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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의 밑거름으로 다시 태어난 열사[금속열사 열전 1] 김윤수 열사 (대림자동차노동조합)
홍지욱  |  edit@ilabo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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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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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3월31일 경남 진해 장복산에서 김윤수 동지가 목을 매고 숨진 채 등산객에 의해 발견됐다. 1990년 옥중 해고 된 지 10여년 만에 한 많은 고달픈 해고생활을 뒤로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마흔 살 나이에 토끼 같은 어린 두 딸과 어머니, 형제들을 남겨두고 모진 목숨 줄을 끊어야 했던 김윤수 동지의 고통과 삶은 무엇이었을까?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거치고 1988년 대림자동차 노동조합도 민주화됐다. 대림자동차 노동조합은 1976년 창립 이후 한국노총 금속노련 소속이었다. 당시 조합원들은 선거를 통해 어용 집행부를 갈아엎고 민주집행부를 당선시켰다. 민주노조에 대한 조합원들의 열망은 하늘을 찔렀다.

이듬해에 김윤수 동지는 총무부장으로 임명돼 노조의 재정과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를 모두 책임졌다. 노조의 사업비 집행에 대한 김윤수 열사의 원칙과 고집은 유명했다. 일정한 융통성을 요구하는 간부들에게 통하지 않는 원칙주의자였다. 예산편성과 집행, 회계결산의 투명성을 완벽하게 정리하는 완벽주의자였다. 먼저 학습하고 공부하는 모범을 보였으며 각종 지역, 전국연대집회에 빠짐없이 앞장서는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격렬한 파업투쟁 과정에서는 적절하게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갔고 지루한 철야농성장에는 통닭과 닭똥집으로 조합원들이 의기투합 하게 했다. 간부의 가족들을 조직해 투쟁현장을 방문하게 하면서 안팎으로 힘을 모아 나가는 인간적이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노조 운영과 투쟁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발생하면 충분한 토론과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판단하는 간부 중에서도 항상 모범적인 태도를 보였다.

   
▲ 김윤수 열사.

김윤수 동지의 안정적인 살림살이와 간부들 간의 조화로운 역할분담, 현장과의 끈끈한 소통의 결과는 대림자동차에서 각종 현안투쟁과 임단투를 벌이는 3년여 기간 동안 노조의 백전백승으로 나타났다. 특히 1989년부터 전국 최초로 단위노조 차원의 자체 노동교실을 개최해 올바른 노동자 의식을 고취시키고 선진 활동가를 양성했다.

그해 임단투는 대림자동차 노조 투쟁 역사에서 가장 모범적인 투쟁이었다. 전체 조합원들이 빠짐없이 참여했고 준비에서부터 파업까지 다양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지역 연대투쟁으로 확대시켜나가는 전술을 구사했다. 이러한 모범적인 일상활동과 조직적인 투쟁의 성과는 당연히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아래 마창노련)의 중심 선봉대로서의 역할로 이어졌다.

당시 전국적인 노동운동은 마창노련 건설과 전국노동조합협의회(아래 전노협)건설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실현해야했다. 당연히 대림자동차 노조는 마창노련을 중심으로 한 전노협 건설투쟁의 선봉으로 달려 나갔다. 공장 안의 승리에 만족하지 않고 당면한 정세에 적극적으로 임하면서 노동운동의 전망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방향에 김윤수는 집중했다.

자본과 정권은 1990년 2월25일 6백 여 명의 경찰병력을 동원해 노조사무실을 압수수색, 침탈했다. 노조사무실에 공개 비치해 둔 각종 책을 이적표현물이라고 규정하고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당시 지도부와 김윤수를 구속시켰다. 공장을 넘어 지역, 전국적인 선봉투쟁을 거침없이 실천했던 대림자동차 노조에 대한 자본과 정권 차원의 집중탄압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김윤수 동지는 구속됐고 옥중에서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1년의 옥살이를 마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투쟁 현장에 복귀한 김윤수 동지는 치열한 해고자복직 투쟁을 전개했다. 해고 투쟁 과정에서도 김윤수 동지의 주요한 역할은 재정과 보급투쟁이었다. 해고자들의 최소한의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 비가 오나 눈이오나 티셔츠와 오징어를 판매하기 위해 발로 뛰었다. 전국의 집회 현장마다 좌판을 펴고 투쟁기금 마련 재정사업을 진행했다. 김윤수 동지는 그렇게 대림자동차 해고자들의 초기 투쟁기금을 마련했고 조직적으로 해고자들의 투쟁이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자본과 정권을 등에 업은 대림자동차 자본은 매년 노조 간부들을 징계해고 하는 등 살인적인 노조탄압을 자행했다. 결국 복직투쟁은 장기투쟁이 됐다. 복직투쟁 10년의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김윤수 동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노가다판으로 나갔다. 힘든 노가다를 하면서도 해고자들의 모임에는 빠짐없이 참석했고 힘들다는 얘기 한 번 하지 않았던 김윤수 동지는 해고 10년 만에 노동해방 세상의 꿈을 후배들에게 남기고 고통스럽고 한 많은 인생을 마감했다.

20여 년 전 대림자동차 노조의 빛나는 투쟁 역사는 고 김윤수 동지의 땀과 눈물이 서려있는 역사다. 지역 연대 투쟁의 자랑 마창노련 건설과 평등사회 앞당기는 전노협 건설은 모범적인 실천과 노동운동의 전망을 앞장서서 열어나가고자 분투했던 고 김윤수 동지의 열정이자 치열한 몸부림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자랑스런 우리의 역사이다.

홍지욱/ 노조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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