 목적의식적으로 보는지에 따라 노조라는 조직이 지닌 성격과 역할은 현실에서 천양지차의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금속노조는 도대체 어떤 조직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적자인 금속노조

지금의 금속노조 이전에 민주노조운동은 전노협운동이라는 역사를 만들었고, 금속노조는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이 운동의 유산을 가장 많이 상속받은 적자이다. 이른바 '1987년 체제'의 형성에서 빼놓을 수없는 주체인 민주노조운동의 등장은 한국노총으로 대표되는 어용·관제노조에 대한 노동자들의 적개심과 사회민주화에 한 몫 하려는 노동자들의 열망에 의해 가능하였다.

▲ 지금의 금속노조 이전에 민주노조운동은 전노협운동이라는 역사를 만들었고, 금속노조는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이 운동의 유산을 가장 많이 상속받은 적자다.
지난 시기 노동운동의 시대정신이라고 볼 수 있었던 민주노조운동은 평범한 조합원들에게서도 쉽게 확인이 되었다. 자신이 속한 노조가 민주노조라는 데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은 사회민주화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고, 민주노조운동에 동참하면서 더욱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의지와 신념은 강철처럼 단련하여 왔다. 하지만 이런 전통은 1990년대 중반이후 진행된 산업구조조정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부터 희미해지기 시작하였고, 현재에 이르러 자신의 조직이 민주노조라는 사실에 대해 조합원들이 얼마나 특별한 감흥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어용노조와 근본적으로 다른 민주노조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리기도 할 만큼, 세상의 변화는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의미변화

민주노조와 어용노조라는 경계선이 불투명해지고 의미마저 퇴색하면서 금속노조는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정체성 역시 희미해져버린 이중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 안개 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는 등불의 역할을 하는 조직정체성이 희미해지면서 노조조직이 수렁에 빠진 꼴로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표현한다면 과연 지나친 주장일까. 아니면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더욱 발전된 조직정체성을 만들지 못한 활동가들의 무능이 빚어낸 참극이라고 보아야 할까. 이도 저도 아니면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한 사소한 실수와 잘못이 누적되면서 노조조직이 마치 공룡조직처럼 변형된 때문일까.

이런 자조적인 생각이 드는 게 무리가 아닌 이유는, 노조조직의 성격이 실리지향적으로 변화하면서 조직의 역할마저 매우 도구적으로 바뀌어버린 그간의 경험 때문이다. 사회민주화에 대한 요구안이 임금인상을 위한 액세서리 내지는 치장거리로 전락한 가장 큰 이유도 알고 보면 실리주의적 노조운용의 부산물이다. 흔히 말하듯이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노조조직의 운영은 조직을 도구화하는 출발점일 수밖에 없다.

▲ 갖은 고생을 하는 노조활동가들에게 노조운동을 왜 하느냐는 질문을 하면, 노조활동가의 가슴엔 무언지 모를 뜨거운 불기둥이 솟구쳐 오르는 것도 또 다른 현실이다.

금속노조의 존재 이유는?

노조조직이 지향하는 가치와 의미성이 희미해질수록 노조는 조합원 권익보호라는 이름의 도구로 전락하고, 특정 직업집단의 이익대변 운동으로만 전락한다. 궁극적으론 노동운동이라는 말조차 쓰기가 민망해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갖은 고생을 하는 노조활동가들에게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게서 사회적 인정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조운동을 왜 하느냐는 질문을 하면, 노조활동가의 가슴엔 무언지 모를 뜨거운 불기둥이 솟구쳐 오르는 것도 또 다른 현실이다. 게다가 '대기업 이기주의'로 일컬어지는 노조조직에 대한 사회적 마녀사냥과 비난 앞에서 '너희도 꼽으면 노조를 만들어라'고 답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금속노조가 표방하는 가치와 정체성을 아주 쉽고 간단한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어쩌면 금속노조가 지녀야할 가치와 이념을 다듬어서 사회 속에서 소통하지 못한 잘못을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종래 /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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