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받다보면 근로감독관들의 부당한 행태들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사용자의 각종 노동법 위반행위로 권익침해를 당한 노동자들이 1차적이고 일반적으로 선택하는 법적절차는 노동부 진정절차입니다. 사법국가에서 모든 법률분쟁의 최종판단은 법원의 몫이라지만 멀고도 험한 소송절차를 바로 선택하는 경우는 새 발의 피 정도이니, 진정절차의 실질적 위상은 엄청나다하겠습니다. 그런데 진정을 제기한 노동자에게 담당 감독관은 말 그대로 하늘입니다. 조사권과 위법여부 판단권 및 사건종결권까지 모두 감독관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감독관이 위법이 아니라면 아닌 것이고 이 경우 불복절차조차 형식상으로는 없습니다.

#장면 1


유아용품 전화판매업무를 하던 아주머니들의 임금체불사건을 대리한 적이 있습니다. 출석조사일에 함께 노동청을 찾았습니다. 감독관을 만나 정중히 인사를 하는데, 인사는 받지도 않고 “또 텔레마케터야. 맨날 이런 사건만 들어와.”하면서 짜증을 냅니다. 조사 내내 시종일관 짜증입니다. 피고인을 취조하는 형사 같습니다. 답변을 하던 중 “자세한 내용은 진정서에 적어놨습니다.”라고 덧붙이니, “우리가 담당 사건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진정서 일일이 볼 시간이 어디 있어!”라며 소리를 지르네요. 예의 바른 제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보지도 않을 진정서 왜 내게 하냐고, 진정서를 책상 위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뭐야, 이거”하며 주위에 있던 감독관들이 저를 둘러쌉니다. 그 유명한 1대 10입니다.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진정인 아주머니들이 보고 달려오십니다. 싸움은 10대 10으로 발전했고 감독과 사무실은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청장 면담을 요구하며 아주머니들과 함께 눌러앉았습니다. 그날 조사는 감독과장실에서 과장이 직접 진행했습니다.

# 장면 2

도서보관창고업체에 소속되어 배송업무를 담당하던 50대 아저씨의 퇴직금 체불사건이었습니다. 출퇴근시간 정해져 있고 사장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고 사회보험까지 다 가입되어 있었음에도 단지 배송차량이 진정인 소유라는 이유로 노동자가 아니랍니다. 차량 소유 하나만으로 노동자성이 부인될 수 없는 것 아니냐, 다른 사유는 무엇이냐고 하도 답답해 감독관에게 따져 물으니, “그냥 아닙니다.”랍니다. 아, 이렇게 단순명쾌할 수가. 조목조목 노동자성 인정 근거들을 설명하고 판례나 행정해석까지 들이밀어 봤지만 그때마다 흘깃 한번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는 모니터랑 눈싸움을 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노동자가 아니랍니다. 조사결과를 조서로 작성하는건지 조서 작성을 위해 조사를 하는건지,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하랍니다. 자기가 독수리타법이라 타자가 느리니 천천히 얘기해달라며 결정타까지 먹여주십니다.

# 장면 3

감독관들 책상위에는 대개 주위 노무사사무실에서 제작한 달력이나 명함통, 인주함, 메모지들이 널려있습니다. 대리인 없이 찾아온 노동자들에게는, 이런 사건은 혼자서 하기 어려우니 이런저런 것들에 대해 자문을 받아봐라 하며 노무사사무실 연락처가 예쁘장하게 찍혀 있는 메모지에, 굳이 말로 해도 될 간단한 내용들을 친절히 적어서 건네주기도 합니다. 시간외근로수당 체불사건을 대리할 때였습니다. 체불내역을 이러저러하게 자세히 작성해오라며 구체적인 양식까지 적어줍니다. 그건 감독관이 해야 될 일이란 생각에, 그러나 완곡하게, 양식은 조금 다르나 진정서에 자세하게 내역표가 있다고 하니, 감독관이 할 일도 노무사한테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감독관과 노무사간의 관계지 뭐 이런 노무사가 있나 하는 황당한 눈빛입니다.

# 장면 4

피진정인 사용자는, 진정인들이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는 법인 소속이 아니고 자기 명의의 개인사업체에 소속된 직원들인데 개인사업체는 5인 미만 사업장이라 시간외근로수당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합니다. 처음 듣는 얘기에 진정인들은 순간 어이상실 상태에 빠졌습니다. 개인사업체는 들어본 적도 없고 실제 법인 소속으로 다 같이 한 사무실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주장하니, 감독관은 개인사업체 등록증을 보여주며 귀찮다는 투입니다. 현장조사 하러 가자고, 근로감독 하러 가자고 요구했습니다. 바빠서 못 간답니다. 현장에 직접 한번 가보기만 하면 확인될 것을 자신은 바쁘니 입증자료를 내랍니다. 역시 오랜 실갱이와 싸움 끝에 그 감독관은 결국 현장에서 실질적인 근로감독을 펼치는 훌륭한 감독관이 되었습니다.

「근로감독관집무규정」이란 것이 있습니다. 감독관이 어떤 자세로, 어떠한 절차와 방식으로 사건들을 진행해야 하는지 상세하게 나와 있는 규정입니다. 관련 법령을 숙지하여 자질을 구비해야함은 기본이고, 민원인을 친절히 대하고 근로자 권익구제에 최선을 다해야하며(제3조), 조사 시에는 신속, 친절, 공정, 정확히 처리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필요 시 현장조사도 해야 하고(제37조), 법령의 질의를 받았을 때는 즉석에서 명확하게 답변해주어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제64조)

물론, 일선현장에서 엄청난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대다수 근로감독관들의 실정이고, 헌법이 국가의 의무로 부여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근로감독행정을 펼치기 위한 구조조차 정상적으로 갖춰져 있지 않은 현실을 먼저 지적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러하지 못한 현실 하에서라도, 진정을 제기한 노동자들에게는 실제 하늘과도 같은 감독관님들이 최소한 자신들의 집무규정만이라도 제대로 명심하고 지키면서 일해 준다면, 그래서 권익을 침해당한 노동자들의 눈물을 조금이라도 더 닦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입니다.

박성우 / 민주노총 서울본부 법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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