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 들어 노동자를 일자리에서 몰아내고 민주노조를 와해하기 위한 탄압이 연일 자행되고 있다. 탄압은 한 사업장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노동자에게 가해지고 있다. 이에 맞서 금호타이어지회 투쟁, 경주발레오만투쟁, 현대자동차 전주공장투쟁 등 전국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투쟁을 구호만의 전국노동자 총파업이 아니라, 실질적 전국 노동자의 투쟁으로 받아 안아갈 것인가이다.

1989년에도 정권과 자본은 전력을 정비하여 노동운동에 대한 전면적이고 폭력적인 탄압을 가해 민주노조운동을 말살하려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이 땅에 민주노조가 뿌리내리고, 1988년 마창노련 결성을 시작으로 노동자들이 단결의 폭을 넓혀 지역, 업종차원의 연대조직을 만들어가자 두려웠던 것이다. 1987년 이후 총자본을 대리하는 정권과 노동자의 총대결의 양상을 띠었다. 탄압에 맞서 그 선두에서 마창노련 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 1989년 4월 24일 ‘창원대로 대투쟁’이 그것이다.

1989년 정권과 자본의 총공세

1989년만큼 구속, 수배, 해고, 폭력테러, 압수수색 등 탄압이 극심한 해도 없었다. 노태우 정권과 독점재벌은 1988년 12월 28일 ‘민생치안 확립을 위한 비상조치’를 발표한 직후 1989년 1월 2일 풍산금속 안강 공장 노조 경찰병력투입, 1월 8일 현대해고자복직실천협의회 폭력테러, 1월 21일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에 대한 식칼 테러사건 등 벽두부터 공권력을 동원한 강제진압과 피를 부르는 폭력테러를 서슴지 않았다. 덩달아 언론도 ‘경제위기와 노동자책임론’을 끊임없이 퍼뜨리면서 노동자들의 역사적 진출을 매도하려 하였다.

4월 들어 파업투쟁의 불길이 전 공단으로 들불처럼 옮겨 붙으면서 자본과 정권의 탄압도 그만큼 거세졌다. 단순히 임투를 제압하려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 자체를 약화 내지는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4월 14일 단병호 전국투본 본부장의 구속을 비롯하여 4월 4일 공안합수부가 발족하여 6월 19일 해체되기까지 317명을 구속하고 126명을 불구속 입건하였다.

들불처럼 타오른 창원대로 대투쟁

이에 맞서 전국회의는 노동법개정투쟁 및 임금인상 전국투쟁본부를 결성하였다. 마창노련에서도 ‘마산・창원지역 노동법개정 및 임금인상투쟁본부’(공투본)를 구성하였다.

마창투본은 4월 24일 수출지역 후문 노동자민주광장에서는 ‘마창투본 쟁의결의 및 방산특위발대식’을 열렸다. 민주광장에 가득 찬 2만5천여 명의 노동자들은 연대투쟁을 결의하고 집회를 마친 후 거리로 진출하기 위해 대열을 정비하였다. 그때 최루탄이 터졌다. 쏟아지는 최루탄을 맞으면서도 여성노동자들은 보도블록을 깼고 남성노동자들은 그것을 힘껏 던졌다. 경찰은 마산으로 통하는 모든 길목을 차단하고 최루탄을 마구 난사하였다.

(주)통일 조합원들은 창원대로 앞에 있는 한국기계연구소 앞까지 나와 싸웠으나 점차 밀리게 되었다. 정방대원들은 도로포장용 콜타르 드럼통을 발견하고 드럼통에 불을 붙였다. 시커먼 연기가 솟아올랐고 ‘펑’하는 폭발음과 함께 파편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어 솟구쳤다. 콜타르 드럼통에 불을 붙인 후 굴리기 시작하였다. 대로를 향해 진군하려던 경찰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감히 창원대로 쪽으로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건너편에서 대치하였다.

▲ 1989년 4월의 ‘창원대로 대투쟁’은 연일 1만여 명 이상이 일주일 이상 시가전 형태로 전개된 투쟁으로서, 마창노련 8년 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규모가 큰 투쟁이었다. 위 책은 마창노련 역사를 담은 '내사랑 마창노련(김하경 저)'.
‘펑펑펑’ 터지는 폭발음과 시커먼 연기와 함께 치솟는 화염기둥, 거기에다 최루탄의 매운 연기, 화염병과 돌의 난무 등으로 창원대로 전체는 화약과 폭탄으로 뒤덮였다. 그야말로 ‘전쟁터’ 그 자체였다. 이날 하루 무려 63개의 드럼통이 폭발하였다. 10차선 창원대로 전체가 차량통행이 완전 차단되었다.

창원대로를 가운데 두고 공단지역 쪽으로는 작업복 차림의 노동자군대가, 일반 주거지역에는 전투복 차림의 경찰군대가 대치하면서 군사분계선을 형성하였다. 도로가 완전 불바다였기 때문에 경찰은 멀리 창원대로 건너편에서 최루탄만 쏘아대곤 했다. 노동자들은 베어링이나 볼트를 넣어서 쏘는 새총을 사용하여 멀리 있는 전투경찰에게 위협을 가하였다. 또 금성사 1공장에서는 경찰의 지랄탄을 막기 위해 방패용 철판을 부착한 지게차를 동원하였다. 현대정공에서는 ‘탱크를 몰고 나가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위수령 발포’ 유언비어 및 경찰에게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포기하였다. 창원경찰서장이 직접 창원대로에서 진두지휘를 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창원공단 전체 노동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을 정도로 많은 인원이 참여하여, 오후 1시경부터 시작된 전투가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4월 28일, 29일의 지역 동맹파업

4월 24일 시위 이후 경찰은 보복조치로 조합원들을 연행하여 창원경찰서 지하실에 끌려가 9시간여 동안 전신구타는 물론 입 안까지 전자 봉을 넣는 전기고문을 가했다. 다시 노동자들은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며 창원경찰서로 진출하여 경찰과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

4월 27일 마창투본 산하 40여개 노조는 오후 2시경 임시총회, 집단조퇴, 작업거부 등을 하며 전원 가두로 진출하여 살인정권 타도와 구속자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 “공안합수부 해체하고 우리 동지 석방하자”, “전기고문 진상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라는 구호는 어느새 “살인마 노태우 정권 퇴진하라”는 구호로 바뀌었다. 노동자들은 노동자탄압에 앞장섰던 민정당 지구사무실에 돌과 화염병을 던졌고, 각 파출소를 박살내었다. “씨 말리자. 씨 말리자. 폭력경찰 씨 말리자”며 폭력경찰에 대항하는 구호는 어느새 “노태우 정권 타도”와 “노동자가 앞장서서 민주사회 앞당기자”는 정권에 대항하는 구호로 바뀌었다.

이날 20여명의 공안합수부요원들이 마창노련 사무실에 들이닥쳐 1시간 동안 강제 수색해 사무실뿐 아니라 개인 소지품까지 깡그리 압수해 싣고 갔다. 이에 마창투본 산하 40개 노조 대표자들이 4월 28일부터 동맹파업에 들어갈 것을 결의하였다. 4월 28일, 29일 일제히 동맹파업을 벌이고 곧바로 가두투쟁에 돌입하였다. 이날 파업에는 마창노련에 가입하지 않은 사업장까지 참여하여 마창투본 공식회의에서 시가전적 전투가 결의되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자연발생적 투쟁과는 분명 다른 의미가 있었다.

정권에 맞선 연대투쟁은 노동자 정치의식을 성장시켰다

1989년 4월의 ‘창원대로 대투쟁’은 연일 1만여 명 이상이 일주일 이상 시가전 형태로 전개된 투쟁으로서, 마창노련 8년 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규모가 큰 투쟁이었다. ‘창원대로 대투쟁’으로 상징되는 마창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우선 마창지역 노동자들의 비타협적 투쟁과 정치의식 고양으로 이후 전개된 1989년 임투는 자본가로부터 오히려 대폭 양보를 받아내 조기타결, 100%요구 달성을 쟁취하였다.

또한 마창노련은 39개 노조, 3만2천명의 조합원을 포괄하는 조직으로 급성장하였다. 마창노련은 미가입사업장까지 견인하여 활동에 참여하게 하였다. 급기야 노동자들은 마창노련 가입여부가 노조의 성격을 ‘민주냐 어용이냐’로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었다. 마창노련은 명실상부한 지역 노동자의 상급단체로 자리를 굳혔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성과는 노동자들의 연대의식과 투쟁의식이 급성장하였다. 이는 마창공투본 결성으로 사업장 간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잦은 공동 집회와 공동투쟁을 통해 각 노조와 간부들 간의 의식의 편차가 줄면서 공동행동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조합원 중심의 조직력, 투쟁력이 강화되었음은 물론이다.

또한 공권력을 상대로 한 직접적인 투쟁 과정에서 ‘노태우정권 퇴진’ 등 정권의 계급적 속성을 인식하게 되자 조합원들의 정치의식 변화 역시 뚜렷하게 드러났다. 요컨대 투쟁은 노동자들의 정치의식과 연대의식을 강화시키고 마창노련의 조직력강화로 귀결되어, 이후 전노협건설의 중심역량으로 마창노련이 우뚝 설 수 있게 변화시켰다.

정권과 자본은 항상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확보한 성과를 무로 돌리려 한다. 2010년과 1989년의 상황은 겉으로 나타난 양상은 차이가 있지만, 정권과 자본의 민주노조운동을 말살하려는 본질은 같다. 그렇다면 2010년 전국 곳곳에서 노동자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민주노조운동을 말살하려는 정권과 자본에 대해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1989년보다 더 큰 조직인 전국 조직과 산별조직을 갖춘 2010년의 노동자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1989년 마창 지역 노동자들의 투쟁 경험은 이렇게 말한다. “정권과 자본의 총체적 탄압은 노동자에 대한 전쟁 선포이고, 전쟁에서 이기는 길은 전국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뿐이다. 투쟁으로 깨지고 부서지더라고 그것이 더 큰 단결과 각성을 불러일으킬 것” 이라고.

유경순 / 노동자역사 <한내>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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