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기 형 연기가 장난이 아닌데? 이러다 야동병기 되겠어.”

7월7일 늦은 저녁 민주노총 경기중부지부 사무실. 다섯 남녀가 사흘 전 찍은 ‘이 돈으로 살아봐’ 뮤직비디오 이야기를 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뮤직비디오 속에서 야동을 보는 이병기 패원의 연기가 살아있다며 웃는 이들은 남다른 열의와 통통 튀는 아이디어로 노조 수도권 일대에서 모범 율동패로 떠오른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율동패 ‘공구가방’과 율동 선생님인 ‘몸짓 선언’ 김정희 동지다.

 

열사투쟁 속에서 탄생한 ‘공구가방’

율동패 ‘공구가방’은 열사투쟁 속에서 탄생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분회장 염호석 열사는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지 못하겠으며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보지 못하겠기에 절 바칩니다”란 유서를 남기고 2014년 5월17일 강릉 정동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 700여 명은 5월19일부터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농성투쟁에 돌입했다. 농성투쟁이 이어가던 5월 마지막 주 어느 날 지회는 율동패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농성투쟁을 하던 어느 날인가 분회 당 한명씩 율동패할 사람 나오라고 해서 ‘공구가방’을 만들었어요. 자발적인 시작은 아니었죠.(웃음)” 이우식 패장의 말이다.

▲ 7월7일 저녁 <공구가방> 패원들과 <몸짓 선언> 김정희 동지가 민주노총 경기중부지부 사무실에서 '이 돈으로 살아봐' 뮤직비디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경훈

자발적인 시작은 아니었지만, 패원들은 율동패 활동을 하면서 점차 적극적으로 임했다. 열사투쟁이 끝나고 7월1일부터 뒤늦게 율동패 ‘공구가방’에 합류한 오기형 패원은 “열사투쟁 중에 ‘진짜 사장 나와라’를 공연하면서 패원들의 표정이 바뀐 걸 느꼈다. 정말 즐겁게, 열심히 율동한다는 걸 느꼈다”고 말한다. 신희성 패원은 “‘진짜 사장 나와라’는 마치 우리 상황을 노래한 것 같아서 다들 열심히 연습했고, 동지들도 좋아했다. ‘진짜 사장 나와라’만큼은 사부보다 우리가 잘한다고 자부한다”며 맞장구를 쳤다. ‘사부’인 김정희 동지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패원들이 각지에 흩어져 있는데다 연습장소가 마땅치 않아 군포, 수원, 인천 등을 전전했지만, 패원들의 열의는 높다. 율동패 ‘공구가방’은 바쁜 작업 와중에 1주일에 한 번씩 만나 연습하고, 최근 자발적으로 ‘이 돈으로 살아봐’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최저임금 1만원 요구의 정당성을 알리는 활동을 했다.

율동패 ‘공구가방’패원들은 ‘율동패 활동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입을 모아 “좋은 동지들을 만났다”고 말한다. 이우식 패장은 “같은 분회인데 병기 형을 잘 몰랐다. 함께 율동패 ‘공구가방’ 활동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얻었다”며 웃었다.

▲ 5월18일 유성기업 투쟁승리 문화제에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율동패 <공구가방>이 율동공연을 펼치고 있다. 김형석

율동패 ‘공구가방’의 동지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밖에도 있다. 율동패 ‘공구가방’은 한 달에 한번 꼴로 다른 사업장에 연대하면서 많은 동지들을 얻었다. 신희성 패원은 “연대투쟁 다니면서 분회 밖의 새로운 동지들을 많이 만나서 좋았다”고 말한다. 이병기 패원은 “일상 활동하는 조합원이면 자주 연대투쟁을 다니지 못했을 것”이라며 “우리보다 어려운 처지의 사업장을 보면서 열심히 연대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노동자가 무엇인지 많이 생각했다”고 말한다.

 

“문화패의 역할은 투쟁에 기름칠하는 것”

율동패 ‘공구가방’ 패원들은 문화패가 노동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오기형 패원은 “문화패는 노동조합 활동이 즐겁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문화패 아니면 어느 단위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병기 패원은 “백기완 선생님이 ‘운동이 망할 때 문화가 가장 먼저 망하고, 운동이 흥할 때 문화가 가장 먼저 흥한다’고 말했다. 문화 활동이 없을 때 운동은 무미건조해진다”며 “투쟁에 기름칠을 해주는 게 문화패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율동패 ‘공구가방’은 지난 1년 동안 이런 역할을 했다. 신희성 패원은 “2014년 하반기 율동패 ‘공구가방’은 다른 사업장과 연대하면서 사업장 상황을 조합원들에게 알리고, 지회 전체를 교육하는 역할을 했다. 투쟁하지 않는 일상 시기에 조합원들을 선동했다”고 자부했다.

율동패 ‘공구가방’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다. 이우식 패장은 “일상활동에서 우리의 투쟁을 격려하고 힘을 내도록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율동패 ‘공구가방’이 금속노조 문화패의 선봉에 서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율동패 ‘공구가방’이 4.24 총파업 수도권대회에서 '총파업 승리 문화선동대'에 참여해 율동 공연을 하고 있다. <노동과 세계> 변백선

 

율동패 ‘공구가방’은?

율동패 ‘공구가방’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소속 율동패다. 조합원들이 늘 들고 다니는 공구가방에서 착안해 율동패 ‘공구가방’이란 이름을 붙였다. 패원들은 각각 공구에서 따온 별명이 있다.

이우식 패장의 별명은 디지털테스터기다. 전압을 측정하는 디지털테스터기처럼 회사가 뭘 잘못했는지 측정하겠다는 의미로 선택한 공구명이다.

신희성 패원의 별명은 스팀기다. 얼음을 녹이는 스팀기 처럼 삼성 거대자본을 녹이겠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이병기 패원의 별명은 드라이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풀린 나사를 조이겠다는 뜻이다.

이날 인터뷰에는 참석하지 못한 오경선 패원의 별명명은 헤라다. 헤라처럼 삼성자본의 잘못된 부분을 뜯어버리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기형 패원의 별명은 연필 지우개다. 접촉 불량을 고칠 때 쓰는 연필 지우개처럼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량접촉을 고쳐,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요구를 전달하는 경로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