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업무가 노동부에서 시청이나 도청으로 이양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얼마 전, 지역에서 열심히 투쟁하시는 한 동지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 있었다. 대통령 직속의 지방분권촉진위원회에서 노동부의 안전보건 업무를 지방정부로 이양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얘기가 돌았기 때문이다. "지자체에 사업주를 고발하고, 제대로 처벌하라면서 시장과 도지사 면담을 한다? 조오치! 노동부 상대하는 것보다야 백배 낫지 않겠어?" 동지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답을 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내게 눈을 흘기면서 확인하듯 쏘아붙이기까지 했다. "그런 거 반대하면 나쁜 놈이여." 하지만, 나는 지금 반대의 입장에 서 있다.

3월 16일 행정안전부에서 노동부로 공문이 왔다. 지방분권촉진위원회에서 노동부의 안전보건업무 중 일부를 지자체로 이양하기로 결정했으니, 노동부에서 해당업무를 지자체로 이양할 계획을 세워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이미 3월 11일 대통령 재가가 떨어졌다고 한다.

▲ 지방으로 이양하도록 결정된 노동부의 안전보건 업무내용(지방분권촉진위원회)

그런데, 놀랍게도 지방으로 이양하라는 업무에는 노동부의 핵심 업무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보자. ‘중대재해가 연속해서 발생하는 사업장의 경우 영업의 정지를 명령할 수 있다(산안법 제51조의2 영업정지의 요청 등)’ 앞으로는 지자체가 그 역할을 한다. ‘현장에 긴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노동부장관은 작업중지를 명령할 수 있다’ 그 업무는 이번 이양대상에 들어있지 않다. 하지만, 작업중지 이후 안전보건진단의 명령을 내려서 문제를 찾아내고 개선해야 하는데(산안법 제49조 안전․보건진단), 그 역할은 앞으로 지자체가 맡게 된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사업주가 위반하고 있다면, 지금까지는 노동부 장관이나 근로감독관에게 신고할 수 있었다(산안법 제52조 감독기관에 대한 신고). 하지만 앞으로는 지자체에 신고해야 한다. 노동부장관은 문제있는 사업장에 대해 산재예방을 위한 개선개획 수립을 명령할 수 있었다(산안법 제50조 안전보건개선계획). 앞으로는 지자체가 명령하게 된다. 산업안전보건법 제6장 '감독과 명령'에 들어있는 7개 법조항 중 6개가 노동부로부터 지자체로 이양될 대상이 되었다. 즉, 앞으로 사업장에 대한 감독과 명령을 행할 주체는 노동부가 아니라 지자체가 된다는 뜻이다.

지방분권촉진위원회에서는 30일 이내로 노동부에게 실천계획을 작성하여 제출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법개정도 추진할 것을 명령했다. 이건 파쇼다. 노동부야 중대재해에도 제대로 대응못하고 욕만 먹고 있으니 정부 내에서도 얼마나 우습게 여겼겠는가마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중대 사안을 노동자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성과내기에 급급한 졸속 행정과 국민과 노동자에 대한 무시가 결합된 최악의 정부. 다시 한 번 이명박 정부에 치가 떨린다.

나는 개인적으로 안전보건 업무의 지방이양을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는다. 지역사회 또한 노동자건강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지역의 기업이 노동자를 죽이지 않도록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이 지방정부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외국의 시장이나 주지사가 안전보건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지역사회에서 비난 받는 것을 보면서 가끔 부러울 때도 있었다.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 노동자 건강과 안전의 문제를 지역의 의제로 형성해나가는 외국의 건강권 운동은 정말로 많이 부러웠다.

하지만, 그런 나라들은 노동자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어떤 책임과 권한이 필요한지 사회적 관심과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역할분담과 협력이 가능했다. 법이 있으나 국가가 집행하지 않았던 것이 한국사회였다. 이 상태에서 업무만 지방으로 이양한다면, 거대한 혼란과 책임회피만 발생할 것이며, 노동자들은 그 속에서 더욱 더 위험해지게 될 것이 뻔하다.

따라서, 노동부의 안전보건 업무를 지방으로 이양하려는 시도는 즉각 중지되어야 한다. 대신, 사업주들이 안전보건조치를 제대로 하도록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공식적으로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 자리에서라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각각 어떤 기능을 가지고 협력할 때,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이 최대한 보장될 수 있는지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노동부는 이러한 입장을 대통령에게 보내주기 바란다. 그게 훼손된 명예를 스스로 회복하는 길이다.

김신범 /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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