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KBS와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하 방문진)에 이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지난 13일 EBS 이사 선임을 끝내면서 공영방송 3사를 관리․감독할 이사회 구성 절차가 모두 마무리됐다. 이번에 선임된 29인(KBS 11인, 방문진 9인, EBS 9인)의 이사들의 임기는 모두 각각 3년으로, 이들은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 국면에서 공영방송을 이끌 사장을 뽑는 등 역할을 한다.

KBS와 EBS는 오는 11월, MBC는 2017년 2월에 새 사장을 뽑아야 한다. 이사들이 뽑은(KBS의 경우 대통령에 임명 제청된) 사장은 방송사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인사권을 행사하고, 이 사장이 발탁한 인물들은 보도․제작을 진두지휘한다. 공영방송 이사들이, 이들이 뽑은 사장들이, 이 사장들이 발탁한 보도‧제작책임자들이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는 단계마다 방송 관련 법제들의 앞장에 적혀 있는 ‘독립된’ 자세를 잊지 않으면 좋으련만, 지금 현실만 봐도 대부분 쉽지 않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현실은 왜 이런 걸까. 최근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을 보면 쉽게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언론, 특히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이나 전문성 등과 상관없이 말로 방송의 독립성을 강조할 뿐, 실제 이사를 선임할 때 ‘정파성’이라는 기준을 앞세우는 인선이 바로 그 이유다.

▲ 지난 8월17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있는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공영언론이사추천위원회 회원들이 EBS의 올바른 이사선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이기범 <언론노보>

물론 공영방송 이사 선임(방문진․EBS)과 추천(KBS)시 법이 정한 결격 사유, ▲정당 당원 신분 상실 3년 이상 경과 ▲대선 후보 자문역할 3년 이상 경과 ▲대통령직인수위원 신분 상실 3년 이상 경과 등을 확인하는 절차가 존재하긴 한다. 사실상 이게 전부다. 관행에 따라 KBS 7대 4, 방문진 6대 3, EBS 7대 2로, 여야 배분 몫을 미리 정해뒀기 때문이다.

물론 방통위원들은 저마다 철학과 판단에 따라 무기명 비밀 투표를 통해 공영방송 이사를 선임․추천한다고 말한다. 여야가 관행에 따라 후보자를 추천하긴 하지만 최종 선택은 방통위원들의 몫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드러난 현실 앞에서 이런 항변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민망하기까지 하다.

드러난 현실은 이렇다. 9월10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방통위 국정감사에서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KBS와 방문진 이사 선정이 있던 8월 13일 비공개로 열린 방통위 회의 속기록 내용을 공개했다. 최 의원이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이날 방통위 회의에 KBS이사 후보 66인과 방문진 이사 후보 45인의 자료가 올라갔다. 투표를 통해 과반(5인 위원 중 3인) 이상의 표를 얻은 후보 가운데 다(多)득표순으로 KBS 11인, 방문진 9인의 이사를 뽑기로 했다. 하지만 투표는 한 번에 끝났다. 1차 투표에서 현재 KBS․방문진 이사에 추천․선임된 이들이 모두 3표 이상을 얻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9인의 KBS 이사 추천을 위한 투표 당시, 여당에서 추천한 2인의 후보와 야당에서 추천한 4인의 후보는 각각 5표를 얻었다. 그리고 여당에서 추천한 3인의 후보자는 각각 4표씩을 얻었고, 여당 추천의 나머지 후보 2인은 각각 3표씩을 득표했다. 여권 측 방통위원 3인은 모두 동일한 투표를, 야권 측 방통위원은 여당에서 추천한 후보 1인에 대해 서로 다른 투표를 한 결과다. 투표에 앞서 “저마다의 소신대로 투표를 통한 선임 절차에 들어가자”고 했던 여권 측 방통위원의 말과는 달리 여권 측 방통위원 3인 모두가 단 한 번에 100% 일치하는 투표를 한 것이다.

특정한 곳으로부터 지침이 내려온 결과가 아니냐는 최민희 의원의 질문에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 사전에 내정된 인사가 아닌데 3인의 방통위원들이 1차 투표에서 100% 동일한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가히 내 맘이 네 맘이고 네 맘이 내 맘인 소울메이트(Soulmate) 수준 아닌가. 때문에 이 경우를 제외하고 내릴 수 있는 현실적인 결론은 이렇다. 정부․여당의 추천으로 방통위원이 된 이들이 여당에서 ‘정파성’이라는 기준에 맞춰 추천한 인물들을 공영방송 이사로 뽑았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오 예측할 수 있는 향후 2년의 모습은 이렇다. 철저히 정파성이라는 기준에 입각해 뽑힌 공영방송 이사들이 민주주의 의사결정 방식 중 하나인 다수결 원칙을 정당하게 앞세워 사실상 수의 우위에 따른 투표로 사장을 뽑을 것이다. 자신이 뽑힌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장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사권에 따라 역시 선택된 이유를 알고 있는 보도․제작 책임자들에게 지휘의 권한을 부여할 것이다.

아마 이 기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공영방송 인사와 의사 결정 등에 정치적 외압을 방지해야 한다며 내세웠던, 공영방송 이사회의 사장 선임 등에서 재적 이사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구하도록 하는 특별 다수제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공약을 지난 3년 동안과 마찬가지로 실현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전망과 예측이 어긋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승환의 노랫말처럼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별로 없으니 말이다.

김세옥 / <PD저널> 기자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