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가 현실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핵발전소 반대운동은 후쿠시마 사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이전엔 반핵운동이라 부르며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의 문제이며, 소수의 환경단체(모든 환경단체가 반핵입장도 아니고 반핵입장이라 하더라도 반핵운동을 하진 않았다)와 지역주민들의 운동이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반핵운동’은 핵 사회를 넘어서는 ‘탈핵운동’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핵발전소 지역뿐 아니라 전국,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 생활협동조합, 종교계가 참여하는 운동이 되었다.

내가 일하는 <녹색연합>이 2014년 회원들에게 조사한 결과, 가장 비중 있게 다뤄야 할 과제는 ‘탈핵’ 이었다. 핵발전소가 품은 문제는 후쿠시마 이전에도 이후에도 똑같이 있지만, 시민들의 위험에 대한 체감수준은 그야말로 180도 바뀐 것이다.

국내에선 원전비리라고 말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의 말단 직원부터 고위 간부까지 연결된 온갖 비리가 드러나기도 했다. 그 비리 대부분이 ‘안전’과 직결한 부품 납품비리였다는 대목에서 일본처럼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핵발전소 안전에 문제가 없을 거라는 정부의 호언장담도 기대도 모두 사라졌다.

▲ 지난 2월27일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소속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월성1호기 수명연장을 결정한 원자력안전위원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녹색연합>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핵운동의 첫 번째 구호는 ‘노후원전 폐쇄’이다. 한국에 핵발전소가 23기 가동 중이다. 이 중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는 설계수명 30년을 넘긴 노후 원전이다. 모든 핵발전소가 위험하지만 특히 노후 원전의 위험성은 후쿠시마 사고 당시 10기의 핵발전소 중 설계수명 30년을 넘긴 노후 원전인 1,2,3,4호기만 폭발했던 점을 통해 분명히 드러났다.

이미 고리 1호기는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핵발전소 사고의 20%인 130건의 사고가 고리1호기에 발생했다. 2012년 2월 9일 12분 동안 정전이 되면서 전원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원자로 냉각수의 온도가 올라가는 비상상황이 발생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모든 핵발전소 가동 중단이 장기 과제라면 노후 원전 폐쇄는 지금 당장 이뤄야 할 과제이다. ‘고마가라 고리’는 그래서 만든 구호다. 이 정부가 위험 앞에서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 사실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실감한 시민들은 위험요인을 시급히 제거하는 길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 결과 지난 6월12일 정부 에너지위원회가 한국수력원자력에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를 요구하는 권고안을 의결했고 한수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1978년 상업 원전을 운행한 이래 처음 있는, 구호가 현실이 된 역사의 결정이다. 그동안 탈핵운동이 벌인 단체, 시민들의 소중한 승리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자축의 목소리는 크지 않다. 고리 1호기만큼 노후 원전의 위험성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월성 1호기는 올 초 수명 연장이 결정됐다. 가장 최신의 안전기준이 아닌 과거의 안전기준으로 실시한 수명연장테스트에서 통과했다는 점이 그 이유다.

수명연장테스트에 대한 대부분기록은 비공개이다. 월성 1호기를 우리나라에 수출한 캐나다에서 똑같은 원전이 경제성과 안전성을 확보하지 못해 이미 폐쇄절차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우리에게 고리 1호기만큼의 위험이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핵발전소 1기 운영을 중지시킨 반면, 정부는 핵발전소 추가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정부는 수차례 핵발전소 건설을 막았고 최근 주민투표로 강력하게 핵발전소를 유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삼척과 주민투표를 준비하고 있는 영덕을 신규핵발전소 후보지로 상정하고 지역로비를 하고 있다.

‘고마가라 고리’는 부산 시민들이 만든 구호였다. 이제 월성을 향해 ‘고마가라 월성’을 외쳐야겠다. ‘고마가라 원전’도 함께. 

정명희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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